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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88959137046
· 쪽수 : 424쪽
책 소개
목차
그랜드마더스
빅토리아와 스테이브니가
그것의 이유
러브 차일드
리뷰
책속에서
릴은 너무 행복해서 겁이 날 지경이라고 로즈에게 말했다. “어떻게 이렇게 근사한 일이 있을 수 있어?” 그녀는 누가 들을 새라 조용히 속삭였지만 누가 들을까? 근처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의 말이 이렇게 강렬한 행복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뜻이라는 걸 로즈는 알고 있었다.
릴은 톰에게 밤에 찾아오면 안 된다고 말했고, 로즈는 이안에게 릴과 함께 집에 가라고 했다. “당신이 모든 걸 망쳤어.” 이안이 로즈에게 말했다. “전부 당신 잘못이야. 그냥 그대로 살면 왜 안 되는데?” 로즈는 농담조로 말했다. “기운 내. 우리는 이제부터 기품 있는 숙녀가 될 생각이거든. 그래, 너희의 망신스러운 엄마들이 미덕의 화신이 될 거라는 이야기야. 우리는 완벽한 시어머니가 되고, 너희 아이들에게는 멋진 할머니가 되려고 해.” “당신을 용서하지 않을 거야.” 이안은 로즈에게 말했다. 그리고 톰은 릴에게, 오로지 그녀만 들을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낮춰서 말했다. “나는 당신을 절대, 결코 잊지 않을 거야.”
버스를 타고 한 번 더 갈아탔더니 어느새 십 년 동안 그녀의 꿈속에 깃들어 있었던 집 앞에 도착했다. 이제 그녀는 열아홉, 그는 열일곱이었다. 둘은 서로가 몇 살인지 개월 단위까지 꿰고 있었다. 그는 실제보다 훨씬 나이 들어 보였고, 그건 그녀도 마찬가지여서 이제 소녀티를 벗고 세련된 아가씨가 되었다. 그가 계단을 올라갈 때 그녀는 순간을 부여잡으려는 듯 잠시 머뭇거렸다. 항상 꿈꿔왔던 키 큰 백인 소년과 이곳에 있건만, 마치 낯익은 사람이 다가오는데 막상 앞에 온 사람을 보니 그가 아니라 낯선 사람이거나, 아니면 헤어졌던 애인이 방 저쪽에 있는 걸 보고 기뻤는데 막상 고개를 돌리고 웃는 모습은 전혀 낯선 사람인, 그런 꿈 같았다. 지금 이 사람은 에드워드가 아니라 토머스였고, 문을 여는 그를 따라잡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오르는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속았다는 생각이 되풀이됐다. 그녀가 부드러운 색감과 환한 빛으로 간직했던 현관은 훨씬 작았고, 봄날 오후의 햇살은 그녀의 기억 속에서 따뜻하게 번지던 불빛과 달리 차갑기만 했다. 장밋빛 불그스름한 부드러움의 기억은 그대로 남아 바닥과 벽에 낡은 양탄자로 걸려 있었으나, 빛이 정면으로 비치는 부분은 낡아서 하얗게 드러난 실이 보였다. 꾀죄죄했다. 그래도 예쁘긴 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돈이 많은 사람들이 새것을 살 여유가 없는 걸까? 그녀는 당장 기억 속의 방을 고스란히 마음의 저편으로 밀어버렸는데, 그 방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지금 보는 건 가짜라고 낙인찍기 위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