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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추리/미스터리소설 > 기타국가 추리/미스터리소설
· ISBN : 9788932915197
· 쪽수 : 216쪽
책 소개
목차
매그레
『매그레』 연보
조르주 심농 연보
리뷰
책속에서
「파리에서 오는 길이냐?」
잠이 덜 깬 매그레가 벽난로에 기대며 물었다. 길에 서 있는 택시의 존재가 전구만큼이나 그 질문을 우습게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때론 말을 하기 위해 말하는 경우도 있는 법.
「다 말씀드릴게요, 이모부. 지금 제가 처한 상황이 아주 끔찍합니다. 절 도와주시지 않으면, 지금 당장 함께 파리로 가주시지 않는다면, 앞으로 제가 어떻게 될지 몰라요. 아마 미쳐 버릴 겁니다. 아 참, 이모한테는 제대로 인사도 못 드렸네요!」
그는 잠옷 위에 가운만 걸친 매그레 부인의 뺨에다 세 차례 볼 인사를 했다. 마치 아이처럼 의식을 치르자마자, 식탁 앞에 앉더니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매그레는 파이프에 담배 가루를 다져 넣었고, 부인은 벽난로에 잔가지를 채워 넣었다. 어딘가 비정상적이고 불길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은퇴한 이후, 매그레는 한밤중에 잠에서 깨는 버릇이 사라졌다. 한데 지금 이러고 있자니, 환자나 사망자 곁에서 며칠이고 지샜던 밤들이 불쑥불쑥 생각나는 것이었다.
「어떻게 제가 그처럼 멍청하게 굴었는지 모르겠어요!」
필리프는 느닷없이 훌쩍거렸다.
이미 그는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수없이 밟고 또 밟았던 계단이었다. 이보다 좁은 왼쪽 계단은 실험실로 통했는데, 그곳 역시 구석구석, 유리병 하나하나까지 손에 만져질 듯 눈에 선한 장소였다.
매그레의 발길이 닿은 곳은 다시 3층. 형사들이 모두 나가고 없었다. 방문객들이 하나둘 문 앞에 자리 잡기 시작하고 있었다. 소환되어 온 사람들, 하소연할 일이 있어 온 사람들, 무언가 고발거리가 있어 온 사람들, 용건은 제각각이었다.
생의 대부분을 이런 환경에서 보낸 매그레였지만, 지금 자신을 에워싼 이 모든 것을 그는 문득 역겨운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필리프는 여전히 국장실에 있는 걸까? 아닐 것이다! 지금쯤엔 구속 절차가 진행돼, 동료 형사 두 명에 의해 수사 판사의 방으로 끌려 들어가고 있을 터다!
저 가죽 입힌 문짝 너머에서 그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댔을까? 이렇게 허심탄회한 얘기를 해줄 만큼 솔직한 태도이기나 했을까?
<한마디로 당신은 과실을 범한 거요. 당신에게 불리한 단서가 너무 많아, 아직도 당신이 자유롭게 나다니는 걸 사람들은 의아하게 생각할 거요. 대신 우리가 적극 나서서 진실을 밝혀내리다. 당신은 여전히 우리 식구이니 그렇게 알고 있어요.>
아마도 그런 말은 해주지 않았을 것이다. 모르긴 해도, 불편한 심기로 아마디외를 기다리는 동안 헛기침이나 해가며 이렇게 으르렁거렸을 터다.
<나로서는 귀관을 뿌듯하게 바라볼 여지가 전혀 없소. 귀관은 이모부 덕분에 이곳에 그 누구보다 쉽게 들어온 처지요. 그런데, 그런 혜택에 부합할 만큼 처신해 왔다고 생각하오?>
거기에 아마디외는 한술 더 떴을 것이다.
<지금부터 당신과 관련된 일은 수사 판사의 소관이오. 이젠 아무리 애써도, 우리가 당신을 위해 해줄 일은 아무것도 없는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