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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삼국유사

일연 (지은이), 최호 (옮긴이)
  |  
홍신문화사
2008-02-15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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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책 정보

· 제목 : 삼국유사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고대~고려시대 > 한국고대사 > 한국고대사 일반
· ISBN : 9788970557595
· 쪽수 : 428쪽

책 소개

삼국유사는 고려 후기 고승 일연이 충렬왕 년에 편찬한 역사서. 불교와 승려에 관련된 내용그리고 향가 수를 비롯하여 단군신화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양이 수록되어 있어 문화유산의 보고로 평가받는다. 홍신문화사에서 펴내는 '동양 고전으로 미래를 읽는다' 시리즈 9번째 책.

목차

머리말 _ 5

제1권
기이(紀異) 제1 14
1. 고조선(古朝鮮)·15/2. 위만조선(魏<衛>滿朝鮮)·17/3. 마한(馬韓)·20/4. 2부(二府)·22/5. 72국(七十二國)·22/6. 낙랑국(樂浪國)·23/7. 북대방(北帶方)·24/8. 남대방(南帶方)·24/9. 말갈(靺鞨)과 발해(渤海)·24/10. 이서국(伊西國)·27/11. 5가야(五伽耶)·27/12. 북부여(北扶餘)·28/13. 동부여(東扶餘)·28/14. 고구려(高句麗)·29/15. 변한(卞韓)과 백제(百濟)·33/16. 진한(辰韓)·34/17. 사절유택(四節遊宅)·35/18. 신라의 시조 혁거세왕(赫居世王)·35/19. 제2대 남해왕(南解王)·40/20. 제3대 노례왕(弩禮王)·42/21. 제4대 탈해왕(脫解王)·43/22. 탈해왕 대(代)의 김알지(金閼智)·46/23. 연오랑(延烏郎)과 세오녀(細烏女)· 47/24. 미추왕(未鄒王)과 죽엽군(竹葉軍)·49 /25. 내물왕(奈勿王)과 김제상(金提上)·51/26. 제18대 실성왕(實聖王)·57/27. 사금갑(射琴匣)·57/28. 지철로왕(智哲老王)·59/29. 진흥왕(眞興王)·60/30. 도화녀(桃花女)와 비형랑(鼻荊郎)·61/31. 천사옥대(天賜玉帶)·63/32. 선덕여왕(善德女王)의 세 가지 지기(知幾)·65/33. 진덕왕(眞德王)·67/34. 김유신(金庾信)·69/35. 태종(太宗) 춘추공(春秋公)·72/36. 장춘랑(長春郎)과 파랑(罷郎)·88

제2권
기이(紀異) 제2 92
1. 문무왕(文武王) 법민(法敏)·92/2. 만파식적(萬波息笛)·100/3. 효소왕(孝昭王) 대의 죽지랑(竹旨郎)·103/4. 성덕왕(聖德王)·106/5. 수로부인(水路夫人)·106/6. 효성왕(孝成王)·108/7. 경덕왕(景德王)·충담사(忠談師)·표훈대덕(表訓大德)·108/8. 혜공왕(惠恭王)·112/9. 원성대왕(元聖大王)·113/10. 조설(早雪)·118/11. 흥덕왕(興德王)과 앵무(鸚鵡)·118/12. 신무대왕(神武大王)·염장(閻長)·궁파(弓巴)·119/13. 제48대 경문대왕(景文大王)·120/14. 처용랑(處容郎)과 망해사(望海寺)·123/15. 진성여대왕(眞聖女大王)·거타지(居陀知)·126/16. 효공왕(孝恭王)·129/17. 경명왕(景明王)·130/18. 경애왕(景哀王)·130/19. 김부대왕(金傅大王)·130/20. 남부여(南扶餘)·전백제(前百濟)·북부여·138/21. 무왕(武王)·143/22. 후백제(後百濟)와 견훤(甄萱)·145/23. 가락국기(駕洛國記)·162

제3권
흥법(興法) 제3 184
1. 고구려에 처음으로 불교를 전한 순도(順道)·184/2. 백제의 불교를 연 난타(難陀)·185/3. 신라 불교의 기초를 잡은 아도(阿道)·186/4. 불법을 일으킨 원종(原宗)과 몸을 바친 염촉(厭 )·193/5. 살생을 금한 법왕(法王)·201/6. 노자(老子)를 받드는 보장왕(寶藏王)과 암자를 옮긴 보덕(普德)·202

탑상(塔像) 제4 208
1. 동경(東京) 흥륜사 금당(金堂)의 10성(聖)·208/2. 가섭불 연좌석(迦葉佛宴坐石)·208/3. 요동성(遼東城)의 육왕탑(育王塔)·210/4. 금관성(金官城)의 파사석탑(婆娑石塔)·212/5. 고구려의 영탑사(靈塔寺)·214/6. 황룡사의 장육(丈六)·214/7. 황룡사의 9층탑·217/8. 황룡사 종 ·분황사 약사(藥師)·봉덕사 종·221/9. 영묘사(靈妙寺)의 장육·222/10. 사불산(四佛山) ·굴불산(掘佛山)·만불산(萬佛山)· 223/11. 생의사(生義寺)의 석미륵(石彌勒)·225/12. 흥륜사의 벽화 보현(普賢)·226/13. 세 절의 관음(觀音)-중생사(衆生寺)· 227/14. 백률사(栢栗寺)·231/15. 민장사(敏藏寺)·234/16. 전후(前後)에 가져온 사리(舍利)·235/17. 미륵선화(彌勒仙花)·미시랑(未尸郎)·진자사(眞慈師)·246/18. 남백월(南白月)의 두 성인 노힐부득(努 夫得)과 달달박박( 朴朴)·250/19. 맹아의 눈을 뜨게 한 분황사의 천수대비(千手大悲)·258/20. 낙산(洛山)의 두 대성(大聖) 관음(觀音)·정취(正趣)와 조신(調信)·259/21. 어산(魚山)의 불영(佛影)·267/22. 대산(臺山)의 5만 진신(眞身)·272/23. 명주(溟州) 오대산 보질도(寶叱徒) 태자의 전기·281/24. 오대산 월정사(月精寺)의 오류성중(五類聖衆)·283/25. 남월산(南月山)·284/26. 천룡사(天龍寺)·286/27. 무장사( 藏寺)의 미타전(彌陀殿)·288/28. 백엄사(伯嚴寺)의 석탑사리(石塔舍利)·290/29. 영취사(靈鷲寺)·291/30. 유덕사(有德寺)·292/31. 오대산 문수사(文殊寺)의 석탑기(石塔記)·292

제4권
의해(義解) 제5 296
1. 원광(圓光)의 서학(西學)·296/2. 보양(寶壤)과 이목(梨木)·308/3. 양지(良志)가 부리는 석장(錫杖)·313/4. 천축(天竺)에 들어간 여러 법사들·314/5. 혜숙(惠宿)과 혜공(惠空)의 동진(同塵)·315/6. 자장(慈藏)의 정률(定律)·321/7. 원효(元曉)의 불기(不羈)·328/8. 의상(義湘)의 전교(傳敎)·333/9. 사복(蛇福)의 불언(不言)·337/10. 진표(眞表)의 전간(傳簡)·339/11. 관동 풍악(關東楓岳)의 발연수석기(鉢淵藪石記)·344/12. 승전(勝詮)의 석촉루(石 )·349/13. 심지(心地)의 계조(繼祖)·351/14. 대현(大賢)의 유가종(瑜 宗)과 법해(法海)의 화엄종(華嚴宗)·355

제5권
신주(神呪) 제6 360
1. 사(邪)를 꺾은 밀본(密本)·360/2. 용을 항복시킨 혜통(惠通)·363/3. 신인종(神印宗)의 시조인 명랑(明朗)·367
감통(感通) 제7 371
1. 선도성모(仙桃聖母)의 수희불사(隨喜佛事)·371/2. 염불하여 서승(西昇)한 욱면비(郁面婢)· 374/3. 광덕(廣德)과 엄장(嚴莊)·377/4. 대성(大聖)을 만난 경흥(憬興)·379/5. 공양을 받은 진신(眞身)·381/6. 월명사(月明師)의 도솔가(兜率歌)·383/7. 환생한 선율(善律)·386/8. 김현(金現)의 감호(感虎)·388/9. 진평왕 대 융천사(融天師)의 혜성가(彗星歌)·394/10. 빙녀(氷女)를 구한 정수사(正秀師)·395

피은(避隱) 제8 397
1. 낭지(朗智)의 승운(乘雲)과 보현수(普賢樹)·397/2. 연회(緣會)의 도명(逃名)과 문수점(文殊岾)·401/3. 고요함을 구한 혜현(惠現)·403/4. 벼슬을 버린 신충(信忠)·404/5. 포산(包山)의 두 성인·406/6. 도적을 만난 영재(永才)·409/7. 물계자(勿稽子)·410/8. 영여사(迎如師)·412/9. 경덕왕 대 포천산(布川山)의 다섯 비구·413/10. 염불사(念佛師)·413

효선(孝善) 제9 415
1. 효와 선이 아름다운 진정사(眞定師)·415/2. 신문왕 대 2세(世) 부모에게 효도한 대성(大城)·417/3. 경덕왕 대 허벅지살을 베어 부모를 공양한 향득사지(向得舍知)·421/4. 흥덕왕 대 아이를 묻은 손순(孫順)·421/5. 어머니를 봉양한 가난한 딸· 423

발(跋) 425

저자소개

일연 (지은이)    정보 더보기
고려의 승려이다. 속성은 전씨, 이름은 견명, 자는 회연, 호는 무극·목암이다. 경주 장산군(지금의 경산시) 출신으로, 아버지는 지방 향리 출신인 언필이다. 1206년(희종 2년)에 태어나 1289년(충렬왕 15년) 입적하였다 충렬왕 3년 운문사에 머무르면서 『삼국유사』 집필에 착수하였다. 특정 신앙이나 종파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불교 신앙을 표방하는 저술을 찬술했으며, 선과 교를 막론하고 많은 불교 서적을 편수하였다. 9세 때 해양(지금의 光州) 무량사에서 취학했으며, 14세 때 설악산 진전사로 출가하여 대웅장로에게서 구족계를 받았다. 1227년(고려 고종 14년) 선불장에 나아가 상상과에 급제한 이후 포산(현풍현 비슬산)의 보당암·무주암·묘문암 등지에서 머물렀으며, 1237년 삼중대사가 되고 1246년 선사가 되었다. 대몽항쟁기 일연은 포산에서 22년을 보내면서 뚜렷한 행적을 남기지 않았다. 1249년 최씨 무인정권과 밀접한 유대를 가지고 있던 정안의 초청으로 남해 정림사에 머물게 되었다. 이는 일시적으로 최이에게 반발한 정안이 수선사 계통의 승려를 기피하여 가지산문의 일연을 초청한 것인데, 이로 인하여 가지산문의 승려들이 최씨 정권과 연결되어 1251년에 완성된 대장경 조판 중 남해분사에서의 작업에 참가하게 되었다. 1259년 대선사가 되었고, 1261년(원종 2년) 원종의 명에 따라 강화도에 초청되어 선월사에 머물렀는데, 이때 지눌의 법맥을 계승했다. 이는 그가 가지산문(헌덕왕 때 보조선사 체징이 도의道義를 종조宗祖로 삼고 가지산 보림사에서 일으킨 선풍)에서 사굴산문(범일이 강릉의 굴산사에서 선풍禪風을 크게 일으킴으로써 사굴산파 또는 굴산선파라고 함)으로 법맥을 바꾼 것이 아니라 원종을 옹위한 정치세력이 불교계를 통솔하기 위해 일연을 이전의 수선사 계통의 승려를 대신한 계승자로 부각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를 배경으로 가지산문의 재건에 힘썼다. 1268년 왕명에 의해 운해사에서 대장낙성회를 주관하고, 1274년 비슬산 인홍사를 중수한 후 왕의 사액에 따라 인흥사로 개명했으며, 같은 해 비슬산 용천사를 불일사로 개명했다. 1281년 경주에 행차한 충렬왕에게로 가서, 불교계의 타락상과 몽골의 병화로 불타 버린 황룡사의 모습을 목격하였다. 1282년 충렬왕에게 선禪을 설하고 개경의 광명사廣明寺에 머물렀다. 1283년 국존國尊으로 책봉되어 원경충조圓經冲照라는 호를 받았으며, 왕의 거처인 대내大內에서 문무백관을 거느린 왕의 구의례(옷의 뒷자락을 걷어 올리고 절하는 예)를 받았다. 그 뒤, 어머니의 봉양을 위해 고향으로 돌아왔다. 어머니가 1284년에 타계하자, 조정에서는 경상도 군위 화산의 인각사를 수리하고 토지 100여 경을 주어 주재하게 하였다. 경상북도 군위 인각사에서는 당시의 선문을 전체적으로 망라하는 구산문도회를 두 번 개최하였다. 1289년 금강인을 맺고 입적하였다. 대표적인 제자로는 혼구와 죽허가 있다. 저서에는 『삼국유사』 5권, 『선문염송사원』 30권, 『화록』 2권, 『게송잡저』 3권, 『중편조동오위』 2권, 『조파도』 2권, 『대장수지록』 3권, 『제승법수』 7권, 『조정사원』 30권 등을 저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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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 (지은이)    정보 더보기
진주 출생. 경남대학교 졸업 및 동대학원을 수료했고 부산교육대학 교수, 동아대학교·부산대학교 강사를 역임했다. 옮긴책으로 <논어>, <대학>, <시경>, <고문진보>, <삼국유사>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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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고전기(古典記)를 살펴보면 이렇게 되어 있다. 동명왕의 셋째 아들 온조가 전한 홍가 3년 계유에 졸본부여로부터 위례성에 이르러 도읍을 세우고 왕이라 일컬었다. 14년 병진에 한산〔漢山:지금의 광주(廣州)〕으로 도읍을 옮겨 389년을 지나 제13대 근초고왕(近肖古王) 함안(咸安) 원년에 이르러 고구려의 남평양(南平壤)을 취하고 북한성〔北漢城:지금의 양주(楊州)〕으로 도읍을 옮겼다. 105년을 지나 제22대 문주왕(文周王) 즉위 원휘(元徽) 3년 을묘에 이르러 웅천(熊川:지금의 공주(公州)〕으로 도읍을 옮겼고, 63년을 지나 제26대 성왕(聖王)에 이르러 소부리(所夫理)로 도읍을 옮기고 국호를 남부여라고 하였다. 제31대 의자왕(義慈王)에 이르러 120년을 지났는데, 당나라 현경(顯慶) 5년이었다. 이때는 의자왕의 재위 20년으로, 신라의 김유신과 소정방(蘇定方)이 쳐서 평정하였다.-p140~141 중에서

효종랑이 그 말을 듣고 불쌍하게 생각하여 곡식 백 곡(斛)을 보내주자 효종랑의 부모 또한 옷 한 벌을 보냈으며, 효종랑의 무리 천 명도 벼 천 석을 거두어서 보내주었다. 이와 같은 사실이 임금에게 알려지자 이때 진성왕이 곡식 5백 석과 집 한 채를 내려주고, 군사를 보내어 그 집을 호위하여 도둑을 지키도록 하였으며, 그 마을을 정표(旌表)하여 효양리(孝養里)라고 하였다. 후에 모녀는 그 집을 희사하여 절을 삼고 양존사(兩尊寺)라고 이름하였다.-p423~424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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