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네마 천국

窓 혹은 門 속의 공포
만남 혹은 관계에 관한 물음들
순환하는 폭력의 고리들
문명에 관한 증오와 망상
말, 눈물, 껴안기, 추억하기
구원의 이미지로서의 물
길, 유목과 탈주의 공간
반짝이는 동전의 한면
제레미 아이언스, 카프카 혹은 파스빈더
빛과 색채의 언어
갇힌 자들의 꿈
투명한 감옥 속의 인간
유혈이 낭자한 농담
어둠 속의 푸른 천국
우스꽝스러운, 미친, 그러나 절실한
기계문명과 섹슈얼리티의 충돌
인식의 벽, 벽 속의 사람들
현실과 허구, 허물어지는 경계들
깊고 무겁고 느린 불꽃들
시인의 영혼에서 일어나는 개기일식
햇빛 속으로의 도주
일상을 통찰하는 리얼리티의 힘
사막에서의 독백
일상의 낯설음, 관계의 황량함
농담을 가장한 충고 혹은 조롱
다락방의 영화들
거칠고 추악한 날것의 삶
詩人의 영혼에 감염되다

영화는 더러 향기마저 풍기는 말랑말랑한 텍스트이다. 그래서 뜯어먹기가 힘들 뿐만 아니라 소화도 잘 안 되는 역사, 철학, 미학서적 등 활자매체들보다 더 쉽게 구미가 당기는 메뉴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나는 딱딱한 텍스트들에 멀미를 느낄 때엔 주저 없이 극장의 어둠 속으로 잠입하거나 한밤중에 일어나 DVD플레이어를 켠다. 스크린 위에서 나는 때때로 들뢰즈－가따리의 기관 없는 신체를, 리오따르의 표류를, 보들리야르의 시뮬라크라를, 푸코의 육체를, 데리다의 경계를 미약하게나마 감지하거나 조우한다.

뿐만 아니라 피터 그리너웨이의 새로운 영화에서 해체를,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에서 리얼리즘의 진정성을, 테렌스 멜릭의 영화에서 서정의 극치를 경험한다. 그런 경험들은 내게 심한 질투심과 소외감을 안겨다 줄 뿐만 아니라 문자와 언어의 기능에 관한 회의와 혼란을 안겨다 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내가 영화관과 영화관련 인터넷 사이트의 순례를 멈추지 못하는 이유는 영화가 세상을 되비추는 대단히 성능이 좋은 거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때로 나는 이 거울들에게 되묻곤 한다. 넌 왜 문학의 관심과 시선이 미처 가닿지 못하는 곳에 언제나 먼저 도착해 있냐고. 지금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지점은 어디쯤이고 나는 무엇을 보고 있으며 또 보고자 하느냐고. 영화는 여전히 넓고 깊은 시각을 감추고 있다. 이 부드러운 텍스트는 힘이 세다. - '부드러운 텍스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