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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68127272
· 쪽수 : 100쪽
· 출판일 : 2023-09-13
책 소개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여행은 날씨가 반’이라는 말을 기준으로 한다면 이번 여행은 이미 절반쯤 성공한 셈이었다. 성공이라는 말은 턱을 쳐든 채 멀고 높은 곳에 버티고 선 누군가를 연상시켰고, 거듭 되뇌자 두 개의 이응 받침이 제자리를 빠져나와 사방으로 튀어 오르는 것만 같았다.
기사는 자기 딸 또래라서 그렇게 되었다며 웃더니 내릴 채비를 하는 우리에게 모쪼록 춘천에서 어디에 들르든 즐겁게, 안전하게 있다 가라고 말했다.
“털끝 하나도 다치지 말고, 안전하게 있다가 가요.” 기사가 한 번 더 강조했다.
“네, 기사님.” 은하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기사님도 안전 운행 하세요.”
전망대의 유리창에 코가 닿을 듯 가까이 서서 발밑을 내려다보면 잠시나마 만사가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전지전능한 존재의 시선을 상상하기도 했는데, 언젠가부터는 제법 구체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었다. (……) 내내 지켜보기만 하는 일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반발심이 치밀어 올랐다. 상체를 기울이고 세상을 굽어보는 실루엣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앞모습을 비추면 어떠한 일에도 개입할 의사가 없어서 굳게 팔짱을 낀 모습에 불과한 게 아닐까. (……) 나는 고개를 저었다. 다음 순간에는 잠시나마 엉뚱한 대상에게 분노했다는 자각이 들었다.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아니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일,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던 일이 일어난 것이다. 거대한 실루엣을 붙잡고 늘어지는 것은 일방적인 책임 전가에 지나지 않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