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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비평/칼럼 > 국제사회비평/칼럼
· ISBN : 9788964372111
· 쪽수 : 260쪽
· 출판일 : 2014-08-25
책 소개
목차
영어판 추천사 6
다리 13
여기는 라말라 56
데이르 가사나 79
마을 광장 102
시간을 산다는 것 125
아빠 아저씨 142
추방 176
재결합 204
날마다 심판의 날 238
옮긴이 후기 242
리뷰
책속에서
마지막으로 이곳을 떠나던 때에는 내 안경알이 이렇게 두껍지 않았고 머리칼은 완전히 검은 색이었다. 기억의 무게는 가벼웠고, 기억력도 좋았다. 그때 나는 소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버지, 이곳을 마지막으로 건너던 때의 나와 비슷한 나이의 아들을 둔 아버지다. 그때는 멀리 떨어진 나라에 있는 대학에 가기 위해 내 나라를 떠나고 있었지만, 지금 나는 그 대학에 다니는 아들을 뒤에 두고 이곳으로 돌아왔다.
앞으로도 30년을 몇 번이나 더 보내야 오지 못할 사람들이 다시 돌아올까? 나의 귀향, 혹은 다른 누군가의 귀향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들의 귀향, 내쫓긴 수백만 명의 귀향이야말로 진정한 귀향이다. 우리의 사자(死者)들이 남의 땅에 묻혀 있다. 살아 있는 우리는 남의 국경에 막혀 있다. 이 세상 다섯 대륙의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기묘한 경계선이 그어진 그 다리 위에서, 나는 타인의 경계선에 묶여 있는 나의 기억들에 압도당하고 만다.
그러니 새로울 게 뭔가? 이곳의 주인은 여전히 그들인 것이다. 그들이 우리에게 허가증을 내준다. 그들이 우리의 서류를 검사한다. 그들이 내 정보를 파일로 만든다. 그들이 나더러 기다리라고 한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나만의 국경을 갈구하는 것인가? 나는 국경이 싫고, 경계선이 싫고, 통제가 싫다. 몸과 글과 행동과 국가의 경계선들. 나는 팔레스타인을 위한 경계선을 정말로 바라는 것일까? 그 경계선은 다른 경계선보다 과연 나을까?
점령이 만들어 낸 세대들, 그들에게는 기억해야 할 빛깔과 냄새와 소리를 지닌 장소가 없다. 다른 누구에게보다 그들에게 속한 장소, 누덕누덕 기운 망명지의 기억을 떠나 되돌아갈 장소가 없다. 기억 속에 간직할 유년 시절의 침대, 폭신한 인형을 놓아두고 일어날 침대, 어른이 되면 더는 쓰지 않을 흰 베개를 무기처럼 들고 새된 소리를 내지르며 우당탕 몸싸움을 벌일 침대가 없다. 바로 이것이다. 점령은 공포와 핵미사일과 장벽과 경비병 들로 둘러싸인, 이해하지 못할 머나먼 대상을 사랑해야 하는 세대를 우리에게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