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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판타지/환상문학 > 외국판타지/환상소설
· ISBN : 9788932324197
· 쪽수 : 428쪽
· 출판일 : 2025-04-25
책 소개
목차
2부 생존 도시
3부 템스강
4부 자유의 섬
책속에서
“그럼 손님, 뭘 도와드릴까요?” 애플비가 물었다.
“아, 당연히 돈이지.” 소녀의 턱이 껌을 씹느라 몇 번 더 움직였다. 애플비에게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여기 은행을 털러 왔거든.”
애플비는 저도 모르게 목구멍 깊은 곳에서 소리를 냈다. 미친 여자인가? 아무리 유아기 때부터 비정상인을 확인하고 감시하고 걸러내도 늘 일탈자들이 있는 걸 보면 정말 놀라웠다. 빨간 머리와 창백한 피부를 보고 알아챘어야 했는데. 아니면 저 이상한 눈이라도.
“진심인가요? 그러니까 정말로 아가씨가…. 미안해요. 이름을 제대로 못 들은 거 같군요.” “그야 내가 말하지 않았으니까. 당신 뒤쪽 벽에 금고가 있군. 자, 금고 문을 여는 데 육십 초 드리지. 이름이….” 소녀가 책상 위 은색 명판을 흘끗 봤다. “호레이스 애플비. 아! 이런, 이제 난 아저씨 이름을 아네. 이렇게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지 뭐야? 육십 초야, 애플비 씨. 지금부터 시작하시지.”
“하지만 그것들이 날 갈기갈기 찢을 거야. 다리를 똑 떼어내겠지. 내 비명이 네 귀까지 들릴걸.”
“안 들려. 아주 멀리 가 있을 테니까.” 스칼렛이 말을 이었다. “아무튼, 넌 잡아먹히지 않을 거야.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어. 놈들이 곰을 먼저 잡아먹을 테니까. 곰은 살이 엄청 많잖아. 다 먹으면 밤이 절반은 지나 있을걸.”
“나머지 절반 동안 벌어질 일은 어떻게 하라고.” 알버트는 버림받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내 팔이 뜯겨나가는 소리가 들릴 거야. 멀리서 팍팍 찢기는 소리가 날 거야. 팍, 팍, 팍. 그리고 난 죽겠지. 그게 내 운명일 거라고.”
“아니, 그렇지 않아. 그리고 대체 넌 팔이 몇 개야? 세 개? 너만큼 나도 잡아먹힐 가능성이 높아. 난 깊은 숲으로 갈 거거든. 여기보다 훨씬 위험한 곳이지. 오염된 자들이 사는 곳이거든….”
그들은 어두운 방 안에서 숨죽인 채 기다렸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침묵만이 흘렀다.
스칼렛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알버트의 어깨가 축 처졌다. 그는 스칼렛에게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그때 삐걱,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다시 한순간이 흘렀다. 아주 짧았지만 매우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알버트의 얼굴이 공포에 질렸다. 두 눈을 꼭 감은 채 뜨지 않았다. 스칼렛은 몸부림치는 아이의 머리 위로 알버트를 계속 응시했다. 그렇게 하면 아이가 낸 치명적인 소음의 결과를 뒤집을 수 있다는 듯이. 그러나 문이 도로 닫히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이제 뭔가가 복도를 따라 걷듯 부드럽고 규칙적으로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