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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철학 일반 > 교양 철학
· ISBN : 9788954641913
· 쪽수 : 316쪽
· 출판일 : 2016-08-22
책 소개
목차
한국의 독자에게
헌사
머리말
1~100
주
역자후기
리뷰
책속에서
책 읽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예컨대 내가 세네카의 『화에 대하여』라는 글을 읽고 또 읽었어도 소용이 없는 것이, 이 불길한 정념 때문에 나를 고정해둔 돌쩌귀에서 여러 차례 떨어져 나오게 되니까. 그리고 나는 밤마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전집을 곁에 두고 잠을 자지만 언제나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그의 가르침을 읽는다 해도 내 행복이 한 명의 친구에게 달려 있는 이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기쁨 속에서 나아가려면, 나라는 인간을 통째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살아 있으면서 제 정념의 꼭두각시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지? ‘전 존재’로 철학을 진정 실천하려면 어떻게 하지? 이것이 내가 추구하는 바이며, 내가 첫걸음을 내딛는 길이다.
정념(passion)의 어원은 명확하다. 그리스어 파토스는 고통, 질병, 괴로움이라는 개념과 관련된다. 프랑스어 파티르란 ‘……을 당하다’라는 뜻의 동사다. 지금 나로 하여금 정념에 대한 의견 조사를 할 수밖에 없게 만든 이 파멸적 질투심은 분명 내가 택한 것이 아니다. (중략) 그리스 사람들이 볼 때, ‘정념에 휘둘리는 사람’은 일을 ‘당한다’. 그는 소외되고, 가진 것을 빼앗기고 자기 행동의 제어력을 상실했다. 그러니 그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 힘을 온전히 행사할 수가 없다. 화, 두려움, 우울, 인색, 오만, 욕망, 야망, 허영, 탐욕, 절망, 증오, 사랑, 기쁨이 늘 이성의 우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정념을 이렇게 정의하련다. ‘내 안에 있는데,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을 만큼 힘이 센 그 무엇’이라고. 현재 이 말은 축소적인 의미에서 우선 ‘취미’와 동의어이며, 열중, 활동성,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참여, 대략 이런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이 말을 옛 형태로 생각해보고 싶다. 파토스란 우리로 하여금 틀을 고정하는 돌쩌귀에서 빠져나오게 만드는 것, 그래서 우리 자유를 소외시킬 우려가 있는 것이라고.
지나친 것, 피동적인 것, 내 생각으로는 이런 것으로 대충 정념이라는 것의 윤곽이 그려진다!
만약 내가 나를 건강하게 긍정하는 마음―스피노자의 표현으로 하자면 ‘자기 긍정’―을 마음속에서 키워가고 있다면, 그러면서 매혹을 체험할 수도 있을까? 자기로 산다는 것, 자기가 된다는 것, 내면의 카오스를 감당하려 애쓴다는 것, 이것이 대단한 일이다!
역설적으로, 사랑의 매혹에 빠진 상태에서도 언제나 첫번째 자리를 차지하는 건 나다. 타인은 그저 모든 욕망을 충족시켜야 하는 도구, 꼭두각시, 장난감일 뿐이다. 노예 중에서도 노예다.
불행하게도 나는 나를 지우기는커녕 확실히 드러내고, 투쟁하고, 소유하고 싶어한다. 나는 고통을 덜 받으려고 신의 권좌에 앉기를 원하고, 세상의 중심이 되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 자리에는 이미 누군가 앉아 있고 내가 내 자리를 고마워하지 않는 한, 기쁨은 계속 미뤄지기만 할 것이다. 설령 오가다 처음 마주친 꽃미남의 몸이 내 것이 된다 할지라고, 이 올바른 ‘자기 긍정’이 없다면 모든 것은 쓰디쓰거나 김빠진 맛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