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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중국사 > 중국사 일반
· ISBN : 9788952238160
· 쪽수 : 328쪽
· 출판일 : 2018-01-02
책 소개
목차
표
‘지나支那=중국’과 ‘유라시아 동부’ 국가의 변천사
들어가며
중국의 역사를 뒤집어 보다
1. 상상 속 ‘중국 4,000년사’
‘중국사’ ‘중화 문명’이라는 속박의 주문
이민족 통치하에서 번영하다
늘렸다 줄였다 하는 자기중심 사관
2. 문명 사관과 유목 사관
문명 사관의 사고
‘구동력’으로서의 유목
상상 속 ‘중화 문명’
공자의 가르침은 어디로 갔는가
3. 해양 문명에서 멀어지려는 중국
바다에서 펼쳐진 근대화에도 뒤처진 중국
‘동이東夷’, 일본의 근대화에 대한 콤플렉스
제1장 ‘한족’이란 무엇인가
1. ‘한자’ 시스템을 사용하는 사람들
‘한자’와 ‘한인’
다양한 인종의 ‘한인’
태국계 언어의 잔재
바뀌는 ‘한인’
2. 동아시아 대륙의 인적 이동
황하 문명을 쌓아 올린 사람들은 남쪽으로 쫓겨났다
육지에 머무르게 된 민족
‘한족’ 개념 창조와 상상
3. 마르크스의 발전단계설 이식
가설에 문물을 끼워 맞춘 역사 날조
빈곤한 황하(황허)문명이 가져다준 전제주의
뒤집어서 본 사관
제2장 초원에서 문명이 태어나다
1. 문명의 유목 사관
‘초원 문명’과 ‘유목 문명’
중국과 지나는 어떻게 다를까
유라시아 대륙이라는 세계
우메사오 다다오의 『문명의 생태사관』
사막의 문명
2. 청동기문명
초원에 야금冶金 문명이 태어나다
오르도스식 청동기의 수수께끼
중원과 나란히 존재한 오르도스 문명
3. 고대 유목민이 남긴 유적
사슴돌의 수수께끼
제3장 ‘서쪽의 스키타이, 동쪽의 흉노’ 그리고 지나 도교
1. 유목민은 누구인가
폐쇄의 상징 만리장성
몽골 고원에서 도나우강에 걸쳐 형성된 공통문화
2. 스키타이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향했다
헤로도토스 『역사』에 남은 기록
흉노와 훈은 한 뿌리, 같은 민족인가
3. 흉노시대의 지나
전혀 다른 여성관과 종교관
흉노시대의 지나 도교
파룬궁과 도교의 유사성
제4장 당나라는 '한족'의 국가가 아니었다
1. 중앙유라시아의 투르크화
투르크제국과 당나라의 역사적 관계
호인의 호주胡州
대지의 어머니신, 오투켄의 땅
당나라는 ‘한족’의 것이 아니다
오투켄산보다 좋은 곳은 없다!
유목민의 기념물 ‘석인’
당, 중앙아시아에서 후퇴하다
유라시아 동부의 국제성
유목민의 약점
2. 중앙유라시아의 이슬람화
이슬람의 침투
‘사자왕’ 비석의 발견
‘서역’의 허구
석인, 다시 초원으로 돌아가다
제5장 ‘삼국정립三國鼎立’의 시대
1. 세 제국의 병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대키타이국의 흥망
‘억지 중화사상’의 기원
2. ‘탑’을 사랑한 키타이
농경과 유목을 융합시킨 독자적인 문화
3. 너그러운 대하 탕구트와 원나라
서하문자란
4. 다양한 문명이 풍부했던 몽골제국
몽골인이 수용한 금욕적인 티베트 불교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침투
‘말’과 문자가 가진 의미
제6장 마지막 유라시아 제국, 청
1. 주센(여진)인이 세운 금왕조와 후금
예절을 중시하는 유목민
송나라 중심 사관에 따른 왜곡
만추리아(만주)에서 나타나다
주자학과 한자
만주의 대두
2. 만주인의 뿌리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한족에 흐르는 만주 몽골의 ‘피’
한인 기인
황제는 신이다
3. 만주는 언제부터 지명地名이 되었나
일본인과 만주
중국의 현대문화를 만든 만주인
관우의 권세를 빌리다
제7장 중국은 역사에게 보복당할 것이다
1. ‘종교는 아편’인 마르크스주의와 전제주의적 사상
문명사적으로 보는 중국인(한족) 정권의 공통적 약점
현세 이익을 추구하는 중국인의 종교관
3대 종교는 왜 중국에 정착하지 않았는가
몽골 고원에 정착한 기독교
비밀결사화된 이슬람
세계제국 몽골과 종교
배타적 왕조, 명나라시대의 지나는 문화 불모지였다
‘문수보살’에서 유래된 청나라는 개방적이었다
2. 지금도 계속되는 종교와의 충돌
종교 대국 중국의 모순
한인은 왜 종교를 두려워할까
후기
참고 문헌
리뷰
책속에서
예를 들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5년 10월 영국을 방문했을 때, 영국 의회에서 일본의 침략을 일부러 언급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영국이 행한 아편 전쟁의 부조리와 그 뒤 체결된 불평등 조약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것은 중국인이 생각하는 ‘천하’의 외부에서 나타난 영국보다 우습게 여겼던 일본에게 느끼는 콤플렉스가 더 강렬하고 선명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내 생각에는 중국이 이 콤플렉스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근대와 제대로 마주보고 자신의 것으로 소화할 수 없다고 본다.
다만 중국 공산당과 중국의 애국적이고 편협한 민족주의자들을 머리 아프게 하는 문제의 씨앗은 ‘훙산 문명이 만리장성의 북쪽 내몽골의 동부 초원에 있다’는 요소다. 그러니 훙산 문명은 전통적인 황하 문명, 중화 문명은 아닌 데 문제가 있다. 쑤 교수는 황하 문명을 통해 중국의 역사를 말하기엔 무리가 따르지만 중국의 문명이 5,000년이라고 말하고 싶다면 초원 지대의 훙산 문명을 넣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훙산 문명은 초원 지대에 있기 때문에 당연히 북쪽 초원을 통해 유라시아와도 일체화한다. 따라서 중화 문명도 유라시아의 일부로 여긴다면 ‘5,000년의 역사’로 말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는다면 4,000년이라고 단언한다.
최근까지 유라시아 각지의 사막을 녹화하려는 움직임이 일본 등에서 있었지만, 그것은 지구에 부는 편서풍에 맞서겠다는 농경 세계에 사는 인간의 망상적인 행위이며, 낭비일 뿐이다. 다만 근대에 들어와서 구소련과 중화인민공화국의 관할 지역 안에 새로운 사막이 생겨난 것은 사실이다. 이는 유목이 초래한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농경에 적합하지 않은 토지에 러시아와 중국인 농민이 이주해서 밭으로 바꿨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다. 일부에서는 초원을 밭으로 바꾸는 게 녹화 사업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영양층이 얇은 지표가 파괴돼서 사막이 되기 때문에 과학적이나 경험적으로 역효과를 낸다는 사실이 속속 증명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