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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37456961
· 쪽수 : 260쪽
· 출판일 : 2024-07-26
책 소개
목차
토템, 토템 7
꿈은, 미니멀리즘 51
모닝 루틴 95
501호의 좀비 125
탄생 163
친구가 되어 드립니다 191
공범의 반대말 227
작가의 말 238
작품 해설
다인분의 삶_김보경(문학평론가) 242
저자소개
책속에서
잠자리 한 마리가 소명의 시선을 가로지르며 날아갔다. 벌써 잠자리가 등장하다니. 한 해의 절반이 지나 버렸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또래 친구가 소유한 것, 회사 동료들이 가진 것, 그러나 자신은 갖지 못한 것과 여전히 부족한 점들이 차례차례 떠올랐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잠시나마 머릿속을 완전히 비우는 데도 연습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무슨 생각 해요?” 동우가 침묵을 깨며 소곤거렸다.
“아무것도, 아무 생각도 안 해요.”
소명이 말했다. 그것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이제부터 소명은 정말로 머릿속을 텅 비워 볼 참이었다. 자신에게 그러한 시간이 얼마나 필요한 것이었는지 소명은 지금 막 깨달았다.
―「꿈은, 미니멀리즘」에서
유림아, 너를 품고 있을 때 엄마는 무척이나 충만했단다. 그와 동시에 고통스럽고 고독했단다. 나는 속으로 그렇게 말하며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선다. 두 딸의 손을 한 쪽씩 잡고 지독하게 외로운 기분이 들거든 꼭 엄마에게 얘기해 달라고 한 번 더 말한다.
“유림이, 진이, 둘 다 알았지? 엄마랑 약속하는 거야?”
“응!” 진이가 먼저 대꾸하자 “아빠한테도.” 하고 남편이 덧붙인다.
진이가 목소리를 높여 아빠에게도 얘기해 주겠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엘리베이터가 1층을 향하는 동안 유림은 여전히 입을 꾹 닫고 있어서 조바심이 난다. 이윽고 문이 열리자 대답을 안 해 주면 걱정이 된다고 채근하는 나를 유림이 엘리베이터 밖으로 부드럽게 끌어당긴다.
“말 안 해도 알던데 뭐.” 유림이 겸연쩍은 듯 중얼거린다. “나한테 고민거리 있으면 꼭 엄마가 먼저 물어보던데? 우리 큰딸 무슨 일 있구나 하면서.”
―「탄생」에서
성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눈빛을 보면 누구라도 모를 수가 없을 것이다. 연애가 막 시작될 즈음에 볼 수 있는, 특수한 발광체를 삼킨 듯한 눈빛. 그렇게 빛나던 눈빛이 뿜어내는 열기가 한순간 사그라지기도 한다는 사실은 경험을 통해 혹독히 배웠다. 그러나 성지는 그 점이 두려워서 연애를 피할 생각은 없었다. 실은 반대였다. 그런 눈빛을 주고받을 수만 있다면 로맨스는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가능한 게 아닐까 싶었다.
우솔의 팔짱을 끼면서 성지는 로맨스가 피어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성인이 되고 자기 세계가 확고해진 후에 친구를 만드는 일 같다고 생각했다. 연애 감정이나 인맥상 필요와 무관한 사심 없는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일이 몇 배는 더 막막하게 느껴졌다.
―「친구가 되어 드립니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