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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독일소설
· ISBN : 9788957074336
· 쪽수 : 320쪽
· 출판일 : 2009-01-19
책 소개
목차
제1장
제2장
제3장
리뷰
책속에서
수시로 색깔이 바뀌는 자두 씨 모양의 두 눈. 그 눈은 언제나 반짝거렸다. 그는 그녀의 눈을 작년부터 가슴에 품고 있었다. 지치지도 않고 광채가 흐려지는 법도 없는, 언제나 푸른색이나 녹색으로 빛나는 눈이었다. 그러나 대개 그 눈은 푸른색이나 녹색이 아니라 청록색을 띠었다. 이번에는 그녀의 입이 떠올랐다. 동산처럼 지나치게 부풀지 않고, 적당하고 도톰하고 균형 있게 뻗은 윗입술, 그것을 겸손하게 받들고 있는 아랫입술. 입은 얼굴의 아래쪽 절반에서 약간 외로워 보였다. 코도 홀로 고고했다. (……) 코는 외롭고 아름다운 입 위에서 끝나야 하는 것처럼 그렇게 멈추어 있었다. 입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면서도 입을 동경하는 듯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장려한 은은함이 묻어났다. 울리케라는 인간 전체에서 그런 인상이 풍겼다.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은 그들의 입술이 서로 끌리듯 다가가 맞닿았을 때 그녀가 눈을 감은 것이다. 그는 이 감은 눈보다 더 내적인 친밀함의 표현을 경험한 바 없었다. (……) 키스를 했어. 거부당하지 않은 키스를. 한 여인의 입술을. 한 소녀의 입술을 강탈한 것이 아냐. 억지로 밀어붙이지도 않았고, 그녀의 입 속에 입을 넣은 것도 아냐. 처음의 머뭇거림, 집중, 떨림, 뭐라고 부르든 상관없어. 그런 것이 있었어. 입과 입이 저절로 서로에게 향했어. 의지의 개입도, 일말의 연출도 없었어.
지금 필요한 것은 자신을 조금도 동정하지 않는 것이다. 안 그러면 너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쥐꼬리밖에 없는 한 소녀 때문에 죽어버릴지도 몰랐다. 지금 그가 느끼는 것은 힘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스스로가 안쓰러웠다. 부끄러웠다. 세상이나 도덕, 풍습, 예의범절 따위 때문에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 그렇게 매달리고 비틀거리고 더듬거리고, 남뿐 아니라 적들도 그렇게 속이지 못할 정도로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