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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88925545592
· 쪽수 : 507쪽
· 출판일 : 2011-12-16
책 소개
목차
*추천의 말
*옮긴이의 말
홈
*작품 해설
리뷰
책속에서
“그동안 내가 너한테 공정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나는 너한테 좋은 아버지가 아니었다.”
“뭐라고요? 진심이세요?”
“그래. 네가 아기였을 때부터 늘 나를 따라다니던 느낌이었다. 마치 네가 나한테서 필요로 하는 게 있는데, 그게 무언지 전혀 몰랐다고나 할까.”
잭이 헛기침을 한 다음 말했다.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늘 아버지를 아주 좋은 아버지라고 생각해 왔거든요. 제 주제에 황송할 정도로요.”
“아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렴. 너는 늘 어딘가로 도망치고 있었다. 항상 어딘가에 숨어 있었지. 아마 너도 네가 왜 그랬는지 잘 기억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무언가 내게 설명해 줄 말이 있을 게야.”
“저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잘 모르겠어요. 제가 나쁜 놈이라 그런 겁니다.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
“내 말을 오해하고 있구나. 내 말은, 네가 살아오면서 한 번도 진정한 기쁨을 누리지 못한 것 같다는 뜻이다. 행복이라는 걸 별로 누려 보지 못한 것 같아서…….”
대학에서 배운 바에 의하면, 뿌리 뽑힌 자는 불안과 아노미, 불확실한 현대 세계의 공포를 경험하게 된다고 했다. 그들은 그런 고통스럽고 진지한 질문을 품고 있는 그 불길한 철학을 과제를 하기 위해, 또 시험을 치기 위해 되풀이해서 공부했다. 그런 다음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돌아왔다. 옛날과 똑같은 늙은 버드나무 가지가 옛날과 똑같은 잔디 위를 쓸고 다니고, 옛날과 똑같은 대초원에서 저 혼자 싹이 트고 꽃이 피는 그런 고향으로……. 고향. 세상에 이보다 더 다정한 곳이 어디 있을까? 그런데도 고향은 왜 유형지처럼 여겨졌을까? 왜 나와는 상관없는 낯선 곳처럼 무덤덤하게 여겨졌을까? 그때는 왜 나무 그루터기와 돌멩이 하나하나를 알아보지 못했을까? 아빠의 기대에 부응하며 행복하게 살았던 어린 시절의 당근밭을 왜 조금도 기억하지 못했을까? 아아, 아빠.
좁고 어두컴컴한 안쪽에서 위스키 냄새와 땀 냄새가 진동했다. 그곳은 거의 조그만 살림집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그 안에는 한 어두운 영혼의 외로움이, 혈육이라는 피난처를 대신해 이 조잡한 거처로 숨어들어 온 한 영혼의 외로움이 짙게 배어 있었다. ‘만일 오빠가 자살에 성공했다면 어쩔 뻔했을까. 오빠가 죽고 난 다음에 허접한 쓰레기로 교묘하게 만든 이곳을 발견했다면 어쩔 뻔했을까. 오빠의 격렬한 고통의 숨결이 아직도 이곳을 떠다니고 담요도 구겨진 채 그대로 엉켜 있는 상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