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2638669
· 쪽수 : 283쪽
· 출판일 : 2025-06-25
책 소개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반희는 그날 속으로 삼켰던 질문을 이후에도 차마 묻지 못했다. 그런 채로 변함없이 루미와 함께 수학을 공부하고, 입시를 치르고, 성인이 되었다. 각자 다른 대학교에 진학한 후에도 이따금 먼저 연락을 하는 쪽은 반희였다. 안부를 묻지 않은 채 몇 달이 지나면 엄마가 먼저 챙기기도 했으므로 루미에게 못해도 한 계절에 한 번쯤은 잘 지내느냐고 메시지를 보내면서 반희는 늘 너희 아버지는 여전히 전과 같은 상태냐고 적고 싶은 것을 참느라 한숨을 삼켰다. 그렇게 한숨이 더해지는 동안 반희는 난생처음으로 누군가를 마음 깊이 미워하는 일에, 그럴 때 느끼는 감정에 눈뜨게 되었다.
잔치 국수 그릇마저 말끔히 비운 후에 몇 번이고 맛을 칭찬하는 아빠의 모습은 국숫집 주인에게도 매력적으로 보일까. 루미는 패딩 점퍼에 팔을 꿰며 생각했다. 만일 아빠가 외투라면 여기 벗어둔 채로 가련만. 가방이라면 의자 아래 밀어둔 채 문밖으로 달려 나가련만.
때마침 메시지를 보낸 현이 오늘 저녁에 바쁘냐고 물었으므로 루미는 곧장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어디든 좋으니 네가 원하는 곳으로 가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별을 미루고 미루면서 앞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몇 살까지 지금처럼 기약 없는 꿈을 갈망하며 살 수 있을까. 누군가의 의견을 듣고 싶었지만 마땅한 사람이 없었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의 견해는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될 리 없었고, 사정을 알 만한 사람에게 고하기에는 지독하게 초라한 고민이었으므로 현은 홀로 처박혀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이따금 루미가 안부를 물으면 다만 다소 일이 바쁜 양 답하며, 그러고 나면 헛헛한 마음에 반희에게 전화를 걸어서 착신이 정지된 번호라는 안내 문구를 들은 뒤 더욱 헛헛해진 채로 어두운 거실을 서성이며 끝없이 생각했다. 이제 그만두어야 할까. 결국 이 꼴로 그만두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