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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추리/미스터리소설 > 한국 추리/미스터리소설
· ISBN : 9788963718910
· 쪽수 : 287쪽
책 소개
책속에서
한쪽 눈을 꿈틀거린 송철이 물었다.
“범인이라니? 성윤준 유생은 들짐승에게 해를 입었네.”
그 말에 정진섭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거추장스럽게 흘러내리는 유건을 벗어 버리면서 말했다.
“들짐승이라면 향관청 안팎에 발자국이 찍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람의 목을 뜯어낼 정도라면 최소한 호랑이라는 얘긴데, 그날 저는 주변에서 호랑이 발자국 같은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다른 유생들도 마찬가지였을 거고요.”
정진섭이 자신 있게 말하며 유생들을 바라봤다. 그러자 흥미로운 눈길로 바라보던 유생들이 제각각 딴청을 피웠다.
그런 모습을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던 정진섭이 송철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만약 호랑이 같은 들짐승의 소행이라면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문입니다. 제가 재직인 수돌이의 손에 이끌려 갔을 때는 문이 살짝 열려 있었습니다.”
“그게 뭐가 이상하단 말이냐?”
“들짐승이 드나들었다면 너무 얌전하게 문을 여닫은 게 아닌가라는 생각 안 해 보셨습니까?”
비꼬는 정진섭의 말투에 송철의 표정이 흔들렸다.
“정말 살인이라고 믿으십니까?”
김갑생이 조심스럽게 묻자 정진섭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믿는다는 게 뭔가?”
“그냥 믿는 거 아닙니까?”
“아니야. 믿는다는 건 의심하지 않는다는 거지. 나는 음식을 내 입에 넣기까지 끊임없이 의심해. 이 재료와 저 재료가 섞이면 과연 내가 기대하는 그 맛이 날까 ? 저런 식으로 재료를 배합하면 과연 맛이 제대로 섞일까 아니면 따로따로 놀까 ? 그런 의심이 사라지는 건 재료를 섞어서 완성된 음식을 내 입에 넣을 때야.”
손으로 음식을 입에 넣는 시늉을 한 정진섭이 덧붙였다.
“그런데 가끔 예상과는 전혀 다른 맛이 날 때가 있어. 그럴 때는 내가 모르는 재료나 조리법이 있었던 거지. 이번 사건이 딱 그런 상황이야. 누가 봐도 살인인데 이유가 없어.”
“전에는 유생들끼리 사이가 나쁘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렇긴 해도, 성균관 안에서 살인을 저지를 만큼 배짱 좋은 놈은 없어. 거기다 성윤준은 사량생에 공부도 못하는 편이라 과거에 합격할 가능성도 없었지.”
“그런데 왜 죽은 겁니까?”
“그게 문제야. 돈이 많다고 자랑을 하긴 했지만 죽일 만큼 미움을 받은 적은 없거든.”
“유생님 말씀대로라면 살인이 아니라는 얘기지 않습니까?”
“아니지.”
손가락을 까닥거린 정진섭이 대답했다.
“이번 사건에는 내가 모르는 재료나 조리법이 있다는 뜻이지. 그걸 찾으면 음식 맛의 비밀을 알아낼 수 있듯 살인의 원인을 찾아낼 수 있는 거고.”
정진섭은 마른침을 삼킨 채 칼을 쥔 상대방의 손을 지켜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