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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정치학/외교학/행정학 > 정치인
· ISBN : 9788927802952
· 쪽수 : 288쪽
책 소개
목차
머리말 _ 인간 김대중, 그리고 정치인 김대중 5
프롤로그1 _ 2009년 여름, 거인 잠들다 19
프롤로그2 _ 나의 큰 바위 얼굴 29
1장. 절망의 끝에 서다 55
절망의 끝, 1992년 겨울│고향 하의도 대신 영국으로│
케임브리지,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2장. 햇볕정책의 탄생 83
측근들이 DJ를 닮은 까닭│40년 갈고 닦은 정책, 못 써 봐 한스럽다│
햇볕정책의 탄생│김일성 사망, 그리고 정상회담
3장. 정계 복귀, 그리고 갈등 114
정계 복귀의 터닝포인트│정치적 입지를 다져 준 4개국 순방│
마지막 관문, 지방선거│새옹지마 된 경기지사 선거│
길고 고통스럽던 터널의 끝│동지이자 비판자 이희호
4장. 주저하는 자에게 미래는 없다 157
대권을 향한 네 번째 도전│뜻밖의 역풍, 노태우 통치자금│
발동 걸린 'DJP연대'│드디어 전면전│
대권 아지트, 강변 한신코아 1411호
5장. 대권을 향한 마지막 승부수 195
두려워하며 선택한 'DJP 연합'│클린턴과 블레어를 벤치마킹하다│
‘내각제 개헌’ 발언 소동│DJ의 증발
6장. 민주 투사의 이미지 변신 225
‘알부남’ 프로젝트│어디를 가든 경제, 경제│
평생 동지 권노갑, 그리고 단 한 번의 거짓말│
김영삼 대통령이 잘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7장. 사형수에서 대통령으로 257
약점을 강점으로│마침내 완성된 ‘DJP연합’│
DJ와 YS의 마지막 승부│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김대중
책속에서
사랑하는 당신에게.
같이 살면서 나의 잘못됨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늘 그렇듯 모든 것을 용서하며 아껴 준 것 참 고맙습니다.
이제 하느님의 뜨거운 사랑의 품 안에서 편히 쉬시길 빕니다.
너무 쓰리고 아픈 고난의 생을 잘도 참고 견딘 당신을
나는 참으로 사랑하고 존경했습니다.
이제 하느님께서 뜨거운 사랑의 품 안에 편히 쉬시게 하실 것입니다.
어려움을 잘 감내하신 것을 하느님이 인정하시고
승리의 면류관을 씌워 주실 것을 믿습니다. 자랑스럽습니다.
2009년 8월 19일
당신의 아내 이희호
남도의 땅, 전라남도 고흥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나에게도 ‘큰바위얼굴’ 같은 우상이 있었다. 정치인 ‘김대중’이었다. 우리 마을에는 1972년에 처음 전기가 들어왔는데, 초가집에서 호롱불을 켜고 살던 초등학교 시절부터 나는 동네 어른들이 ‘김대중’을 이야기할 때마다 그들의 목소리에 담긴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의 얼굴이 인쇄된 선거 팸플릿을 주워 집에다 갖다 놓고 날마다 바라보았다. 누가 내게 “커서 뭐가 될 거냐?”고 물으면 나는 “김대중 총재님 비서요.”라고 말하곤 했다. 자기 자식이 정치인 비서가 되겠다고 하면, 아마 요즘 부모님들 같으면 화를 낼 것이다. 하지만 당시 전라도에서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어른들은 오히려 깔깔대고 웃으며 좋아했다.
“심기를 귀찮게 할지 모르지만, 다시 정계에 복귀하시면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순간, 갑자기 DJ가 눈을 번쩍 부릅뜨면서 보고 있던 텔레비전을 껐다. “아니 장 비서, 지금 뭐라고 그랬어요. 그게 무슨 말이지?”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DJ가 다시 평상시 얼굴 표정으로 돌아가 말했다. “방금 전에 나에게 뭐라고 했어요? 내가 다시 정계 복귀하면 당선될 수 있다고?” “예, 어느 때보다 가능성이 높습니다.” DJ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 보고서가 그거여? 알았으니 나중에 하지 그래. 나 정치 안 해요.”
하지만 그게 DJ의 본심이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하겠습니다.” 내가 보고서를 들고 일어서자, DJ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장 동지, 그 보고서는 놓고 가지 뭐하러 가져가.” “그럼 놓고 갈까요?” DJ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놓고 가세요.”
초조한 마음으로 비서실로 돌아가 DJ로부터 반응이 나오기를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 1시간 반쯤 지났을까, 나를 찾는 벨 소리가 울렸다. 다시 서재로 내려갔다. 한결 편안한 표정이 된 DJ가 나를 보고 말했다. “이 보고서 나 아직 안 봤는데, 이런 거 앞으로 올리지 마세요. 올려서도 안 돼요. 기왕 올린 거니까 내가 갖고 있겠지만 누구한테도, 우리 집사람한테도, 가족들 누구한테도, 장 동지가 이런 걸 올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안 돼요. 장 동지도 절대로 외부에 이런 게 누설되지 않도록 하고. 이 보고서는 내가 외부에 나가지 않게 보관하고 있겠어요.” DJ는 그러면서 책상 서랍을 열어 보고서를 넣고는 열쇠로 잠갔다. 내실을 막 나서려는데 DJ가 혼잣말처럼 물었다. “그런데 장 동지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됐지?” “예, 드골과 카터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면서 총재님을 연결시켜 봤습니다. 물론 당장 복귀는 말도 안 되고요.” “그래요, 알았어요.”
DJ가 그 보고서를 읽고 힘을 얻어 정계 복귀를 다시 고려하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누군가의 입에서 “다시 정치를 시작하시라.”는 말이 나온 것 자체가 그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었음은 분명해 보였다. DJ는 다음 날부터 식사를 시작했다. 마루에 올라오고, 마당에 나가 개도 보살피고, 평소대로 참새에게 쌀알을 뿌려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