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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후 일본소설
· ISBN : 9788972755623
· 쪽수 : 372쪽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할아버지는 집 1층에 작업장을 두고 망가진 가구를 수선하는 일을 주로 했다. 신품을 만드는 쪽이 더 보람도 있을 테고 기분도 좋을 텐데 왜 낡은 가구만 상대하는지, 소년은 늘 이상하게 생각하곤 했다.
“신품은 너무 위세가 좋으니 말이다.”
할아버지는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좀 힘 빠진 녀석을 더 신경 써줘야 하는 거다.”
소년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일을 방해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그렇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소년은 할머니에게 어째서 입술을 떼었느냐고 물은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그야 숨을 못 쉬니 그렇지.”
할머니의 대답은 어디까지나 현실적이었다.
“숨은 코로도 쉴 수 있잖아요.”
“그럼 젖은 어떻게 빨 거냐?”
“그럼 하느님은 왜 나를 젖도 빨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드신 거예요?”
할머니는 바느질을 중단하고 앞치마 끝에 늘어뜨린 행주를 뭉쳤다가 폈다 하며 시간을 벌었다.
“하느님도 가끔은 허둥댈 때가 있단다.”
손안에서 다양하게 형태를 달리하는 행주를 보며 할머니는 말했다.
“다른 데 특별히 신경을 써주시느라, 그래서 마지막에 입술을 뗄 시간이 없었던 게 아닐까.”
“다른 데라뇨?”
“그건 할미도 모르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니 말이다. 눈인지, 귀인지, 목인지, 좌우지간 어딘가에 보통 사람한테는 없는 특별한 장치를 해주신 게야. 그래, 그거다. 틀림없어.”
소년은 한평생 그 일요일에 있었던 일을 거듭 돌이켜 생각해보게 된다. 그 밖의 추억과는 별도로 특별한 작은 상자에 넣어두고는, 몇 번이고 상자를 열어 살며시 보듬게 된다. 체스에게 배신당했다고 느낄 만큼 상처를 입었을 때, 마스터의 추억에 잠겨 눈물을 글썽이고 말았을 때, 그 포근한 겨울 햇살에 싸인 회송 버스에서 두었던 게임을 생각하며 마스터가 가르쳐준 체스의 기쁨에서 구원을 발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