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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후기(영조~순종)
· ISBN : 9788956374420
· 쪽수 : 335쪽
책 소개
목차
머리말
1부 세상에 나와 사랑을 맛보다
1장 약봉 서성과 그의 어머니 고성 이씨 _ 전립투와 약산춘
2장 외할아버지 이이장 _ 산삼떡과 만두과
3장 가야금을 같이 타던 스승 유금 _ 구면과 아두자
4장 주인 없는 생일잔치 _ 전천초와 탕병
5장 어느 여름날, 세검정 계곡에서 _ 비름나물밥과 게구이
2부 인생의 맛을 알아가다
6장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_ 육회와 대추죽
7장 정조와 함께 한 꽃놀이 _ 진주면과 전복김치
8장 나의 아들 우보와 여산 송씨 _ 잉어수정회와 수수당
9장 순창군수 시절, 세상에 눈뜨다! _ 상자죽과 남초초
10장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며… _ 원기보양죽과 건포도와 송자해라간
3부 깊은 쓴맛 끝에 오는 단맛 같은 삶
11장 지향을 만나다 _ 도행병과 포도차
12장 돌아올 수 없는 강 _ 밀양시병과 설하멱방
13장 스승 박지원 _ 더덕 도라지구이와 과사두
14장 숙부 서형수의 귀양과 나의 도피 _ 산가지와 천리포
15장 억기가 떠나가다 _ 혼돈반과 완두콩 미숫가루
16장 형과 형수 _ 연방 어부의 삼선과 연방만두
17장 우보의 생일날 _ 참새알심국과 붕어찜
4부 덧없는 삶을 견디게 한 애민정신
18장 우보의 죽음 _ 가수저라와 자하해
19장 효명세자와 박규수 _ 대합구이와 미나리김치, 메추라기구이
20장 기로소에서 _ 열구자탕
21장 전라관찰사 부임 _ 골동반과 막걸리
22장 바짓가랑이를 걷고 논밭을 누비며 _ 감저주와 행주두부조림
23장 벼슬에서 물러나 새 복거지를 찾다 _ 우미증방과 과제와 당근제
24장 후학들과 함께 _ 박금과 흑두초
25장 [임원경제지]를 마치고 _ 모과환과 국화차
부록 [임원경제지] 『정조지』의 현대적 의미
1. 본문 관련 [임원경제지] 『정조지』 원문 번역
2. [임원경제지] 『정조지』에 대하여
3. 『정조지』, 현대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
책속에서
순창 백성들은 고추만 따고 잎이나 줄기는 그냥 밭에 방치하여, 나는 어머니가 만들어주시던 남초초 만드는 법을 만나는 사람마다 가르쳐주기로 한다. 남초초는 고추의 잎과 줄기를 데쳐 기름에 볶아 갖은 양념을 만드는 요리다. 어머니께서 한여름에 남초초를 많이 먹으면 피부가 고와진다고 하시니 누이들이 부끄러워하면서도 서로 눈치를 보며 먹던 기억이 난다.
내가 남초초를 설명하자 이방이 “군수 나리 다 좋은데요. 몇 년째 깨도 흉년이라 고춧잎을 볶을 기름이 있는 집이 몇 집 없으니 내년에 풍년이 들면 하시지요” 한다.
한양 생활에 익숙하여 미처 그것까지 생각지 못한 나 자신이 부끄러웠고, 나도 백성들이 보기엔 다 똑같은 한심한 관리로 보일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순창군수 시절, 세상에 눈뜨다! _ 상자죽과 남초초’ 중에서
우보에게서 이미 생명의 냄새가 느껴지지 않는다. 눈에는 총기가 빠지고, 머리털은 푸석하고, 손톱은 갈라져 있고, 목소리에는 힘이 없고, 붉었던 입술은 저승사자와 입맞춤이라도 한 듯 거무죽죽하다.
급히 부엌으로 가서 방폐 시절 난호로 나를 찾아온 심상규가 준 설탕을 꺼내 우보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저라를 만들어본다. 가수저라는 일본에서 온 밀가루 떡 종류인데 맛과 향이 부드럽고 달콤하여 마치 구름을 나는 듯하고 조금만 먹어도 피로를 가시게 하고 힘이 나게 한다. 나는 모처럼 계란을 아낌없이 사용하고 백옥 같은 밀가루와 설탕을 잘 섞어 미리 달군 무쇠솥에 굽는다. 달콤한 향이 천 리 밖까지 퍼질 듯하니, 병석의 우보도 가수저라 냄새를 맡고 언제 다 구워지나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우보의 죽음 _ 가수저라와 자하해’ 중에서
어머니는 담담하게 집안일은 걱정 말고 급히 떠날 것을 재촉하며, 기름 봉투에 직접 만드신 천리포를 담아 주시며 인편이 되는 대로 더 보낼 터이니 아끼지 말고 먹으라고 하신다. 천리포는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청나라 사행을 가실 때 할머니와 어머니가 정성을 들여 만들던 말린 고기 포인데, 이제 아들이 목숨을 구하고자 몸을 피하는 음식으로 사용하게 되었으니 이를 만드시면서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우셨을까? 할아버지는 청나라 사행길에 천리포를 가지고 다니셨기에 지치지 않고 먼 길을 달려가실 수 있었다며 할머니와 며느리를 치하하셨다. 그러면 할머니는 “다 천리포의 공이지요”라고 멋쩍어하시며 공을 천리포에게 돌렸다.
-‘숙부 서형수의 귀양과 나의 도피 _ 산가지와 천리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