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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88936460327
· 쪽수 : 619쪽
· 출판일 : 2013-04-10
책 소개
목차
서문
일러두기
제1부 아사녀
제2부 금강
제3부 신동엽전집(1975)
제4부 꽃같이 그대 쓰러진
제5부 미간 시편
연보
찾아보기
리뷰
책속에서
[엮은이 서문]
올해는 한국전쟁이 끝나고 휴전협정(1953년)을 맺은 지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우리는 하필 이해를 맞아 새롭게 신동엽 시인의 시전집을 낸다. 대관절 휴전협정과 신동엽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허나 그의 생애를 가만히 더듬어보면, 한국전쟁의 상흔은 그의 삶과 죽음에 선연히 아로새겨져 있다. 국토가 분단되고 급기야는 동족 간에 피어린 전쟁으로 치닫던 시기에, 1930년생인 신동엽은 만 스무 살의 청춘이었다. 당시 그는 좌우 갈등의 틈바구니에서 적잖은 고초를 겪었고, 무수한 아사자만 남긴 채 해체되어버린 국민방위군에 징집되어 떠돌다 걸린 디스토마로 인해 결국 그의 죽음이 재촉되었다. 분단된 조국의 참혹했던 전쟁은 시인의 영혼에 새겨진 지워지지 않는 상처이다. 그러하기에 그는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껍데기는 가라」)고 절규한 것이리라.
그러나 휴전 이후 60년이 지났건만, 우리의 조국은 아직도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 남아 있다. 전쟁의 상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자주와 평화와 통일에 대한 열망으로 분출하던 시인의 꿈 또한 진행형일 수밖에 없다. 그가 꿈꾼 “꽃피는 반도는/남에서 북쪽 끝까지/(…)/중립의 분수는/나부끼”(「술을 많이 마시고 잔 어젯밤은」)지 않고 있고,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산문시(散文詩) 1」)는 일도 여태 불가능해 보인다. 오히려 현실은 정반대로 파국을 향해 치닫고 있지 않은가. 바야흐로 북핵 문제가 반도를 넘어 동아시아로, 태평양 건너로 한 갑자가 지난 지금에 또다시 포연의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위기의 순간에 우리는 도리어 그의 시전집을 새롭게 꾸려내어,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껍데기는 가라」)고 외치면서 “갈아엎”(「사월은 갈아엎는 달」)고자 한 시인의 꿈을 ‘4월’에 다시금 세상에 전하고자 한다.
하지만 시인의 꿈을 다시 새롭게 재구성하자는 우리의 생각은, 그 일의 매혹에도 불구하고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당초 우리가 전집의 재구성을 제의받은 것이 시인의 30주기 이후 어느 시점이었으니, 벌써 십여년의 세월이 흘러간 셈이다. 그사이에 여러가지 사정이 꼬이면서 차일피일 미뤄져오던 것이 마침내 올해 신동엽문학관의 개관과 더불어 빛을 보게 되어 우리는 참으로 다행스러움을 느낀다.
전집을 구성하자는 의견이 나온 뒤 편집자들과 세운 원칙은, 새로운 전집은 우선 많은 독자들이 편하게 신동엽 시의 전체를 볼 수 있도록 꾸미되 연구자들이 보기에도 큰 지장이 없도록 하자는 절충적인 것이었다. 원문의 뜻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현대적 표기를 한 것 또한 일반 독자들의 접근을 보다 쉽게 하기 위해서다.
기왕의 『신동엽전집』은 1975년에 간행되었으나 두달도 못되어 긴급조치 9호에 위반된다는 이유로 판매금지조치를 당하고, 긴급조치가 풀린 1980년 봄에 증보판을 냈지만 “잠깐 빛났던/(…)/영원의 하늘”(「금강(錦江)」)과 같았던 이른바 ‘서울의 봄’을 뒤로하고 다시 판매금지조치가 내려지는 시련을 겪었다. 그 와중에도 그의 시는 시들지 않고 끊임없이 사람들의 입과 귀에 불리고 들리어 ‘살아 있는’ 현실이 됨으로써, 1987년 마침내 전집이 자유롭게 시판되기에 이르렀다. 또한 전집에 실리지 못한 작품이 새로이 발굴되고 미발표 유고시집(『꽃같이 그대 쓰러진』)으로 묶여 1988년에 간행되기도 하였다. 1989년에는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시 「산에 언덕에」가 수록되고, 그 후로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들에도 대표작들이 계속 수록되는 등, 그의 시가 많은 독자들로부터 애송되고 있음을 감안할 때, 기존에 나왔던 시집들에서 미흡한 점들을 보완하고 그의 시세계에 대한 새로운 종합이 필요하다는 데 암묵적 동의가 있었다.
그러던 차에 유고시집 외에도 시인의 다른 유고가 더 있다는 사실이 신동엽 시인의 문학관 설립 논의가 진행되면서 밝혀졌다. 시인의 모든 유품과 유물들은 그의 부인인 인병선 여사에 의해 관리?보존되어 왔는데, 이들 유품들 중 시인의 등단작인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 초고본 노트를 비롯한 자료가 발굴된 것이다. 한편 신동엽 40주기에 이르러서는 21세기에 들어와 새롭게 변화하는 세계인식의 지평 안에서 신동엽의 문학세계를 더욱 새롭게 조망하려는 연구시각이 도입되기도 하였다. 즉, 20세기까지는 민족주의라는 제한된 틀 속에 시인을 가두어두었지만, 새로운 세기에는 세계적 보편의 차원에서, 또 미래적 전망과 더불어 그의 문학세계를 확산시켜나가고자 한 것이다.
이제 신동엽문학관의 개관을 목전에 두고 있다. 그리고 시인의 작품과 다른 유품들을 ‘신동엽 ebook 아카이브즈’라는 이름으로 사이버문학관(https://www.shindongyeop.com)을 통해 곧 세상에 선보인다. 이를 통해 그의 문학 전체의 상이 자세히 드러날 것이다. 이에 발맞추어, 이번에 내는 이 『신동엽 시전집』은 그동안의 다양한 요구들을 나름대로 망라하고자 노력하였다. 기존에 출간된 『신동엽전집』에 수록된 시들과, 유고시집의 작품들, 그리고 이번에 새롭게 공개되는 사이버문학관을 통해 선보이게 될 시들까지 아우름으로써 명실상부한 시전집으로 거듭날 것을 우리는 기대한다.
또한 이 시전집이 향후 신동엽 연구의 새로운 초석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없지 않다. 가령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의 텍스트 문제는 좋은 예가 될 것이다. 현재 알려진 이 작품의 판본은 두가지로, 시집 『아사녀』(1963) 수록본과 등단 당시 발표된 조선일보본(1959)이 그것이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조선일보본은 투고 당시 작품에서 40여행이 삭제되었다고 전해지는데, 이를 『아사녀』 수록본에서 어느 정도 복원했다고는 하나, 당시의 정치적?사회적 상황으로 인해 충분히 실현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마침 이번에 수정 수록을 위해 준비한 것으로 추정되는 원고를 찾아내어 그대로 실었다. 새로운 판본이 하나 더 추가된 것이다. 이는 원본비평이라는 정본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될 뿐만 아니라, 검열이나 판금과 같은 문학 외적 상황과 관련된 문화정책 및 문화제도 연구에도 필요한 소재로 활용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에 더하여 조만간 전집의 산문편까지 새롭게 발간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그래야만 신동엽 시인의 전체적인 진면모를 다각적으로, 종합적으로 조망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내는 데 인병선 여사의 도움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40여년의 세월동안 신동엽 문학의 정수를 지켜온 그 정성과 노력은 어떠한 필설로도 다하지 못할 것이다. 또 이 책의 발간을 위해 오랫동안 수고한 창비 편집부의 노고는 단순한 감사의 말로 대신하기 힘들다. 우리는 나름대로 애를 썼다고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오류는 복병처럼 나타날 수도 있으니, 이는 전적으로 편자인 우리의 책임이다.
모쪼록 이 새 시전집이 신동엽 시인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또 이 땅에서 시를 쓰는 일이 정녕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묻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두루 사랑받게 되기를, 그래서 이 땅에 민주의 세상과 통일에 보탬이 되는 구체적 힘으로 기여하기를 가슴 여미며 빈다.
2013년 4월
강형철·김윤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