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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우리나라 옛글 > 산문
· ISBN : 9788964068403
· 쪽수 : 371쪽
책 소개
목차
서문 3
상권 7
중권 117
하권 261
해설 359
지은이에 대해 366
옮긴이에 대해 370
책속에서
글이란 도를 전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바른 도리에 어긋나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층 기운을 돋우어 듣는 사람을 감동시키고자 할 때는 더러 괴이한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더구나 시를 짓는 것은 비유, 흥취, 풍자를 근본으로 하는 것이므로 반드시 기괴함에 의탁해야 한다. 그래야 그 기상이 웅대하고 그 의미가 심오하며 말이 뚜렷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미묘한 뜻을 드러내어 마침내 올바른 데로 돌아가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절대로 선비로서 남의 것을 표절한다든가 모방해 가며 지나치게 꾸미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비록 시인들에게는 다듬고 연마하는 네 가지 규칙이 있지만, 취해야 할 것은 구절과 의미의 조탁이어야 한다. 지금의 후진들은 음률과 문장만 숭상해 글자를 다듬는 데 온통 관심을 쏟고 반드시 새롭게 하고자 하기 때문에 그 뜻이 졸렬해져서 걸출하고 노련한 기풍을 상실하고 만다.
옛사람들의 문장이 반드시 간략했던 것이 어찌 그들의 재주가 부족한 때문이었으리오. 대개 들뜨고 헛된 것을 버리고 정성스럽고 진실한 것만 취해서 사실대로 나타내고자 했을 뿐이다. 글을 짓는 사람들은 이것을 본받아 항상 신중해야 할 것이다.
정지상이 <8척(八尺)이 되는 방>을 시제로 삼아 “바윗돌 옆 솔은 늙고 조각달 하나 떠 있는데/ 하늘가 구름은 낮고 여러 산이 벌여 있네(石頭老松一片月 天末雲低千點山)”라고 했다. 나는 일찍 그 말과 뜻이 청아하고 절묘함을 사랑해 때때로 읊어 보았다. 그러다가 전라도 안찰사가 된 뒤 2월 3일 변산에 있는 신라 진표율사(眞表律師)가 수도했던 곳의 뒷산에 올라갔다. 곁에 노송이 있어 하늘을 찌를 듯한데 초승달이 은은히 비치고 아래로 너른 들판을 바라보니 하늘에 닿을 것 같은 뭇 산들이 다북쑥처럼 뾰족이 구름과 연기에 솟아 있었다. 문득 정지상의 시가 떠올라 중얼거리며 음미하다가 이와 같은 경지에 이르지 않으면 어찌 정지상의 깨달은 바를 알겠는가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