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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후 일본소설
· ISBN : 9788952237019
· 쪽수 : 292쪽
· 출판일 : 2017-07-21
책 소개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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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책속에서
“엄마, 나 라피스와 만나고 싶어.”
나는 엄마에게 애원했다.
“못 만나. 아무 데도 없으니까.”
빨래를 개던 엄마는 코웃음을 치면서 그렇게 대답했다.
엄마는 나를 바보 취급하며 실망감을 안겨주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못 만나’라는 말이 나의 내장 깊숙한 곳에서 더욱더 뜨거운 열정의 덩어리를 끄집어냈다.
나는 곧 알아챘다. 만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포함하여, 그 사람은 그 사람이라는 것을. 그것까지 포함해 내가 그 소년을 좋아한다는 걸. 온몸에 불가사의한 아픔과 강렬하게 순환하는 혈액의 감촉은 계속되었다. 사랑이란 이런 욱신거림과 아픔을 온몸에 각인시키는 것임을 알았다.
이때 나는 내가 이야기 속 사람에게 처음으로 사랑을 느꼈음을 깨달았다.
그는 내 머리를 쓰다듬는 걸 좋아했다. 둘 다 영화를 좋아해서 자주 함께 보곤 했는데 그때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영화를 보는 게 남편의 버릇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이 터졌다. 개를 쓰다듬는 듯했던 그의 손길이 느닷없이 성적인 것으로 바뀐 것이다.
조금 전까지와는 다른 의미로 움직이기 시작한 손에 이상하네, 기분 탓인가, 하고 넘기려 했지만 갑자기 엉덩이와 가슴을 주무르는 것이 아닌가. 당황해 일어서려는 순간, 꼿꼿이 선 남편의 성기가 무릎에 닿았다.
나는 망연자실할 따름이었다. 설마 ‘가족’에게 욕정을 느낄 줄이야. 비명을 지르려는 찰나, 남편의 입이 내 입을 막았고 입안으로 들어오는 혀를 느끼자 욕지기가 치솟았다. 남편의 입에 토사물을 쏟아낸 나는 놀란 그를 밀치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토하고, 또 토했다.
“우리나라는 왜 아직도 이성 간의 결혼만 인정하는 걸까. 시대에 뒤처졌어.”
주리의 촉촉한 눈동자가 웃음과 함께 가늘어지더니, 새하얀 눈꺼풀 아래 뚫린 구멍 같은 검은 눈동자가 사라졌다.
“그야 자궁이 여자한테만 있어서잖아. 남남 부부가 아이를 가질 수 있다면, 남녀 결혼은 확 줄어들걸? 남자들도 속으로는 남자끼리 결혼하는 게 마음 편해서 좋다고 생각할 거야.”
“그런가? 그럴지도 모르겠네.”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쉽게 변화한다. 지금만 해도 미술실에서 주리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고등학교 시절에 비해 많은 것이 달라졌다. 그때보다 섹스를 하는 사람은 더욱 줄어들었다. 아직 인간과 연애하는 사람들이 꽤 있긴 하지만, 우리 아래 세대에서는 그 역시 줄어드는 추세라고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