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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88932915937
· 쪽수 : 336쪽
· 출판일 : 2013-03-20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그가 버려진 물건들의 사진을 찍는 일을 한 지도 이제 1년이 다 되어 간다. 하루에 일거리가 적어도 두 건은 있고, 많으면 예닐곱 건씩 있는 날도 가끔 있다. 동료들과 함께 또 다른 집에 들어갈 때마다 눈앞에 물건들, 식구들이 떠나면서 버리고 간 무수한 폐물들이 펼쳐진다. 이제 그곳에 없는 사람들은 남부끄러워 허둥거리면서 황망히 도망쳐 버렸다. 그들이 지금 어디에 살고 있건(살 곳을 찾아서 길바닥에서 노숙하는 신세를 면했다면 말이지만) 새로운 거처는 그들이 잃어버린 집보다는 틀림없이 작을 것이다. 집 하나하나가 실패의 이야기이다. 파산과 체납, 빚과 가압류로 이루어진 이야기들이다. 그는 무슨 사명처럼, 풍비박산한 그들의 삶이 마지막으로 남긴 흔적을 기록함으로써, 자취를 감춘 그 가족들이 한때는 여기에 있었으며, 그가 결코 볼 일도 없고 알 일도 없는 그 사람들의 유령이 빈집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버려진 물건들 속에 아직 남아 있음을 입증하려 했다.
여섯 시간을 꼬박 자본 것이 언제 적인지, 심란한 꿈에 잠을 설치거나 새벽에 문득 눈을 뜨지 않고 여섯 시간을 내리 자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러한 수면 장애가 나쁜 신호이고 앞으로 골치 아픈 일이 닥치리라는 어김없는 경고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어머니가 아무리 말해도 다시 약을 복용할 생각은 없었다. 그런 약을 먹는 것은 죽음을 1회분씩 삼키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일단 그런 짓을 시작하면 하루하루는 망각과 혼돈의 멍한 식이 요법으로 바뀌고, 항상 머릿속이 목화솜과 구겨진 종이 뭉치로 꽉 찬 듯한 기분이 들게 된다. 엘런은 삶을 지속하기 위해 삶을 정지시켜 버릴 생각은 없었다. 자신의 감각이 깨어 있기를, 머리에 떠오르는 순간 사라져 버리지 않는 상념들을 생각하기를, 과거 살아 있다고 느꼈던 식으로 살아 있다고 느끼기를 바랐다. 아직은 무너져서는 안 되었다.
아들의 눈에 아버지는 영웅이 아니었다. 지나간 시대에서 온 노쇠한 인물일 뿐이었다. 조금 후 머너와 단둘이 방에 남자 마치가 그녀를 돌아보며 말한다. 끔찍하군. 로이: 뭐가요? 마치: 젊은것들 말이야! 로이: 군대에서도 젊은 사람들을 보지 않았어요? 마치: 아니. 다 늙은이들뿐이었어. 나처럼.
마일스 헬러도 늙었다. 난데없이 떠오른 생각이었지만 일단 그 생각이 한번 떠오르자 그것이야말로 그를 제이크 봄이나 빙 네이선을 비롯하여 그녀가 아는 다른 모든 젊은 남자들과 구별 짓는 본질적인 진실임을 깨달았다. 수다스러운 남자애들 세대, 그중에서도 병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말 많은 2009년 남자들과 달리 세뇨르 헬러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잡담은 할 줄을 몰랐으며 자신의 비밀을 누구하고도 나누지 않으려 했다. 마일스는 전쟁에 나갔다 온 것이다. 모든 병사들은 고향에 돌아올 때에는 늙은 남자들이며 자기들이 치른 전투에 대해서는 절대 말하지 않는 과묵한 남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