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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외국에세이
· ISBN : 9788961671026
· 쪽수 : 528쪽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아빠는 마치 새로 산 돛배에 페인트칠을 하듯 그렇게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이 양념을 천천히, 구석구석, 앞뒤로, 살살 양고기에 발랐다. 이 양념장 역시 방울방울 잉걸불 속으로 떨어지며 시익거리는 소리를 내며 증발했고, 그때마다 맛있는 냄새가 공중으로 퍼졌다. 그렇게 온 종일 우리가 잡일을 할 때, 양고기와 사과나무 연기, 로즈메리 마늘 양념장 냄새가 뒤섞여 우리 머릿속에 아로새겨졌다. 그 후 30년 동안 나는 그것에 의지했다, 그 냄새에. 여름철만 되면 야외에 커다란 모닥불을 지피고 짐승 한 마리를 통째로 서서히 굽고 싶은 만성적인 열망에 나는 부대낀다. 해가 질 때까지 모닥불 가에 앉아 양념장을 발라보고 싶다. 시익. 치익. 치익.
나는 속이 메슥거렸다. 숨이 턱턱 막혔다. 이슬에 젖은 채 일출을 맞이하고 있는 바깥세상의 공기 맑은 곳으로 무거운 몸을 끌고 나갔지만, 결코 개운치도, 괜찮지도 않았고, 방금 피해 나온 아둔한 죽음의 세계로부터 회복되지도 않았다. 독극물을 들이켠 심정이었다. 그건 그저 바닷가재였을 뿐이지만, 바닷가재가 1.5킬로그램 가까이 나가도록 자라려면 15년 이상 걸린다. 사람들은 그걸 잡다가 죽기도 한다. 배가 천천히 나아가는 동안 바닷가재잡이 어부들은 뱃고물에 서서 미리 던져둔 통발을 끌어올려 그 속의 바닷가재를 갑판에 부리는데, 통발 줄에 자칫 발이 걸리면 뱃전 너머로 홱 딸려간다. 그건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다.
나는 배가 고팠다. 사흘 단위로 버스나 기차를 타고 어딘가에서 또 다른 어딘가로 가며 굶기를 밥 먹듯 하면서 내 배고픔의 등고선을 낱낱이 구석구석까지 알게 되었다. 새로운 내 식당 열쇠를 거머쥐게 되었을 때, 그런 식당을 소유하고 운영하는 데 필요한 어떤 자격을 갖추었는가를 고민하던 나는, 배고픔과 밥맛을 안다는 것을 그런 자격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