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웅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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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는 자운(子雲). 촉군(蜀郡) 성도(成都) 사람. 경학(經學)과 사장(辭章)에 뛰어났다. 『주역(周易)』을 모방해 『태현(太玄)』을 지었고, 『논어(論語)』를 모방해 『법언(法言)』을 지었다. 왕망(王莽)에게 대부 벼슬한 것을 두고 유학자들은 망대부(莽大夫)라고 비하하였다. 저서로는 『방언(方言)』이 있다. 쓴 글로는 「감천부(甘泉賦)」, 「우렵부(羽獵賦)」, 「장양부(長楊賦)」, 「하동부(河東賦)」, 「광소(廣騷)」, 「반뢰수(畔牢愁)」 「해조(解嘲)」, 「해난(解難)」 및 「축빈부(逐貧賦)」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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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환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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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학교 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철학)를 받았다.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과 교수 겸 유학대학원장, 풍수명리철학회 회장, 동양예술학회 회장, 도가철학회 회장, 도교문화학회 회장, 간재학회 회장, 서예학회 회장, 한국연구재단 책임전문위원(인문학) 등을 역임하였다. 현재 신명문화연구원 이사장, 국제인문다도학회 회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철학연구회 논문상, 원곡 서예학술상 등을 수상했다.
주요 저서로 『조선조 서예 미학』, 『동양 문인의 예술적 삶과 철학』, 『동양의 광기와 예술』, 『동양 예술미학 산책』, 『노장철학으로 동아시아 문화를 읽는다』, 『유학자들이 보는 노장철학』, 『중국철학과 예술정신』 등이 있으며, 『강좌 한국철학』 등 20여 권의 책을 함께 썼다. 옮긴 책으로는 『태현집주(太玄集註)』, 『이서(李漵) 「필결(筆訣)」 역주』, 『도덕지귀(道德指歸)』 등이 있다. 「노장의 미학사상 연구」, 「박세당의 장자 이해」, 「주역의 미학사상 연구」 등 160여 편의 학술논문들을 발표했으며, 평론가로서 서화 잡지 등에 게재한 평론이 100여 편에 이른다.
동양의 명화와 명필, 이름 높은 유물과 유적들에는 언제나 유가와 도가의 철학이 담겨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예술과 철학 사이에 놓인 경계 허물기에 주력하면서 예술 작품을 새롭게 이해하는 시각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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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사오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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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서남(西南) 사범학원 역사과 졸업, 화중사범대학(華中師範大學) 역사학박사. 동 대학 역사문헌연구소 소장 역임. 현재 화중사범대학 역사문화학원 교수. 저서로는 『太玄集注(點校)』(中華書局), 『태현연구(太玄研究)』(武漢出版社), 『일본현대노자연구(日本現代老子研究)』(福建人民出版社), 『유가학습사상연구(儒家學習思想研究)』(華中師範大學出版社), 『초지정혼(楚地精魂)-楚國哲學』(湖北教育出版社), 『당송명철사황제노자어비평점(唐宋明清四皇帝老子禦批評點)』(湖南出版社)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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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광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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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송 때의 유명한 역사가로 자가 군실(君實)이고 호가 우수다. 섬주(陝州) 하현[夏縣, 지금의 산시성(山西省) 샤현] 속수향(涑水鄕) 출신이기 때문에 속수선생이라고도 하고 온국공(溫國公)에 봉해졌기 때문에 온공(溫公)이라고도 하며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자치통감(資治通鑑)≫의 저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북송 진종(眞宗) 천희(天禧) 3년(1019)에 사마지(司馬池, 980∼1041)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재주가 뛰어나고 상황 판단이 빠를 뿐만 아니라 결단성도 있었다.
인종(仁宗) 보원(寶元) 원년(1038)에 스무 살의 나이로 진사시에 급제해 벼슬길로 나아간 그는 인종 황우(皇祐) 3년(1051)에 관각교감(館閣校勘)을 맡았는데 이것은 경전과 역사를 좋아한 그에게 조정의 각종 전적을 자유로이 열람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했다. 그리고 황우 5년(1053)에 사관검토(史館檢討)라는 사관(史官)의 직책을 맡음으로써 더욱더 역사 연구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신종(神宗) 때에 이르러 왕안석(王安石)이 신법(新法)을 강행하자 그는 이에 반대하다가 마침내 낙양(洛陽)으로 내려가 은거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때 그는 294권이나 되는 거질의 역사책 ≪자치통감≫을 저술했다.
원풍(元豊) 8년(1085)에 신종이 세상을 떠나고 열 살짜리 아들 철종(哲宗)이 즉위하자 섭정이 된 선인태후(宣仁太后)가 신법을 싫어한 나머지 구법파의 영수인 사마광을 불러들여 재상으로 삼았다. 그러자 사마광은 신법파 인사들을 모조리 조정에서 몰아내고 그들이 제정한 신법을 하나씩 하나씩 모두 폐기해 버렸다. 그러나 조정으로 복귀한 지 얼마 안 된 원우(元祐) 원년(1086) 10월 6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주요 저서로 ≪자치통감≫ 이외에 ≪온국문정사마공문집≫·≪계고록(稽古錄)≫·≪속수기문(涑水記聞)≫·≪절운지장도(切韻指掌圖)≫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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