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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독일소설
· ISBN : 9788934991946
· 쪽수 : 384쪽
· 출판일 : 2021-03-08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180마르크. 어느 정도 안심이 되었다. 이 정도면 나라를 뜰 수도 있을 거야. 아직 뜰 수 있다면 말이지. 하지만 설령 그렇다고 해도 그는 떠날 생각이 없었다. 재산을 지키고 싶었다. 이렇게 졸지에 뺏길 순 없어. 암, 안 되지.
다 잘된다면 내일 베커가 8만 마르크를 가지고 올 거야. 그는 희망에 부풀었다. 거기에 더해 집값으로 1만 마르크를 현금으로 받아. 운이 좋으면 손해를 좀 보더라도 저당권을 팔 수 있을 테지. 질버만은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나는 여전히 꽤 부자야. 그는 이런 결론을 냈다. 가난한 반유대주의자들은?가난한 반유대주의자들이 정말 아직도 있다면?온갖 단점에도 불구하고 부유한 유대인이랑 처지를 바꾸려고 할 거야. 이런 상상을 하자 마음이 좀 가벼웠다. 그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한번 해봐야 해. 하지만 그들이 왜 처지를 바꾸겠어? 돈만 빼앗으면 부유한 반유대주의자가 되는데.
객실에 도착해 다급하게 문을 잠그고, 생각에 잠기려 침대에 몸을 던졌다. “유대인이 맞더군요.” 싸늘하게 설명하는 종업원 목소리가 들렸다. “유대인이 맞더군요…….” 종업원에게는 물론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유대인 체포란 손님이 주는 팁처럼 지극히 평범한 일상다반사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유대인이 체포됐다. 유대인이라서. 다른 이유가 필요한가? 종업원이 볼 때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여기 묵으면 안 되겠다. 질버만은 이렇게 결심하고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넓은 객실을 둘러봤다. 여기서는 절대 자면 안 돼. 어쩌면 한밤중에 나를 침대에서 끌어낼지도 몰라. 그러는 와중에 소음이 약간 발생하면 투숙객들이 깨서 문을 열고 룸메이드에게 무슨 일인지 물을 테고, 그러면 아마 이런 대답을 들을 것이다. “아, 아무 일도 아니에요. 방금 유대인 한 명이 체포됐어요. 그게 다예요.” 그러면 사람들은 이렇게 대답하겠지. “아, 그렇군요……. 그런데 체포하면서 이렇게 요란스러워야 하나요?”
“저는 가게에 앉아서 다른 사람들이 깃발을 들고 노래 부르며 지나가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흐느껴 울고 싶을 때도 가끔 있었어요. 정말입니다. 모두 오래전부터 알던 지인이었어요. 전우 모임, 카드놀이 클럽, 동업조합 등이었죠. 저쪽은 모두 예전 친구인데, 당신은 홀로 앉아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당신과 뭔가 함께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당신이 그들 중 한 명을 만나면, 그가 모른 척하는 모습을 안 보려고 당신이 먼저 고개를 돌린다고 말이지요. 저는 어디로도 갈 용기를 내지 못했습니다. 누군가를 만나면 또 속을 끓일 거라고 늘 생각했지요. 저 아이와는 함께 학교에 다녔고, 또 다른 사람과는 직업교육을 받았거나 단골 술집에서 같이 술을 마셨는데, 지금은? 지금은 당신이 형체도 없는 공기가 된 겁니다. 나쁜 공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