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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54639835
· 쪽수 : 424쪽
· 출판일 : 2016-03-10
책 소개
목차
애록에서 012
여성의 신체 014
생활의 달인 016
잠언 선생님 018
솔직한 시여! 021
반려 가방 024
소리 환자 026
이불의 얼굴 028
어머니도 하기 싫어한다 030
눈물 자국 나이테 032
유리수의 무한 034
아직 오지 않은 과거 035
전 세계의 꽃 036
텅 빈 방의 노래 038
맨홀인류 040
빈 액자 042
형식에 이르다 044
빌라도 총독들 048
악몽 수프 050
칠리 콘 카르네 052
연극 연출가의 생활 054
도망중 056
르네 마그리트와 샤를 보네 증후군 058
승리의 내부 061
애록 소설 공장 062
죽어서도 썩지 않으려면 064
시의 이름 066
귀여운 할아버지 068
노래의 입술 070
낡은 장르 072
소설과 시 074
피 흘리는 특권 075
장르 복합 관객 관람 076
북극 077
음식에 대한 예의 078
안간힘 080
않아의 프랑스 082
여자들만의 문자 085
인생의 최대 수치 086
몸을 표현할 단어는 없다 088
로저 코먼 090
희미한 희끄무레한 희한한 092
않아는 이렇게 말했다 095
응급실 096
전위 시인 098
아버지와 아저씨의 어미 099
똥 100
모차르트 102
문서인간 104
소설을 살다 106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의 <징후와 세기>에 나오는 대화 108
안개비 내리는 4월 110
은유 금지 112
부활절 114
방학 116
글자가 되면 사라진다 118
대웅전의 탁상시계 120
애록에 살아요 121
에베레스트 눈물 122
시간 지우개 124
여자 작가와 남자 작가의 전시 126
사물의 영 131
정성의 지표 132
가려움으로 돌아온 시간 134
희박한 나라 137
우즈 강가에서 140
까마득한 142
수입된 알리바이 144
태양왕의 의자 146
동그라미 148
아직 태어나지 못했다 150
사마귀의 목소리 152
죽음의 숙주 155
이별을 살다 158
질문들 160
엄마들 162
마녀형 시인 164
점근선 168
강의와 항의 170
모음들 172
그 여자의 부엌 174
작가 지망생들 앞에서조차 176
우리는 언제 이 연습을 끝내게 되나요? 178
이 휘황한 가설무대에서 181
시의 비 184
사랑하는 두 행성처럼 186
시 창작 워크숍 188
불안 우주 무한 가속기 190
요리 동사 192
시는 한 그루 나무 193
지하의 고독 194
실비아와 브라운 부인의 빵 197
소설가 지망생 200
정어리와 청둥오리의 이름 202
스스로 임명한 만물의 척도 205
마음에게 208
피아노와 낙타 210
혁명가의 새 직업 212
유명한 사람과 유명하지 않은 사람 214
사물의 말씀 215
나만의 기린 기다리기 218
단 한 번의 흥얼거림으로 흘러간 노래 220
‘~이면’의 세계 222
사라지는 장르 224
비겁한 할머니 226
머리 깎은 물고기들 228
우리는 어느새 그녀를 다 써버렸다 230
잊을 수 없을 땐 어떻게 해야 하나요? 233
아버지가 자란다 236
별 주는 사람과 별 받는 사람 238
각국의 콩 요리 240
언젠가 이 의인화를 버릴 거야 242
선택 245
전화 252
포르말린 용액 속의 공주들 254
회원이십니까? 256
DMZ 초록 258
전쟁 없이 통일이 될까요? 260
포유류 262
입시 264
선생님이 밥을 사주신다 266
처녀성과 모성 268
북산 270
로드리게즈와 로드리게즈 272
음악을 먹여 살려요 275
신선 식품처럼 278
침묵 생성 기계들 280
송사 282
모던에도 순교가 필요해 284
타인의 잠을 지켜드립니다 286
나나나나 288
외할아버지의 서점 290
뉴욕 산책 292
설인 예티 294
치유 좀 해드릴게요 296
명절 298
무서운 공동체 299
요동 302
편두통 304
수치심 306
이 세상에서 내가 맡은 배역 309
운명의 지휘자 310
개울물 속에 미나리 흔들기 312
선생과 학생 314
KAL 316
우상 비빔밥 319
물고기와 가족 이야기 320
세 여자 322
대흥사 324
고독이라는 등뼈 327
내 이름과 네 이름 328
시인의 이름 330
않아의 아내 332
데스 메탈과 고아 소녀 334
노인은 왜 아이가 될까? 336
영감이란 무얼까 338
나에게도 콘솔이 한 대 있다면 340
내 몸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 342
않아의 리바이어던 344
오만한 영어님 346
포화 속의 레시피 348
비굴의 장르 350
센티멘털 대왕 치세 353
권태 356
대담한 결심 358
음악의 존재 360
결혼행진곡 362
늙은 딸들 364
미래에의 감염 366
2월 좀비 368
않아는 찍히고 싶지 않다 370
입원실 372
품사에게도 영토가 있다면 374
지금 그곳 376
엄마의 뜨개질 378
땅냄새 타법 380
않아의 룸메이트 382
꿈으로 들어갈 때 신는 신발 385
단식 386
마지막 말 387
리뷰
책속에서
애록(AEROK)*에서 쓴다.
겨우 여기에서 쓴다.
여기에서 살다가 여기에서 죽을 거다.
겨우 여기에 이렇게 머물다 가려고.
미장원, 고시원, 병원, 은행, 식당, 휴대폰 판매상, 과일 가게, 늘어선 거리에서 머물다가 돌아와 다시 쓴다.
몇 번 버스를 타고, 몇 권의 책을 읽고, 몇 편의 영화를 보고, 몇 번 술을 마시고, 몇 번 엄마를 더 보고, 몇 번 울…… 것이 남았는가.
여기, 애록에서. ‘더이상 원하는 것이 없음’마저 넘어서. ‘더이상 살 수 없음’마저 넘어서.
껍데기로 휘황한 가설무대의 도시에서.
가설무대의 나라에서.
분홍색 보푸라기 돋은 스웨터의 털이나 가다듬으면서.
우주에 홀로 떠 있는 지구별의 고독.
이 고독한 별 한 귀퉁이에 붙은, 조그마한 뼈대 같은 산맥들을 품은 나라, 애록. 우주에서 유배 온 어느 곤충들처럼.
물 없는 우물에서 되돌아오는 메아리에 취한 것처럼, 고독에 취해 쓰는 것일까.
여기서
살아가기가.
사랑하기가.
-「애록에서」전문
세상에서 시가 사라져간다.
이미 무형문화재급이다.
시는 사라지고 시인의 신화, 시에 대한 풍문이 남았다.
시는 사라지고 유행가, 타령, 잠언, 수필, 소문의 진위, 간신히 비유만 남았다.
시는 사라지고 시집과 시 잡지만 남았다.
시는 사라지고 신변잡기, 일갈, 처세술만 남았다.
시는 사라지고 낭만적, 감상적, 목가적인 노래가 남았다.
시는 사라지고 시 교육, 시 집단, 옛 시인들만 남았다.
시는 사라지고 시인이 시 밖에서 한 말들만 남았다.
시는 사라지고 시인에 관한 소문만 남았다.
시는 사라지고 반복, 재생산, 또 반복, 또 재생산이 남았다.
시는 사라지고 넘치는 센티멘털과 포즈가 남았다.
시는 사라지고 시의 호용, 시의 쓰임, 시의 이용만 남았다.
시는 사라지고 시인 되기 프로젝트 가동만 남았다.
시를 쓴다.
그 사라짐 속에서 쓴다.
-「사라지는 장르」전문
시 축제에 초대받은 시인 중엔 에리트레아 출신 여성시인이 있었다. 에리트레아는 1993년에 독립했다.
에리트레아의 국기는 초록, 빨강, 파랑으로 되어 있다.
초록은 농업과 숲
빨강은 독립을 위해 흘린 피
파랑은 홍해
올리브 가지 문양은 희망
을 뜻한다고 했다.
시인은 에리트레아에서 살 때 감옥에서 고문과 학대를 받았다. 유럽 여러 나라에서 불법 체류자로 살다가 최근에야 이탈리아에서 망명이 받아들여졌다. 이 여성시인은 어디를 가나 자신의 트렁크를 끌고 다닌다. 가방은 방에 두고 나오세요 해도 절대 그 큰 가방과 떨어지지 않는다. 시를 낭독할 때도 트렁크를 끌고 무대에 올라간다. 마치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 패자 부활전에 올라온 아이들처럼. 그녀는 트렁크와는 한시도 떨어지지 않는다. 늘 곁에 두거나 줄에 끌고 다니는 비만 강아지 같다. 다 같이 차를 마시러 갈 때도 끌고 가고, 시인들이 밤에 춤추러 갈 때도 끌고 간다. 한번은 그 안에서 조그만 돌 다섯 개를 꺼냈다. 우리에게 공기 시범을 보이더니 할 줄 아는 사람 모이라고 했다. 신기하게도 모두 공기놀이를 할 줄 알았다. 마지막에 점수를 올리는 꺾기 방법만 조금씩 다를 뿐. 공기 대회에서 아프가니스탄, 인도, 남쪽 애록에서 온 시인이 제일 점수를 많이 땄다.
에리트레아에서 온 여성시인이 가방과 함께 무대에 올라가 시를 읽었다. 아니 울었다.
롤롤롤롤롤롤롤롤롤롤롤 롤롤롤롤롤롤롤롤
에리트레아 숲에서 우는 새가 분홍 꽃잎 같은 혀를 울려 내는 소리 같았는데 통역도 필요 없고, 영어 자막도 필요 없었다.
문학이라는 제도 밖에서 우는 새소리였다.
-「반려 가방」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