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원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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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 초나라의 신하이자 문인. 나라를 올바로 이끌어보려 했으나 중상모략으로 궁궐에서 밀려나 유랑하며 불운한 말년을 보냈다. 「이소離騷」 「천문天問」 「초혼招魂」 「애영哀?」 「회사懷沙」 등의 절창을 남겼다. 진나라의 장수 백기白起가 초나라의 수도 영도?都를 공격해 초나라가 결국 패망하자 멱라강汨羅江에 뛰어들어 자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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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향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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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향(劉向, BC 77∼BC 6)은 본명이 갱생(更生), 자(字)는 자정(子政)으로 패[沛, 지금의 장쑤 성(江蘇省) 페이 현(沛縣)] 사람이다. 서한(西漢) 말엽의 저명한 경학가(經學家)이자 도서목록분류학자이며 문학가다. 그는 한(漢) 고조 유방(劉邦)의 아우인 초(楚) 원왕(元王) 유교(劉交)의 4대 손이고 유흠(劉歆)의 부친으로, 선제(宣帝) 때 산기간대부(散騎諫大夫)에 발탁되었다. 원제(元帝) 때 종정(宗正)이 되었는데, 음양오행술로 정치의 득실을 따지고 환관과 외척들을 탄핵함으로써 두 번이나 하옥되었다. 성제(成帝) 때에는 이름을 향(向)으로 바꾸고 광록대부(光祿大夫)를 역임했으며 관직을 중루교위(中壘校尉)로 마쳤기 때문에, 후세에는 그를 ‘유광록(劉光祿)’ 또는 ‘유중루(劉中壘)’라고 칭했다. 유향은 전적들을 교감하여 《별록(別錄)》 20권을 찬(撰)했으며, 그 밖의 저작물로는 《상서홍범오행전론(尙書洪範五行傳論)》·《신서(新序)》·《설원(說苑)》·《열녀전(列女傳)》 등이 남아 있고, 이 외에도 분실된 《오경통의(五經通義)》와, 대부분이 분실된 《구탄(九歎)》 등 사부(辭賦) 33편이 있다. 현재 보이는 《유중루집(劉中壘集)》은 명대(明代) 사람이 집록한 것이며, 그가 편찬했다고 하는 문언소설인 《열선전(列仙傳)》은 한위(漢魏) 시대의 방사(方士)가 유향의 이름을 가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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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의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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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00~168) 중국 전한(前漢)의 문인이자 정치가이다. 낙양에서 태어났고 어릴 때부터 시서와 작문에 능했다. 18세가 되던 해 하남군의 태수 오공(吳公)이 그를 발탁해 문하에 두고 총애했다. 문제 즉위 초에 오공이 정위의 자리에 오르면서 오공의 추천으로 가의는 장안으로 가 22살에 역대 최연소 박사(博士)가 되었다.
박사가 된 가의는 전한 조정에서 천재성을 발취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문제의 신임을 받은 가의는 1년도 안 되는 사이에 태중대부(太中大夫) 직에 올랐다. 이 해에 가의는 황제에게 <논정제도흥예악소(論定制度興禮樂疏)>와 <논적저소(論積貯疏)>를 올려 현실 정치에 대한 견해를 적극적으로 드러냈다. 또한 문제 2년에는 진의 실패를 거울 삼아 선정과 덕치를 베풀어야 한다는 <과진론>을 썼다. 진나라의 제도를 답습하고 있던 현실이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본 그는 역법, 복색, 관직 제도와 법을 개정하고 예악을 부흥시킬 것을 제안했고 문제는 가의의 제안 중 일부를 채택하고 그를 공경(公卿)직에 임명하려 한다.
그러나 가의의 재능을 시기하던 공신들의 반대로 그는 장사왕의 태부로 좌천된다. 1년이 지난 후 문제는 좌천 후 힘든 시기를 보내던 가의를 다시 불러 시정을 논하고, 양회왕 태부로 발령한다. 이 해 그는 황제에게 <논시정소(論時政疏)>를 올렸다. <논시정소>는 <진정사소(陳政事疏)> 혹은 <치안책>이라고도 불리는데, 후대에는 주로 <치안책>으로 불렸다. 그러나 양회왕이 후사를 남기지 않고 낙마(落馬)로 사망하자 가의는 태부로서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음을 통감하고 1년여 동안 곡읍(哭泣)하기를 그치지 않다가 애도 끝에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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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삭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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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는 만천이고 평원(平原) 염차[厭次, 지금 산둥성(山東省) 양신현(陽信縣) 동남쪽에 해당되는 지역] 사람이다. 서한(西漢) 무제(武帝) 시기 태중대부(太中大夫)까지 지냈으며 걸출한 외모, 익살스러운 언변과 거침없는 행동 때문에 생존할 당시부터 이미 무성한 소문을 만들어냈다. 사람들은 특히 동방삭의 해학과 말재주를 좋아했다고 전해지는데, 동방삭에 관련된 설화는 한국에서도 널리 유행했다. 저술로 <답객난(答客難)>, <비유선생(非有先生)>, <봉태산(封泰山)>, <책화씨벽(責和氏璧)>, <황태자생매(皇太子生?)>, <병풍(屛風)>, <전상백주(殿上柏柱)>, <평락관부렵(平樂觀賦獵)>, <팔언칠언(八言七言)>, <종공손홍차거(從公孫弘借車)> 등이 있다. 이 외 ≪신이경≫과 ≪십주기(十洲記)≫ 등의 지괴소설을 지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모두 가탁된 것으로 추정된다.
먼 변방의 진기한 사물, 인간과 귀신 간의 자유로운 왕래, 신선들의 화려한 낙원, 서왕모(西王母)와 동왕공(東王公)의 아름다운 만남?이것이 바로 ≪신이경≫의 상상력 세계가 만들어내는 황홀경들이다. ≪신이경≫은 인간이 직접 갈 수 없는 먼 변방의 이야기들을 들려주면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하고, 때로는 상상력과 환상의 힘을 빌려 인간 사회를 넌지시 풍자하기도 한다. ≪신이경≫의 상상력이 가지는 힘은 아마도 여기에 있으리라. 유학자들은 ≪신이경≫을 두고 ‘정도(正道)에 위배되는 허망한 이야기’라고 비난해 왔지만, 사람들은 ≪신이경≫을 통해 유가경전에서 표현할 수 없었던 환상과 상상력을 마음껏 표출할 수 있었다. 공식 담론에서 무시해 왔던 소외된 지식들, 인간의 정서나 감성, 다양한 생활상 등 ‘황당무계한 이야기’의 이면에 담긴 상징과 의미들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로 하여금 무한한 정신적 해방감을 만끽하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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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옥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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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옥(宋玉)은 전국(戰國) 시기 초(楚)나라 언(?) 사람으로, 대략 초나라 경양왕(頃襄王) 원년(BC 298)에 태어나 초나라의 마지막 임금 부추(負芻) 때 세상을 떠났다. 초(楚) 양왕(襄王)의 신하로 있으면서 간언도 하고 계책도 올렸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 대부(大夫)로 있던 등도자(登徒子)와 당늑(唐勒)의 모함을 받은 적이 있다. 문학사적으로 그는 굴원(屈原)의 초사(楚辭) 문학을 계승 발전시키고 한부(漢賦)의 기틀을 마련한 작가로, 중국 문학사에서 큰 위상을 갖고 있다. 그의 작품은 현재 20편 정도가 전하는데, 뜻을 이루지 못한 심정과 군주를 일깨우고자 풍간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널리 알려진 <구변(九辯)>·<고당부(高唐賦)>·<신녀부(神女賦)>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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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남소산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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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이 분명치 않으나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의 문객으로 추정된다. 대표작으로는 「초은사招隱士」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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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포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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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 촉군蜀郡 사람이다. 문재가 뛰어나 황제의 총애를 받았다. 그러나 일찍 병사한다. 대표작으로는 「구회九懷」 9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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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기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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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와 언변이 뛰어났다. 오왕吳王 유비劉?의 문객으로 있다가 유비가 모반을 일으키자 글을 올려 간언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양효왕梁孝王에게 기탁했다. 정치적으로 성취를 거두지 못했다. 대표작으로는 「애시명哀時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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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일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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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일王逸
남군南郡 의성宜城 사람으로 교서랑校書郞과 시중侍中을 지냈다. 가장 이른 초사의 주석본인 「초사장구」를 지었다. 관운은 좋지 않아 세상을 한탄하는 내용의 작품이 많다. 대표작으로는 「구사九思」 9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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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호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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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포항 출생으로 중국 난징대학교 중문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중국 고전 문학 연구와 번역에 힘을 쏟고 있다. 특히 거시적 관점에서의 중국 문학 연구와 중국학의 토대가 되는 경전의 읽기와 번역에 관심을 두고 있다. 저역서가 대학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와 세종도서(학술부분)에 네 차례(2001년, 2007년, 2018년, 2020년), 서울국제도서전에서 ‘한국에서 가장 지혜로운 책’에 한 차례(2024년) 선정된 바 있다. 저서로는 《중국 문학의 탄생》, 《아름다운 중국 문학》, 《고구려와 수의 전쟁》이 있고, 역서로는 《초사》, 《장자내편 역주》, 《서경》, 《한비자 1~3》, 《경전석사》 등이 있고, 중국의 정사 《수서》를 13권으로 완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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