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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사 일반
· ISBN : 9788936810085
· 쪽수 : 360쪽
· 출판일 : 2011-02-07
책 소개
목차
1장. 고대의 명장
을지문덕 - 살수대첩으로 고구려의 영웅이 되다
김유신 - 삼국통일의 대업을 달성하다
연개소문 - 당나라와 숙명적 대결을 펼치다
양만춘 - 당나라에 맞서 안시성을 지켜내다
계백 - 백제의 마지막 구국혼을 불사르다
장보고 - 통일신라에서 해상강국의 꿈을 펼치다
궁예 - 몰락하는 신라에 맞서 미륵의 나라를 세우다
견훤 - 후백제를 세우고 후삼국 시대를 열다
2장. 고려의 명장
왕건 - 고려를 건국하고 후삼국을 통일하다
서희 - 대담한 협상으로 거란의 대군을 물리치다
강감찬 - 귀주대첩으로 고려를 구하다
최충헌 - 무인정권 시대의 정점을 달리다
최영 - 뛰어난 용맹과 굳은 절개로 고려의 마지막을 지키다
변안렬 -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다
3장. 조선의 명장
이성계 - 불패의 명장, 조선을 건국하다
이종무 - 쓰시마 원정으로 왜구를 제압하다
최윤덕 - 실력과 덕으로 4진을 개척하다
김종서 - 호방한 기개로 북방 6진을 개척하다
신립 - 탄금대에 배수진을 치다
이순신 - 불멸의 명장, 조선을 구하다
정기룡 - 젊은 무장, 왜적을 물리치다
권율 - 행주대첩으로 조선 육군의 위용을 세우다
곽재우- 홍의장군, 의병을 일으키다
장만- 과도기 조선의 병권을 잡다
남이흥- 정묘호란을 맞아 순절하다
임경업- 병자호란, 치욕과 맞서다
4장. 근대의 명장
양헌수 - 병인양요에서 적의 공격을 물리치다
유인석 - 위정척사의 기치 아래 항일의병을 일으키다
홍범도 - 항일독립전쟁에서 용맹을 떨치다
김좌진 - 청산리 전투의 영웅이 되다
지청천 - 광복군 사령관으로 항일무장투쟁의 대미를 장식하다
저자소개
책속에서
이성계가 무장으로 활동하던 14세기 중엽은 중국 내륙에서 명나라가 일어나 원나라 세력을 몰아내던 때였다. 고려는 이 시기에 원나라의 간섭에서 벗어나 세력을 확대하고자 했다. 이 때문에 원나라와 사이가 나빠져 자주 무력 충돌을 빚었다. 게다가 정세가 혼란한 틈을 타 북으로는 여진족, 남으로는 왜구의 침탈이 끊이질 않았다. 이성계는 이즈음 여러 전투에 참여해 전공을 세우며 고려 무장으로서 확실한 지위를 차지했다.
1361년(공민왕 10)에 독로강 만호인 박의가 반란을 일으켰다. 박의의 무리가 정부군을 무너뜨리고 기세를 올리자 이성계가 친병조직을 이끌고 출동해 박의를 토벌했다. 또 같은 해 홍건적이 고려를 침입해 개경이 함락될 지경에 이르렀을 때도 이성계가 군대를 이끌고 개경 탈환작전에 나섰다. 이성계는 성에 가장 먼저 입성해 승리했다. 이로써 이성계는 공민왕의 신임을 얻게 되었고, 무장으로서의 능력도 인정받았다.
1362년(공민왕 11)에는 원나라가 쌍성총관부를 되찾기 위해 병사 수만 명을 이끌고 침입했다. 이때 원나라의 사주를 받은 여진족 나하추의 부대를 맞아 고려군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러자 공민왕은 이성계를 동북면병마사로 임명해 출정하도록 했다. 당시 나하추 부대는 계속된 승리에 도취되어 있었다. 그러나 결국 이성계의 거침없는 공격에 맥을 못 추고 대패했다. 나하추는 수하 몇 명과 함께 겨우 목숨을 부지해 도망치면서 말했다고 한다.
“이자춘이 지난날에 ‘내가 재주 있는 아들이 있노라’라고 하더니, 과연 거짓말이 아니었다.”
1364년(공민왕 13), 원나라로 도망을 갔던 충선왕의 셋째 아들 덕흥군이 고려 출신 최유와 함께 군사 1만 명을 이끌고 쳐들어왔다. 원나라를 등에 업은 덕흥군은 공민왕을 폐하고 고려의 왕이 되려고 했다. 압록강을 건너온 덕흥군과 최유의 군대를 의주에서 만난 고려군이 패전해 후퇴하자, 공민왕은 최영을 급파하고 이성계 역시 출정시켰다. 최영과 이성계는 수주 달천에서 적에 맞서 합동작전을 펼쳤다. 이성계는 뛰어난 궁술로 적장을 쓰러뜨려 승기를 잡은 후 덕흥군의 선봉부대를 무찔렀다. 이어서 최영과 함께 주력부대를 공격해 큰 승리를 거두었다.
철통같이 북방을 지켜오던 이성계는 1376년(우왕 2)에 왜구를 토벌하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남으로 내려왔다. 당시 일본은 내분을 겪어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웠다. 그 때문에 살기가 힘들어진 일본의 일부 영주들은 무사들을 이끌고 고려나 중국 해안을 침입해 노략질을 일삼았다. 이성계는 경상도와 전라도 일대에서 고려의 백성을 괴롭히다가 충청도까지 올라온 왜구를 지리산 일대에서 물리쳤다. 특히 1380년(우왕 6)에는 아기바투가 이끄는 왜구가 함양과 경산, 상주까지 올라와 노략질을 했는데, 이성계가 이들을 운봉에서 맞아 섬멸했다. 이를 황산대첩이라고 한다. 이 전투에서 최무선이 화약과 화통을 이용한 포를 개발해 처음 사용하기도 했다.
이성계는 1382년(우왕 8)에 여진족 호바투가 동북면 일대를 침략하자 다시 북으로 올라가 이들을 격퇴했다. 또한 1385년(우왕 11)에는 함주까지 올라온 왜구를 무찔렀다. 이처럼 크고 작은 전투에서 뛰어난 전략과 용맹으로 승리한 이성계는 고려가 인정하는 최고의 맹장으로 이름을 높였다.
그러다 마침내 1388년(우왕 14)에는 수문하시중에 올랐다. 이는 최영이 맡고 있던 최고관직 문하시중 바로 아래 직급이었다. 이로써 이성계는 고려 조정에서 명실상부한 지위와 권력을 쥐게 되었다.
- 패전을 모르는 맹장, 이성계, <이성계 - 불패의 명장, 조선을 건국하다>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