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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 기정진의 철학 사상

노사 기정진의 철학 사상

근대호남유학연구단, 윤사순, 이동희, 최영진, 박학래, 이향준, 이천승, 이상익, 고영진, 이형성 (지은이)
  |  
전남대학교출판부
2021-06-21
  |  
2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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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 기정진의 철학 사상

책 정보

· 제목 : 노사 기정진의 철학 사상 
· 분류 : 국내도서 > 대학교재/전문서적 > 인문계열 > 철학
· ISBN : 9788968498190
· 쪽수 : 432쪽

책 소개

전남대학교 철학연구교육센터 근대호남유학연구 총서 1권. 노사 선생 성리학의 철학적 탐구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논문을 가려 뽑고, 노사학파의 특징과 위상 그리고 지역에서의 노사학 계승과 후학 양성을 엿볼 수 있는 논문을 추가하였다.

목차

노사학 총서를 내면서 / 04

노사 기정진의 리 일원적 우주관|윤사순
— 동아 유일의 리 일원적 성리학설 — / 15
동아 유일의 리 일원론적 주리설 / 15
시대배경과 기정진의 학자적 자세 / 18
리 일원적 주리사유의 극치 / 22
주기, 리기이원, 사유들의 배척 / 28
리 일원적 우주관, 재해석된 이일분수론 / 32
리 일원적 우주관의 영향과 함의 / 39

노사 기정진 유리론(唯理論)의 과정철학적 의미|이동희
서언 / 45
퇴계 이황의 주리설과 존리설(尊理說) / 53
노사 기정진의 유리론 / 58
‘이일분수’의 새로운 해석: 이분원융(理分圓融) / 65
결어 / 74

노사 기정진의 이일분수설에 관한 고찰|최영진
서론 / 77
이일분수설과 인물성동이론 / 80
리와 기의 상관성 / 97
‘이일지리’와 ‘분수지리’의 상함성 / 108
결론 / 124

노사 기정진의 인성물성론|박학래
— 理分圓融에 기초한 湖洛 兩論의 비판적 지양 — / 127
들어가는 말 — 19세기 기호학계와 호락논쟁 / 127
리 중심의 이일분수 체계의 정립 / 132
호락 양론에 대한 비판적 지양 / 142
맺음말—기정진의 인성물성론의 의미와 한계 / 153

기정진의 심론(心論)과 명덕설(明德說)|박학래
들어가는 말 / 158
심과 기질의 관련성 / 164
심과 성의 관계 / 169
심의 본체로서의 명덕 / 173
명덕주리주기설(明德主理主氣說) 비판 / 177
맺음말—심론과 명덕설의 의의 / 186

「외필(猥筆)」의 외침|이향준
— 기사(騎士)는 죽었는가? — / 191
들어가면서 / 191
「외필」 이해의 현황 / 193
주리와 주기가 나타났을 때 / 197
두 번째 용례와 율곡학 / 200
율곡학파 내부의 갈림길 / 204
타카하시 토오루에 이르러 / 208
그릇과 포함, 인과의 역전 / 211
퇴ㆍ율로부터의 거리: 삼각측량을 통해서 / 217
기사(騎士)는 죽었는가 / 223

노사 기정진의 ‘즉기관리(卽氣觀理)’에 기초한 리 중시적 사유|이천승
머리말 / 226
공동체적 삶을 지향한 성리학자 / 230
리의 실재성과 동질성 / 234
리를 통한 기의 역할 강조 / 243
맺음말 / 250

노사 기정진 성리학의 재검토|이상익
서론 / 253
노사(蘆沙)의 근본입장 / 258
율곡(栗谷) 및 호락론(湖洛論)에 대한 비판 / 268
노사 성리학의 근본문제 / 279
결론 / 291

【부록 논문】
기정진 학파의 학통과 사상적 특성|고영진 / 297
머리말 / 297
학맥의 형성 / 301
사상적 특성 / 308
맺음말 / 327

고창지역 노사학파와 유물유적 고찰|이형성 / 329
— 노사 기정진의 직전・재전문인 조사와 유물유적을 중심으로 —
들어가는 말 / 329
기정진의 고창지역 내왕과 치병연학(治病硏學) 유적 / 331
고창지역 기정진 문인 조사와 개별 현황 / 339
기정진의 고창지역 누정기문과 현액 / 358
맺는 말 / 368

[자료(1)] 고창지역 기정진 문인 관향별 분류 / 371
[자료(2)] 기정진의 고창지역 누정 편액시와 기문 / 382
[자료(3)] 고창지역 기정진의 직전과 재전문인 / 404

저자소개

고영진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60년 제주도에서 태어났다. 1996년 연세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한국어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남북한의 언어정책, 제주도 방언 등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해 왔으며, 《한국어의 문법화 과정》(1997), 《언어순수주의의 발현과 전개》(공저, 2018) 등의 저서가 있다. 또한 공역서로 《언어․헤게모니․권력》(2016), 《국어라는 사상》(2006), 《식민지 조선의 언어 지배 구조》(2013) 등이 있다. 현재 도시샤대학 글로벌지역문화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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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사순 (지은이)    정보 더보기
• 1936년 출생 • 고려대학교 철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철학박사) • 고려대학교 철학과 교수 • 한국공자학회장, 한국동양철학회장, 한국철학회장, 국제유교연합회(북경 소재) 부회장, 율곡연구원 이사장 역임 • 현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중국사회과학원 명예교수, 중국 곡부사범대학 객원교수, 대한민국학술원 회원. [저서] 『퇴계철학의 연구』 (국문, 영문판), 『한국유학논구』(국문, 중문판), 『학국유학사』 (국문, 중문판), 『한국의 유학사상』 (국문, 영문판), 『한국의 성리학과 실학』, 『한국유학사상론』, 『신실한 사상론』, 『조선 시대 성리학의 연구』, 『조선, 도덕의 성찰』, 『동양사상과 한국사상』, 『유학의 현대적 가용성 탐구』, 『실학의 철학적 특성』, 『유학자의 성찰』, 『우리 사상 100년』 그리고 『한국철학 사상가』가 있음. [역서] 『퇴계선집』, 『석담일기』 [시집] 1집 『길벗』, 2집 『선비』, 3집 『광부』, 4집 『행복의 얼굴』, 5집 『어느 학인의 자화상』 [논문] 『퇴계의 가치관에 관한 연구』(박사학위 논문)를 비롯하여 약 2백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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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익 (지은이)    정보 더보기
성균관대학교 한국철학과 졸업, 동대학원 동양철학과 졸업(철학박사) 현재 부산교육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저서: 『서국의 충격과 근대 한국사상』, 『朱子學의 길』, 『韓國性理學史論』(1ㆍ2), 『畿湖性理學硏究』, 『사람의 길, 文明의 꿈』 외 논문: 「栗谷에 있어서 理와 氣의 相互主宰와 그 의의」, 「丁若鏞의 倫理思想에 대한 朱子學的 反論」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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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진 (지은이)    정보 더보기
성균관대학교 유학과 졸업, 동대학원 동양철학과 졸업(철학박사) 중국사회과학원 객좌교수, 율곡학회 회장, 한국주자학회 회장 역임 현재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저서: 『유교사상의 본질과 현재성』, 『조선조 유학사상사의 양상』『한국성리학의 발전과 심학적ㆍ실학적 변용』 외 논문: 「노사 기정진의 사단칠정론에 대한 고찰」, 「태극도설」에 대한 남당의 이기론적 해석체계」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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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학래 (지은이)    정보 더보기
군산대학교 철학과 교수 저서로 『奇正鎭 哲學思想 硏究』, 『한말 성리학의 거유 기정진』, 『(학문과 충절이 어우러진) 영천 지산 조호익 종가』, 『여헌 장현광 평전』 등이 있고, 논문으로는 「朝鮮 末期 畿湖學派의 栗谷 理氣論 계승과 분화」, 「蘆沙 奇正鎭의 性理說을 둘러싼 기호학계의 논쟁」, 「鳳棲 兪莘煥의 哲學思想 硏究」, 「臺山 金邁淳의 未發論 연구」, 「艮齋 田愚의 유학사적 위상과 그 영향」, 「淵齋學派의 형성과 전개」, 「勉菴 崔益鉉의 문인 집단 형성과 전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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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승 (지은이)    정보 더보기
우리 전통을 소중히 여기는 오랜 가학의 영향을 받으며 전주에서 성장했다. 시대와 동행하지 못하는 전통에 답답함과 굴레를 느끼면서도 그 접점을 찾으려는 기대감으로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에 입학했다. 의식적으로 유학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오히려 유학의 중심에 깊숙이 들어서는 아이러니에 자주 봉착했다. 전통을 넘어 ‘정통’에 흥미를 느끼고 이에 대해 깊이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흥미의 연장선으로 대학 졸업 후에도 성균관대학교에서 계속 대학원 과정을 다니며 한국 유학을 공부했다. 그 과정에서 한문에 특별한 관심을 가져 성균관의 한림원을 수료했고, 정통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향한 갈망은 태동고전연구소(지곡서당)에서 3년 동안의 한문연수로 이어졌다. 고전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현대적 소통을 위해 중국 사회과학원과 청화대학의 방문학자를 지내기도 하였다. 박사졸업 이후에는 성균관대학교 유교문화연구소에 근무하면서 유학에 대한 애착을 현대사회에 접목시키려 노력했다. 전북대학교 HK교수를 역임하면서 일상에 뿌리내린 우리네 전통문화의 맥박을 느낄 수 있었다. 조선 후기 유학계의 쟁점이었던 호락논변을 중심으로 한국 유학 전반에 걸친 5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고, 박사학위논문을 출간한 『농암 김창협의 철학사상연구』는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에 재직하면서 교육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현재 성균인성교육센터장으로 대학생들의 인성함양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한국철학사연구회와 한국주자학회 회장을 지내면서 우리 학계의 학술발전을 위해서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성균관의 한림원에서 한문강의 및 전통문화의 확산에 힘쓰고 있다. 고전의 힘을 이어가기 위해 『이천승 교수가 읽어주는 맹자』에 이어 『이천승 교수가 읽어주는 대학』을 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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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희 (지은이)    정보 더보기
성균관대학교 유학과 졸업, 동대학원 동양철학과 졸업(철학박사) 동양철학연구회 회장, 한국동양철학회 회장 역임 현재 계명대학교 명예교수 저서: 『조선조 주자학의 철학적 사유와 쟁점』, 『주자―동아시아 세계관의 원천』『주자학 신연구』,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과 조선조 성리학』 외 논문: 「라이프니츠에 있어서 중국철학 수용과정에 대한 연구」, 「牛溪 成渾의 性理說과 조선후기 ‘折衷派’」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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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호남유학연구단 (지은이)    정보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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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노사 기정진의 리 일원적 우주관
? 동아 유일의 리 일원적 성리학설 ?
윤 사 순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학술원 회원)

동아 유일의 리 일원론적 주리설
모든 것을 리(理)와 기(氣) 개념으로 해석하는 성리학은 리기이원(理氣二元)의 균형을 맞추기가 매우 어렵다. 그 원인은 뒤 본론에서 밝혀지겠지만, 리기 개념의 의미 등에 대한 규정과 함께 이를 사용하는 학자의 의도 때문이다. 이 개념들을 사용하여 이룩한 이론이 이원론(二元論)의 균형을 깨고 어느 한 개념으로 치우치는 경향, 곧 리를 위주로 한다거나 기를 위주로 하는 경향이 곧 ‘주리(主理)’ㆍ‘주기(主氣)’임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조선시대 성리학에서 주리ㆍ주기의 경향을 본격적으로 띠기 시작한 때는 대체로 16세기부터이다.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의 성리설이 전자에 속하고,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 1489∼1546)의 성리설이 후자에 속하는 대표적 실례이다. 주리ㆍ주기의 용어 자체는 ‘사단칠정(四端七情)에 대한 이기론적 해석’을 하던 중 이황이 처음으로 사용한 것인데, 그 뒤로 19세기 조선 말기에 이르기까지 학자들이 자주 사용했다. 중국유학이나 일본유학에서는 한국에서처럼 이것이 사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용어의 잦은 구사도 한국 성리학의 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기론적 탐구가 한국에서 왕성했고, 그 탐구에 얽힌 사변성(思辨性)이 그만큼 높은 수준이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조선 성리학의 발전이 18∼19세기에 이르면, 이기론에 나타나는 주리 주기의 편향은 그 어느 때보다도 극심해진다. 주기론의 경우는 녹문(鹿門) 임성주(任聖周, 1711∼1788)의 이기론이 그렇고, 주리론은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 1798∼1876)의 이기론이 그런 것으로 대표적이다. 이들의 주기ㆍ주리의 편향 현상과 비슷한 사례는 중국에서도 일부 찾아진다. 다만 정도의 차이가 문제로 될 따름이다.
임성주의 기철학에 나타나는 ‘주기의 경향 정도’는 중국의 장재(張載, 1020∼1077) 이후 대진(戴震, 1723∼1777)이라든가 완원(阮元, 1764∼1849)에게서 보인다. 그러나 주리설의 경우, 리철학을 본격적으로 발전시킨 정이(程?, 1033∼1107)와 주희(朱熹, 1130∼1200) 이후 중국에서는 어느 성리학자도 기정진의 주리설에 비유될 학설을 내지 않았다. 그 정도로 기정진의 이기론은 극심하게 주리로 편향한 것이다.
본론에서 확인되겠지만, 기정진은 ‘리(理)’ 외에는 아예 ‘기(氣)’를 별개로 인정하지 않는 경향을 띠었다. 그는 ‘기’를 <리의> ‘분(分)’으로 표현했다. 그에 있어 기는 일종의 리의 편린처럼 간주되고 있을 따름이다. 이는 주리를 넘어 ‘이기 일원’에 가까운 ‘유리(唯理)의 성향’이라 할 수 있는 편향이다. 중국에서 이런 것을 찾아 볼 수 없는 이유도 기가 리로 대치된 정도의 사고로까지 흐른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기정진은 물론 초학에서 정주(程朱)의 리기설을 대부분 계승했다. 그것을 계승, 그 나름의 사유로 진전시키다가 이렇게 리에만 편중하는 현상을 조성하게 되었다. 따라서 편향으로 판단하면, 리철학은 기정진에게서 갈 데까지 다 간 ‘극치점(極致点)에 이른 것’이다. 이에 ‘동아(東亞) 유일(唯一)의 리 일원론적 이론’이 바로 그의 이기론 또는 그의 성리학이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논자는 이렇게 독특한 특색을 지닌 ‘기정진의 성리학’을 고찰하려 한다. 다만 본론의 서술에 앞서, 일정한 철학의 형성에는 대체로 그 개인의 ‘철학적 관심’과 더불어 ‘시대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음을 감안하여, 그의 개인 및 시대 환경을 먼저 살필 계획이다. 이런 방법을 통해서만 그의 독특한 사상이 지닌 ‘포괄적 함의(含意)’까지 충분히 밝힐 수 있으리라고 판단된다. 철학에 있어 독특한 이론의 형성도 중요하지만, 그로 인한 사상적 영향과 미래지향의 함의 또한 중요하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이 논자의 견해이다.
이제까지 기정진에 대한 연구는 학계에서 상당히 진행되었다. 박사학위 청구 논문만도 수편에 이른다. 그러나 당시 서세동점(西勢東漸)의 현실에서 유교문화를 수호하면서 제국주의로 무장한 외세를 배척하던 이른바 위정척사(衛正斥邪) 운동에 열성을 바치던 성리학자들, 특히 기정진 같은 학자가 제기한 주리론이 지닌 그 시대적 의의를 깊이 천착한 연구물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런 측면에 대한 연구를 논자는 이 자리에서 시도해보려 한다.

시대배경과 기정진의 학자적 자세
기정진은 1798(정조 22)년에 태어나 1879(고종 13)년에 세상을 하직한 19세기 인물이다. 당시 조선은 왕조 말기의 현상인 ‘쇠망의 그림자’가 어둡게 깔린 형국이었다. 국내외로 내일을 예측할 수 없던 누란의 위기 바로 그것이었다.
국내의 정치는 순조(純祖) 이후 시행된 외척(外戚)의 세도정치(勢道政治)로 삼정(三政: 軍政·田政·還穀)의 문란이 극에 달해 민생을 도탄에 빠뜨리고 있었다. 양민들은 고난을 이기지 못해 다수가 유이민(流移民)으로 전락한 상태였고, 각종 형태의 민요(民擾)를 야기했다. 홍경래(洪景來)의 반란(1811), 충청 전라 경상 삼도의 민란(1862), 광양 민란(1869), 영해ㆍ진주 민란(1871), 그리고 동학혁명(東學革命, 1894) 등이 모두 이 시대에 일어난 사건들이다.
대외로는 열강의 제국주의 침략의 마수가 본격적으로 뻗쳐 오던 시대였다. 병인양요(丙寅洋擾)로 불리는 1866년의 미국함선[제네럴 셔어맨]의 평양 무단 침입, 불란서군함의 두 차례 침입에 의한 강화도(江華島) 점령, 연이은 미국군함의 강화 공격(1871)과 일본군함[雲揚號]의 침입[1875] 등이 그러한 것들이다. 이런 외세의 침략에 대해, 허약성만 노정하던 조선은 무력 대응에서 실패한 채, 다만 ‘척화정책’[斥和碑 설치, 1871]만을 펴면서 시간을 벌려고 하였다. 그러나 월등한 무력으로 압도해오던 침략세력이 조선에게 시간의 여유를 줄 리 없었다. 특히 서구적 근대화와 제국주의를 모방하는데 조선보다 앞선 일제의 끈질기고 간악한 압박으로 인해, 조선은 마침내 기정진이 사망하던 1876년 인천(仁川)을 개항, ‘쇄국의 문호’를 열 수밖에 없었다.
조선의 성리학자들 특히 애국적인 선비들이 ‘위정척사(衛正斥邪)’의 구호를 외치면서, 침략성을 지닌 외세를 물리치는데 심혈을 기울인 시대가 또한 이 시대였다. 위정척사란 정학(正學)이라여기던 성리학의 유교이념을 비롯한 문화전통을 지키면서, 간악한[邪] 침략자들인 외세의 문명과 문화를, 특히 서학(西學) 이름의 천주교를 배척하자는 의미이다. 성리학자들은 서구 무력에 의한 조선 패망이나 천주교의 전파에 의한 조선인들의 정신적 황폐화나, 모두 망국(亡國)을 초래하는 점에서는 같다고 판단했다. 그들로서는 문(文)과 물(物), 양 측면으로 일단 쇄국정책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성리학자 기정진은 이 위정척사를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학자 가운데 하나에 드는 인물이다. 그가 지녔던 학자적 자세와 선비로서 취한 노선은 ‘위정척사파에 속한 것’으로 이미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기정진은 전북 순창에서 태어났으나, 어릴 적에 전남 장성(長城)으로 옮겨와, 일생을 장성에서 살다가 그 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4세에 말과 글을 함께 익히면서, 8∼9세에는 벌써 유학의 경전과 역사서에 능통했다고 하는 ‘천재적 재질의 소유자’였다. 34세에는 벼슬길로 통하는 과거인 사마시(司馬試)에 응시해 장원을 차지하여, 강릉참봉(康陵參奉)에 임명되었으나, 그는 사절하고 취임하지 않았다. 45세의 그에게 전설사(典設司) 별제(別提, 종 6품)가 주어짐에 그것을 받아드렸지만, 겨우 6일 만에 사직하고 말았다. 그 뒤로 생애를 마칠 때까지 그는 더 이상 벼슬을 넘보지 않았다. 소질로 보아 자신은 관료로서 부적합하며, 특히 국란의 위기에 관직의 책임을 다 할 수 없는 인물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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