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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근현대사 > 해방전후사/한국전쟁
· ISBN : 9788971996515
· 쪽수 : 484쪽
· 출판일 : 2015-03-16
책 소개
목차
저자의 글
서장 한 장의 사진: 박헌영, 주세죽, 그리고 현앨리스(1921년, 상하이)
1장 하와이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라다(1903~1920년)
아버지 현순, 하와이를 유람하다(1903~1907년)
현앨리스, 서울에서 자라다(1907~1919년)
1919년 현순, 상하이로 떠나다
현앨리스의 상하이행(1920년)
2장 3·1운동의 후예들(1920~1923년)
상하이에서의 조우: 박헌영 혹은 사회주의
어떤 결혼: 정준과의 결혼(1922년, 상하이)
극동피압박민족대회(1922년, 모스크바)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현앨리스(1923년)
3장 하와이와 뉴욕에서의 삶(1924~1945년)
하와이로의 가족 이주(1922~1925년)
웰링턴의 출산, 사라진 모자이크 조각(1924~1930년)
뉴욕에서의 대학 시절(1931~1935년)
하와이 노동운동, 공산주의 운동과의 조우(1936~1941년)
태평양전쟁기의 행적(1941~1945년)
4장 서울로의 짧은 귀환(1945~1946년)
현앨리스, 도쿄를 거쳐 서울로 부임하다(1945년 12월)
서울로 부임한 통역 현피터(1945년 11월)
현앨리스와 박헌영의 재회
주한미군 공산주의자들의 박헌영 회견
민간통신검열단의 현앨리스
현앨리스와 주한미군 내 공산주의 그룹
서울에서 추방된 현앨리스
5장 『독립』·재미한인 진보진영에 가담하다(1946~1949년)
로스앤젤레스로의 대이동 1946년
재미한인 진보진영: 중국후원회-조선의용대 미주후원회-조선민족혁명당
미주지부-『독립』
『독립』·재미조선인민주전선에서의 활동(1946~1949년)
한줄기 빛: 체코의 한흥수
김일성·박헌영에게 편지를 쓰다(1948년)
6장 희망의 빛, 죽음의 길: 체코에서의 몇 개월(1948~1949년)
체코로 향하는 현앨리스와 정웰링턴(1948~1949년)
체코에서의 체류와 활동(1949년 2~11월)
7장 파국: 박헌영 간첩사건에 휘말리다 (1953~1956년)
북한에서의 나날들(1949~1953년)
이강국 재판: ‘미제의 스파이’ 현앨리스, 리윌리엄(1953년)
박헌영 재판: 알려지지 않은 현앨리스의 최후(1955~1956년)
남북한에 비친 현앨리스의 이미지
8장 그 후: 남겨진 자의 운명
청문회에 소환된 ‘마오쩌둥의 제1요원’ 현피터
16년간 추방 위협에 시달린 현데이비드
북한으로 추방된 김강, 파니아 굴위치 부부
평양에서 실종된 곽정순, 이춘자 부부
사리원에서 실종된 전경준, 송안나 부부
60세에 추방의 기로에 선 신두식
에필로그: 어떤 죽음
정웰링턴, 세상을 버리다(1963년, 체코)
남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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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3·1운동은 현순과 그 가족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근대 세계를 지향하고 해외 교육과 체류의 경험을 가지고 있던 독실한 기독교 목사는 한반도로 밀려드는 시대정신의 급류에 휩싸였다. 3·1운동은 기독교와 천도교의 운동이었고, 신사조 민족주의의 대폭발이었다. 세계대세, 정의인도, 민족자결이 독립만세운동을 이끈 화두였다. (중략) 200만 이상이 동원된 거대한 민중적 에너지는 1894년의 동학 농민전쟁 이후 최대의 것이었다. 현순은 이러한 이글거리는 민족 에너지의 최첨단에 올라탄 셈이었다.
1920년대 초반 박헌영은 상하이에서 급격하게 사회주의자로 변모했다. 그의 출발점은 3·1운동이었고, 그 토양은 민족주의였다. 박헌영은 고려공산당이 운영하는 사회주의연구소의 직원으로 활동하며 사상과 생계 문제를 해결했다. 박헌영은 1921년 3월 고려공산당의 자매단체인 고려공산청년회 상하이 지회 비서가 되었고, 5월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에 입당했다. 1921년 9월 고려공산청년회 중앙총국 결성에 참석해 중앙집행위원이 되었으며, 1922년 3월 고려공산청년회 제2차 중앙총국 회의에서 공청 책임비서로 선출되었다. 박헌영은 1922년 4월 국내로 잠입하려다 단둥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박헌영의 상하이 체류 기간은 1920년 11월부터 1922년 4월 단둥에서 체포될 때까지 1년 7개월에 지나지 않았다. 그가 진정한 사회주의자·공산주의자로 단련된 것은 상하이의 조직 생활이 아니라 경찰의 고문과 총독부의 감옥을 통해서였을 것이다.
현앨리스가 가족도 없고, 생계 방도도 명확하지 않은 중국 땅에서 어떤 생활을 했을지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여성의 몸으로 혼자 헤쳐 나갈 수 있는 일이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단체나 조직에 속하지 않고서는 도움을 얻을 방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앨리스는 스스로 앞길을 개척하는 운명의 주인공이자 의지적 인간형이었다. 그녀는 두려움의 포로가 된 적이 없었다. 1949년 프라하로 홀로 떠날 수 있었던 결단력도 그녀의 삶 속에서 다져진 제2의 본성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