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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교양 인문학
· ISBN : 9788962603910
· 쪽수 : 214쪽
· 출판일 : 2012-10-20
책 소개
목차
머리말 끝나지 않는 숨바꼭질
1부 행복 발견의 대가들
1장 소크라테스 혁명의 도래
그리고 그가 왔다
에피쿠로스는 쾌락주의자가 아니다
신중하고 또 신중하라
참고 삼가라
극단적인 현자들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하는 제3의 길
행복할 자격
악인을 위한 행복?
2장 언제나 바라고 더 바라다
홉스처럼 생각하고 에피쿠로스처럼 살자
욕구만으로는 행복해지지 않는다
파스칼의 천재성
3장 행복의 패러독스
불행의 부재
삶의 의미
기뻐하는 법 배우기
계속 살아 있으려면
2부 믿어라, 그러면 얻을 것이니
4장 하늘로 올라간 행복
에덴동산
영원한 행복
예루살렘 천성
5장 변화무쌍한 낙원
천상의 궁궐
천사들의 음악
언제나 더 높게, 더 아름답게
낙원은 우리 안에 있다
더 이상 이전의 천국은 없다
6장 신자와 비신자의 악수
택함받은 자들의 모임
영원히 지속되는 사랑
타락한 무리
다른 이들을 위한 지옥
삶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들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희망의 문
신자들의 아편
3부 평등한 세상을 꿈꾸다
7장 귀족의 쾌락과 서민의 쾌락
쾌락의 효능
박식한 ‘리베르탱’
민중의 행복
행복은 초원에
타인의 불행
쾌락의 제어
8장 기묘하고 잡다한 것을 위하여
경이로움에 대한 취향
수호성인 축제와 코코아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드는 기술
9장 만인을 위한 행복
존재할 권리
행복의 전제정치
맺음말 지금, 우리의 행복은?
18세기에는 있고 지금은 없는 것
낙원은 저 너머에
고대의 지혜로 되돌아가다
찾아보기
저자소개
책속에서
에피쿠로스의 주장에 따르면 쾌락은 무엇이든 그 자체로 선이지만, 모든 쾌락의 가치가 동일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만족보다 고통을 더 많이 안겨주는 쾌락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알코올중독자의 쾌락은 쾌락이 맞지만(술을 마시며 즐기기는 하니까요), 알코올중독은 만족보다 고통을 더 많이 경험하게 합니다. 반대로 고통은 무엇이든 그 자체로 괴롭지만, 모든 고통을 피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후에 쾌락이 이어지거나 다른 더 큰 고통을 피하게 해주는 고통도 있기 때문이죠. 치과에 가서 진료를 받는 것은 대개 달갑지 않은 일이지만, 충치 탓에 몇 년 동안 끙끙대는 것보다는 덜 괴로운 일이니 말입니다.
고통과 불행에는 수용과 투쟁만 내세울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는 함께 갑니다. 불행이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정면으로 바라보며, 맞서 싸울 수단을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는 말입니다. 불행에 맞서 싸우는 것도 이미 행복한 일입니다. 바로 여기에 불행의 경험과 우울의 경험이 지니는 차이가 존재합니다. 프로이트는 《애도와 우울》에서 (정신질환적 의미에서의) 우울증 환자는 ‘사랑하는 능력’, 즉 기뻐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사람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불행하지만 우울증을 앓지 않는 사람은 사랑할 능력을 잃어버리지 않았기에 그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며, 자신이 불행과 벌이는 싸움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삶을 사랑한다는 것은 행복할 때만, 행복을 조건으로 할 때만 삶을 사랑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행복이든 불행이든, 쾌락이든 고통이든, 슬픔이든 기쁨이든 삶 전체를 사랑한다는 의미입니다.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여전히 살아 있는 이유는 우리 안에 저항하고 버티는 그 무엇이, 사랑의 힘을 발휘하는 그 무엇이, 우리가 사랑하는 그 무엇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우울증이 자살로 이끈다면 삶을 사랑하는 능력이 사라졌거나 극도로 약해진 탓입니다. 이를테면 현실에서 지독하게 상처를 받았거나(특히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라 더 이상 사랑할 수 없을 때) 고통과 슬픔에 압도당해서 그렇습니다. 이 경우 삶에 대한 의욕을 잃고 때때로 엄습해오는 끔찍한 불안이나 고통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이런 증상은 정도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정신 건강 상태가 어떠한지 대략적으로 말해줍니다. 즐기고 기뻐할 수 있게, 삶을 사랑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삶에 대한 의욕이기 때문입니다. (
낙원과 지옥은 멀지 않았습니다. 루이 14세 시대에는 아기 네 명 중 한 명이 다섯 살도 채우지 못한 채 사망했고, 두 명 중 한 명은 스무 살까지 살지도 못했습니다. 성인의 사망률도 지금보다 훨씬 높았습니다. 여기에 페스트로 인한 집단사가 더해지면서 사망률은 절정에 달했습니다. 흑사병이라고도 불린 이 페스트는 3년(1348~1350) 만에 유럽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이후 1630년에는 밀라노에서, 1656년에는 나폴리에서 그리고 1720년에는 마르세유에서 페스트가 유행해 여름 두세 달 만에 인구의 절반에 달하는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마르세유에서는 주민 12만 명 중 6만 명이 죽음을 맞았습니다. 또 성 뱅상 드 폴Saint Vincent de Paul이 살던 시대에는 파리 거리에서 굶어죽은 사람을 보는 일이 드물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페스트라는 전염병 때문에 대개 운명론자로 살아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모든 사람이 죽음 너머의 세상, 즉 이승 이후의 삶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