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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후 일본소설
· ISBN : 9788972756101
· 쪽수 : 184쪽
책 소개
목차
바다
향기로운 바람 부는 빈 여행 6일
버터플라이 일본어 타이프 사무소
은색 코바늘
깡통 사탕
병아리 트럭
가이드
작가 인터뷰
해설
리뷰
책속에서
“무슨 악기를 연주하지?”
이불 속으로 들어가 불이 꺼진 뒤 나는 물었다.
“명린금이에요.”
꼬마 동생은 대답했다.
“명, 린, 금?”
“네, 이렇게 써요.”
그는 허공에 손을 뻗어 검지로 뭐라 글자를 썼으나, 어두워서 읽을 수 없었다.
“흔한 악기가 아닌가봐.”
“네, 아마도.”
“어느 나라 악기인데?”
“음, 일본이에요. 여기요.”
“옛날부터 있던 거야?”
“아뇨, 그렇게 오래된 건 아니고요.”
어둠 속에서 그의 목소리는 한층 더 가늘게 들렸다. 턱 밑까지 이불을 끌어올리고 얼굴만 이쪽으로 돌린 게 어슴푸레 보였다.
“어떻게 생겼지?”
“럭비공보다 좀 더 큰 게 두 팔로 안기에 딱 좋은 크기죠. 혹등고래의 부레로 만들어요.”
“저런.”
“부레 표면에 물고기 비늘을 빽빽하게 붙이고, 속엔 날치 가슴지느러미로 만든 현을 넣었거든요. 그게 진동원이 돼서 공기의 떨림을 비늘에 전달하는 거예요.”
“비늘 종류는 정해져 있고?”
“가급적 물고기 종류를 다양하게 쓰는 편이 깊이 있는 소리가 나오겠죠.”
명린금은 鳴鱗琴이라 쓴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진기한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을 만난 건 처음인데.”
“아마 그럴 거예요. 명린금을 연주하는 사람은 세상에 저밖에 없으니까요.”
꼬마 동생은 말했다.
“제가 발명한 악기거든요. 제가 발명자고, 유일한 연주자예요.”
어둠에 눈이 익은 탓에 그의 얼굴이 더욱 가까이 느껴졌다. 커튼 틈새로 흘러든 달빛이 가느다란 띠가 되어 우리 둘 사이에 드리웠다. 옆방의 이즈미 씨 기척은 이미 완전히 조용해진 뒤였다.
“언제, 어떤 때 연주하지?”
“정해져 있진 않아요. 하지만 연주하는 장소는 꼭 해변이죠. 바다에서 바람이 불지 않으면 소리가 안 나거든요. 그게 그렇잖아요? 바다 생물로만 만든 악기니까요.”
- 「바다」
“아무튼 먼 곳에 비록 한순간이라도 날 기억해준 사람이 있다니 기쁜 일이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잠 못 이루는 밤도 안심이에요. 그 먼 곳을 떠올리면 편안하게 잠들 수 있어요.”
- 「향기로운 바람 부는 빈 여행 6일」
그들이 노쇠한 팔로 나를 끌어안고 등을 토닥여주는데, 내 마음에도 조금씩 슬픔이 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말 한 마디 주고받아본 적 없고 나와는 아무 인연도 없는 사람의 죽음일지라도, 그 죽음의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 떠맡아야 하는 종류의 아픔이 있는 듯했다. 그것은 차가운 샘물처럼 내 몸을 적셨다.
- 「향기로운 바람 부는 빈 여행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