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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추리/미스터리소설 > 일본 추리/미스터리소설
· ISBN : 9788954438582
· 쪽수 : 416쪽
· 출판일 : 2018-08-25
책 소개
목차
제1장 7
제2장 103
제3장 241
제4장 357
종장 397
리뷰
책속에서
레이코는 입술이 닿을 만큼 바짝 다가가 피해자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또 저런다.”
고미네가 당장이라도 ‘변태’라고 말하고 싶은 얼굴로 한마디 툭 뱉었다. 하지만 그 행동은 레이코 나름의 피해자와의 소통 방식이었고, 반드시 거쳐야 할 의례였다. 빠뜨려서는 안 되는 의식이었다.
가르쳐줘. 당신이 마지막으로 본 것을 나에게 가르쳐줘.
이미 사후강직도 풀린 남자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탁한 눈은 반쯤 열려 있고 시선은 허공 속 한 점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말없는 시체도 때로는 공포를 호소하거나 억울함을 알려줄 때가 있다.
이 남자는 어땠을까? 억울했을까? 슬펐을까? 무서웠을까? 분노했을까?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거야?
딱딱한 땅바닥이 등 밑에서 느껴졌다. 축축하고 차가운 감촉, 화장실의 썩은 냄새, 남자의 거친 숨소리, 바람 한 점 불지 않아 쩍 달라붙는 무더위, 심연과도 같은 여름밤의 암흑.
남자는 압도적인 완력과 체중으로 레이코를 꼼짝 못 하게 만든 채 칼날을 뺨에 대고 위협했다. 여름방학을 맞아 친구들과 경쟁하듯 짧게 입은 치마는 남자가 목적을 달성하는 데 더없이 좋은 조건이었을 것이다. 저항다운 저항도 못 한 채 레이코의 속옷이 벗겨졌다. 남자는 강제로 다리를 벌려 비집고 들어왔다. 남자가 입을 틀어막아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레이코는 입속으로 온 힘을 다해 소리쳤다.
다리 사이가 찢어지는 듯한 극심한 통증, 남자의 폭력에 대한 공포, 집이 바로 근처임에도 아무도 구하러 와주지 않는다는 고독감, 미래를 잃는다는 절망감…….
남자는 결국 아무런 예고도 없이 레이코의 옆구리를 칼로 찔렀다. 찌르면서 또다시 레이코를 범했다. 레이코는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한 의식 속에서 이 악몽이 어서 끝나기만을 빌었다.
더 이상 찔리고 싶지 않아, 더럽혀지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아.
나는 부모를 살해하고, ‘에프’라는 이름을 부여받은 후 폭력 을 휘둘러서 내 존재를 확인해왔다.
아니, 목숨을 주고받는 것이라 해도 상관없었다. 사느냐 죽느냐, 죽이느냐 죽임을 당하느냐. 그 순간에만 내가 살아 있음을 실감했다. 그러나 언제나 주변에 누군가가 있어서 내가 목숨을 끊어놓기 직전에 내 행동을 말리는 경우가 많았다. 아무도 진심으로 목숨을 걸고 싸우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 자칭 조폭이라는 놈들조차 죽음은 원치 않았다.
하지만 녀석은 달랐다.
“내가 너에게 최고의 무대를 준비해줄게. 살인 무대야. 원 없 이 사람을 죽여도 되는 무대야, 알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