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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문화/역사기행 > 한국 문화/역사기행
· ISBN : 9788958622116
· 쪽수 : 324쪽
책 소개
목차
서문. 삼남대로, 그 옛길을 찾아서
프롤로그. 제주 관덕정에서 해남 이진항까지 - 봄바람처럼, 미소처럼 가자
첫날. 이진항에서 강진 성전까지 - 혼자서 먹는 밥, 혼자서 자는 잠
이틀째. 성전에서 영산포까지 - 백 리를 걷는 사람은 구십 리를 반으로 삼는다
사흘째. 영산포에서 장성까지 - 찔레꽃 아름답게 피는 길
나흘째. 장성에서 정읍 태인까지 - 산수가 좋기로는 첫째가 장성
닷새째. 태인에서 완주 이서까지 -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지만
엿새째. 이서에서 논산 연무대까지 - 동학농민군이 걸어간 길
이레째. 연무대에서 공주 장깃대나루까지 - 금강의 봄물이 이끼보다 푸른데
여드레째. 공주대교에서 차령고개까지 - 길 위에 새겨진 도시의 흥망성쇠
아흐레째. 차령고개에서 안성천까지 - 천안이 태평하면 천하가 평안하고
열흘째. 안성천에서 수원 화성까지 - 옛 역사를 읽고 싶지 않다네
열하루째. 수원에서 서울 사당역까지 - 언제까지나 걷고 싶은 옛길
열이틀째. 사당역에서 남대문까지 - 모든 길이 시작되고 모든 것이 공존하는 서울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조선시대 말엽 갈재 동쪽 지역에 민족종교 또는 신흥종교들이 이처럼 성세를 이루었던 것은 무슨 연유일까? 생각해보면 백제 멸망 이후에서부터 그 원인을 찾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후백제를 열었던 견훤과의 악연 때문에 고려 태조 왕건은 「훈요십조」를 남겨서 호남 지역 사람들이 벼슬에 오르지 못했다. 다행히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관향이 전주라서 조선시대 전기에는 호남 지역에서도 벼슬길에 많이 올랐으나, 1589년(선조 22)에 일어난 정여립의 난이라고 일컬어지는 기축옥사(己丑獄死) 이후 호남 지역은 다시 차별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참고 참았던 이 지역의 민중들이 들불처럼 일어났다가 실패한 것이 동학농민혁명이었으며 그 뒤를 이어 증산교, 대종교(大倧敎), 보천교, 원불교(圓佛敎) 등이 실의에 빠진 민중들의 가슴속에 파고들었을 것이다. - p.136 중에서
이곳에서 왼쪽으로 신북면의 북서쪽 끝 지점에 위치한 양계리 금동 마을로 가는 길이 갈라져 나간다. 그 금동 마을 서쪽에는 ‘똥배미’라는 논이 있었다고 하는데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연산군 때 몸집이 크고 정력이 센 여자를 찾으라는 왕명을 받은 채홍사(採紅使)가 이곳을 지나다가 이 논가에 매우 큰 똥덩이가 있는 것을 보고 똥 눈 사람을 찾다가 마침내 대갑에 사는 최부리의 딸이라는 것을 알아내고 그를 데려가서 연산군에게 바쳤다는 이야기다.
또 하나 재미있는 지명이 금동 마을 동쪽에 위치한 학동리의 ‘생애바우’다. 이 바위는 상여처럼 생겼는데, 그 때문에 마을에서 청상과부가 많이 난다고 하여 바위 앞에 담을 쌓거나 나무를 심어서 가린다는 것이다. - p.78~79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