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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고대~고려시대 > 한국고대사 > 발해
· ISBN : 9788962460346
· 쪽수 : 286쪽
책 소개
목차
제Ⅰ부 춤추는 발해인
춤추는 발해인_ 17
이태백이 풀어낸 발해문자_ 23
발해의 땅으로 날아간 미국의 ‘가미카제’ 폭격대_ 28
칫솔을 발명한 발해 유민들_ 33
바닷가의 발해성터와 소금가마_ 37
연해주 산악지대의 고구려식 산성들_ 45
발해의 경계는 어디까지였을까 _ 49
파르티잔 강의 청동 물고기_ 56
북한과 중국이 발굴한 발해유적_ 61
아무르강 여진족의 고구려계 불상_ 66
발해와 보신탕_ 71
발해를 사모한 일본인들_ 76
말갈의 후예들 _ 80
무덤이 없는 사람들_ 86
제Ⅱ부 친절한 만다린씨, 연해주를 내주다
친절한 만다린씨, 연해주를 내주다_ 95
년 전 러시아 신부 비추린,
푸쉬킨에게 한국고대사를 가르쳐주다_ 100
윤관의 9성은 연해주에 있었을까_ 105
잃어버린 우리땅 - 녹둔도_ 110
타이가의 슬픈 사냥꾼 데르수 우잘라_ 115
하늘의 대리인, 시베리아의 샤먼_ 120
시베리아의 이발사, 그리고 율 브리너_ 127
곰을 숭배하는 사람들_ 133
사라지는 사람들 시베리아의 예벤키족_ 138
‘큰 코’ 다친 러시아인들_ 143
연해주의 한국 지명들_ 147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정선의 산수화_ 154
년 전 한국에 고고학을 소개한 서양선교사_ 159
추위따라 가버린 명태_ 165
폭탄주와 자작나무_ 169
제Ⅲ부 방안에 화장실을 둔 사람들
방안에 화장실을 둔 사람들_ 175
공자도 인정한 숙신족의 화살촉_ 181
모피의 고향인 연해주_ 185
옥저인들도 아편을 알았을까 _ 190
한반도의 청동칼, 연해주에서 발견되다_ 195
연해주의 옥(玉) 제작장_ 201
옥저인이 발명한 온돌 _ 207
흉노가 좋아했던 옥저인의 온돌_ 212
왜 연해주에 고인돌이 없을까 _ 217
제Ⅳ부 해운대에 온 매머드 사냥꾼
빙하기의 진정한 승리자 - 몽골리안_ 223
세계 토기의 기원은 동해안 _ 230
빗살문토기의 기원은 어디일까 _ 236
수천년 뛰어넘는 동아시아의 비너스상_ 242
동삼동 조개가면의 비밀_ 248
아무르강 유역의 해골마스크_ 253
편두(扁頭)를 한 사람들_ 260
번데기, 그리고 곡옥_ 265
환동해지역, 중국과는 다른 철기를 만들다_ 270
바라바시의 철기 제작장_ 274
두만강 유역의 석기사냥꾼들_ 279
에필로그 _ 288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발해의 춤은 ‘답추(踏鎚)’라고 기록돼 있다.
콕샤로프카 발해 성지에서 발견된 토기에는 사람들이 손을 잡고
춤을 추는 장면이 새겨져있다.
토기 조각 한 점에서 극동 문명의 빛이었던 발해를 떠올려 본다.
우리 민족이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이미 2000여 년 전부터 알려져 있다. 중국의 사서 「삼국지」 ‘위지 동이전’한조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노래하고 춤추며 술마시는 것을 좋아하는데, 한번 하면 밤낮을 쉬지 않는다고 했다. 이때에 사람들의 춤은 10여 명의 사람들이 손을 잡고 같이 땅을 차고 오른다고 했다. 아마 강강술래같은 집단무였을 것 같다. 음주가무 좋아하는 우리네 습관이 발해라고 예외였을까. 발해인의 음악은 주로 일본으로 사신 간 사람들의 기록에서 보인다. 발해에서 기진몽(己珍蒙) 일행이 740년 정월에 사신으로 파견되었고, 이때 일왕이었던 성무왕(聖武王) 앞에서 발해음악을 연주했다고 한다. 고대의 ‘한류’였던 발해의 음악은 곧 일본에서도 널리 유행했었고 749년에 도다이 사(東大寺)에서 개최된 법회(法會)에서 발해음악이 연주되었다고 한다. 발해의 음악은 송·금에도 전해져서 나중에는 송나라에서 발해음악을 금하는 법까지 내놨다고 할 정도다.
음악이 유명할진대 거기에 춤이 빠질 수 없다. 발해의 춤은 ‘답추(踏鎚)’라고 기록돼 있다. 사람들이 손을 잡고 같이 추는 것이라고 한다. 여기에 발해인의 춤을 실물로 보여주는 자료가 있다. 2008년 국립문화재연구소와 러시아과학원이 공동발굴한 러시아 연해주의 콕샤로프카 발해 성지에서 발견된 토기에는 사람들이 손을 잡고 춤을 추는 장면이 새겨져있다. 이 토기에는 머리에 뿔이 달린 사람들이 치마를 입고 서로 손을 잡고 있다. 생긴 것만 보면 역사기록에 나오는 답추하고 유사한 듯하다. 그런데 춤을 추는 사람들의 발모양이 약간씩 다르다. 어떤 사람은 발을 오른쪽으로 향하고 어떤 사람은 앞쪽으로 향한다. 아마도 둥글게 원을 그리고 있는 것을 묘사한 듯 하다. 머리는 양쪽으로 뿔이 달린 게 마치 사슴의 뿔 같은 것을 머리에 단 것 같다.
이와 비슷한 춤을 추는 토기는 시베리아에서도 많이 출토되었다. 예컨대 서부시베리아의 청동기시대 중기(기원전 2000년기 중반)시대 유적인 자비얄로보 IA유적에서 발견된 청동무인상(靑銅舞人像)이 있다. 5㎝정도 되는 작은 청동 예술품으로 발은 약간 구부리고 손은 구부정하게 위로 들었다. 또 서부 시베리아 사무스 IV 유적에서 출토된 인물상은 발목, 무릎 등이 유연하게 구부러지고 까치발로 춤을 추는 모습이 표현됐다. 손은 허리 근처에 가지런히 놓여 있으며 몸통은 사다리처럼 간략하게 표현됐다. 머리부분은 단순히 두 개의 뾰족한 선으로 표현되었는데, 아마도 뿔이 달린 모자같은 것을 쓴 모습을 나타낸 것 같다. 시대와 지역을 초월해서 이렇게 유사한 춤을 추는 형상이 나온다는 점은 참 흥미롭다. 거기에 한국 고대부터 전해져 오는 강강술래 같은 집단 춤이라는 점은 이것이 집단적인 의례 또는 샤먼의 의식에서 춤을 추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콕샤로프카 출토 무용하는 토기는 실물자료가 거의 없는 발해의 무용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 토기는 발굴이 된 것이 아니라 이 성지를 답사하는 과정에서 출토되었다. 그냥 땅위에서 발견된 것이니 혹시 발해시대가 아닐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2008년에 실제 발굴을 해보니 콕샤로프카 성지는 발해시대에만 사용되었음이 밝혀졌다. 명실상부한 발해의 토기인 셈이다.
콕샤로프카는 발해의 가장 변경에 위치한 행정중심지였다. 발해의 전성기 때에 그 세력을 연해주 중심부로 확장했고, 각지에 성지를 건설하고 행정중심지를 만들었다. 콕샤로프카는 역사기록에는 나오지 않는 무명의 성이지만 발굴결과 발해의 중심지인 서고성이나 동경성에서만 보이는 독특한 온돌구조가 발견되었다. 발해의 관리가 이 지역까지 파견돼 살았다는 증거다. 여기에 춤을 추는 토기가 나왔으니 이게 당시 명성을 떨치던 발해의 춤이 아니었을까? 좀 더 상상력을 발휘한다면 당시 이 지역의 기층민이던 말갈족들이 발해의 무용에 매료돼 토기에 새긴 것이 아닐까?
서기 8~9세기에 발해는 극동에 최초로 세워진 국가로 선진문화를 주변 지역에 널리 전파시켰다. 그 중에는 음악이나 무용같은 무형의 문화들도 포함됐을 것이다. 무형의 문화들은 고고학적으로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콕샤로프카 성지에서 출토된 토기는 무척 고마운 자료다. 토기 조각 한 점에서 극동 문명의 빛이었던 발해를 떠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