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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문화/문화이론 > 종교문화
· ISBN : 9788974790981
· 쪽수 : 320쪽
· 출판일 : 2015-03-18
책 소개
목차
1장 에피소드 인도문화
사시사철 복날을 사는 인도개 | 하늘을 흐르던 강, 갠지스 | 목욕하면 죄도 함께 씻어진다 | 영혼은 화장의 연기를 타고 | 죽음과 맞물린 수행자의 의복 | 당당하게 얻어먹는 문화 | 윤회에서 비롯된 반려동물 문화 | 나체주의를 주장하는 자이나교 | 포르노는 피뢰침 역할도 했다 | 인도판 러브스토리, 타지마할 | 불교와 히틀러, 우만자와 좌만자의 진실 | 인도에 위치한 예수의 제자 도마의 무덤 | 착각하기 쉬운 인도용과 중국용의 차이 | 아소카 왕과 산치대탑, 그 거부하기 힘든 유혹
2장 에피소드 불교
길거리 캐스팅의 시작, 말리 부인 | 붓다가 열반에 들 때 아난이 두 번 슬퍼한 사연 | 죽음에 대한 터부와 긍정 | 기구한 여성? 교만한 여성? | 대나무와 코브라, 죽림정사의 미스터리 |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자 마하남 | 인도 수행자들은 석굴을 좋아해 | 연화수는 별명이랍니다 | 아난의 반신탑에 얽힌 사연 | 신심 있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붓다 | 붓다가 깨달은 장소는 과연 어느 곳일까? | 붓다의 가장 위대한 신통, 천불화현 | 설법과 수기의 땅이었던 사르나트 | 마하가섭과 칠엽굴 결집의 진실 | 나란다대학 대스투파의 진실
3장 에피소드 불상
탑에 더부살이 하고 있는 불상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불상에 새겨진 꼬마아이 | 불상에서 시작된 파마머리와 살인미소 | 부처님 손에는 물갈퀴가 있었다? | 어깨에 뽕이 들어가 있는 불상 | 불상의 왼손과 오른손 | 발가락이 벌어진 불상
4장 에피소드 힌두교
스리랑카까지 한 번에 건너 뛴 원숭이 | 신전에 조각된 황소 | 신도 어쩔 수 없는 마누라의 잔소리 | 인도, 신들의 창조경쟁 | 악마와 상대하면서 부인의 가슴을 만지다 | 춤으로 세상을 깨우다, 나타라쟈
책속에서
인도인들은 신보다도 더 편한 갠지스 강을 가지고 있다. 갠지스 강에 목욕하기만 하면 죄가 소멸해서 천상에 태어나는 것이다. 물론 갠지스는 신격화되어 인도인들에게는 강가(갠지스에 대한 인도식 칭호) 여신으로 불린다. 이는 중국의 황하가 신격화되어 고주몽의 외할아버지가 되는 것과 유사하다고 할까?
갠지스에서 목욕하면 죄가 씻어지는 이유는, 갠지스 강이 본래 천국을 흐르는 강이므로 하늘의 속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육체의 정화와 더불어 영혼까지도 맑혀 주는 강, 그것이 인도인들에게 갠지스이다. 그러나 모든 종교행위가 그렇듯, 이것은 믿는 사람들에게 만 적용되는 논리이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신기한 이방의 진풍경일 뿐이다.
-33쪽
연기라는 매체를 통한 택배문화는 불교를 타고 동아시아로 전파되어 우리문화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사찰에서는 현대에도 49재를 지내는 마지막 날, 죽은 사람의 물건을 태워 영혼에게 전달하는 의식이 있다. 또 유교적인 장례풍습에도 죽은 사람의 물건은 소각해서 그 사람에게 전해준다는 측면이 있다. 실제로 이와 같은 인식 때문에 우리의 과거 많은 문화재들은 죽은 사람과 함께 소각되곤 하였다.
이외에도 연기를 통한 신과의 연결은 향문화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유전하고 있다. 향문화는 이집트에서 시작되어 인도에 영향을 미치고, 이것이 다시금 불교를 타고 동아시아로 전파된 것이다. 『삼국유사』 「아도기라」에는 향이 처음 신라에 유입되었을 때, 그 사용법을 몰랐다는 분명한 기록이 있다. 그런데 이때 승려가 향을 사용하면 ‘신명과 통하게 된다’고 설명해준다. 즉 향이란 신과 통하는 일종의 메신저인 것이다.
-39쪽
인도는 윤회론을 믿기 때문에 시체를 더 이상 필요 없어진 헌 옷과 같이 생각한다. 그래서 시체에 대한 공포나 존경심이 없다. 이는 우리가 시신 속에 그 사람의 정신이 일부라도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렇다보니 시체를 유기하거나 화장하는 데 전혀 거리낌이 없다.
시신을 유기하는 문화는 고대에 흔히 발견된다. 이는 더운 인도에서는 매장하자니 번거롭고, 화장하자니 경제적으로 비용이 초래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이다. 시체를 유기할 경우에도 알몸으로 버릴 수는 없으므로, 미라처럼 천으로 시신을 감았다. 이럴 경우 얼마의 시 간이 경과하면 시신이 썩어가면서 천이 시체로부터 유리된다. 이것을 취해서 수행자들은 가사로 사용했다.
-46쪽
인류의 신화시대에 동물들이 신으로 차용되는 것은, 동물에게 있는 특수하게 뛰어난 능력 때문이다. 예컨대 켄타우로스라는 반인 반마의 형상은 인간이 취하고 싶어 한 말의 달리는 능력을 잘 나타내 준다. 이는 이집트의 매 머리를 한 천공신 호루스나, 자칼 머리를 한 죽 음의 신 아누비스 등을 통해서도 잘 나타난다.
그러나 인도는 동물의 특정 능력만을 선택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동물과 함께한다는 인식이 있다. 즉 반려동물에 대한 생각인 것이다. ‘반려동물’ 하면 서구적인 문화가 떠오르지만, 실상 그 기원은 인도의 윤회론에서 찾아진다.
-58쪽
자이나교는 불교와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인도종교인데, 철저한 무소유와 불살생에 강조점을 둔다. 자이나교의 신도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인 마하트마 간디를 생각해 보면 되겠다. 자이나교는 길쌈 과정에서 살생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고, 또 철저한 무소유에는 의복이 필요 없다고 본다. 그래서 나체주의의 수행을 표방하게 된다. 이를 공의파(空衣派), 즉 ‘하늘을 입은 사람들’이라고 한다. 사실 자이나교에도 백의파(白衣派)라고 해서 흰옷을 입는 수행파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공의파에 비해서 완전한 무소유가 아니기 때문에 깨달음을 증득하기 어렵다. 옷을 벗어야 깨달음을 얻는다니, 이건 좀 우리 문화와는 확실히 다른 이질성이 느껴진다.
-64쪽
보통 남근숭배는 문화가 발전하면, 원초적인 공간 속에서만 제한적으로 잔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힌두교에서는 노골적이며 우람한 모습으로 재탄생하는 기이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시바 신은 우주의 최초 탄생에서 크기를 알 수 없는 거대한 남근과 함께 그 속에서 등장한다. 이것을 모신 것이 시바 신전 안의 핵심인 링가상이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건 링가의 좌대는 여성 성기인 요니라는 것이다. 즉 남근이 여성 성기를 뚫고 결합되어 있는 형상이 바로 시바 신이다. 힌두교에서는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우유를 붓기까지 한다. 그리고 그 흐르는 우유를 성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인다. 천주교의 성수 개념에 상응하는 가치라고나 할까.
-71쪽
인간에게 있어서 성이 중요한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제아무리 그렇다하더라도 이를 신전에 노골적으로 돋을새김 하는 문화는 그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링가와 같은 경우도 단순하게 상징화된 둥근 말뚝과 같기 때문에 그다지 성기 같다는 느낌이 안 든다. 그런데 카주라호의 고부조는 섹스와 관련된 체위를 적나라하게 나타내고 있다. 그것도 집단적이고 여럿이 등장하는 아크로바틱한 자세들이 그야말로 압권이다.
-77쪽
무굴제국의 황위 계승은 장남에게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전공을 많이 세운 아들에게 돌아갔다. 그래서 샤 자한 역시 어린 시절부터 정복 군주의 면모를 보인다. 이것은 성군의 자질 중 하나였지만, 14번째 임신한 뭄타즈 마할을 대동하고 나간 데칸고원의 원정길에서는 부인을 잃는 비극의 결과를 낳고 만다. 임신한 여성에게 전쟁터, 그리고 그곳에서의 출산이란 무척 힘든 환경이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만큼 죄의식도 강렬했던지, 샤 자한은 이후 식음을 전폐하고 슬퍼하다가 결국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죽은 아내의 부활을 꿈꾸며, 1632년부터 1653년까지 총 22년간 제국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 만든 것이, 바로 ‘마할의 무덤’ 즉 타지마할이다.
-84쪽
히틀러는 본래 오스트리아의 미술학도였다. 빈의 미대에 진학하려고 했지만 2번이나 떨어졌다. 그 뒤에 나치당의 전신인 독일노동당에 가입해서, 놀라운 연설 실력으로 집권당을 만들어 정권을 장악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히틀러가 미대에 합격했으면 세계의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를 이야기하곤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나치당을 상징하는 마크인 하켄크로이츠(Hakenkreuz)가 불교의 ‘만(卍)’ 자와 비슷한 문양이라는 것이다. 이 마크는 히틀러가 스스로 그려서 사용한 것이라고 『나의 투쟁』은 적고 있다. 1920년 나치당의 창당과정에서부터 히틀러가 패망하는 1945년까지 사용되었다. 그런데 왜 불교의 만자가 수천년을 넘어서 히틀러에게서 나타나는 것일까?
사실 길상을 상징하는 만자 스바스티카는 불교의 전유물이 아니다. 만자는 태양을 상징하는 정십자와 그 광휘를 나타내는 바람개비와 같은 것이 결합된 것으로, 태양숭배와 관련된 아리안 족 마크이다. 그러므로 바람개비의 방향은 별 관계가 없으며, 때론 정십자 역시 만자와 마찬가지로 아리안의 마크로 사용된다. 기독교가 십자가를 상징으로 고착시키는 데는 선행한 아리안의 정십자 문화의 영향도 한 배경으로 작용했다. 즉 아리안의 마크는 생각보다 여러 곳에 얽혀 있는 것이다.
-88쪽
부다가야에는 강력한 에너지가 흐른다. 인도를 가본 사람이라면 누구도 인도여행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힘든 이유는 첫째 일정이 길고, 둘째 한국인이 주로 찾는 겨울의 인도는 일 기온차가 너무 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다가야에 들려서 잠시라도 기도하면 제아무리 방전된 체력이라도 급속충전으로 회복된다. 이것은 이적이 아니라 성지(聖地)의 충만함이다. 즉 붓다의 깨달음이 평균도 안 되는 터를 최고의 터전으로 탈바꿈시켜 놓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 것이다. 즉 부다가야는 명당은 아니지만 최상의 성지이다. 이는 좋은 것을 좋게 한 것이 아닌 나쁜 것을 좋게 만든 것이니, 이것이 이적이라면 분명한 이적일 것이다.
-185쪽
인도의 암기문화는 인도인들이 보다 정확하고 많은 암기량을 가질 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인간의 기억이란 조작되기 쉬운 것이며, 사소한 착각에 의해서도 변화의 요소를 내포한다. 특히 문화배경이 다른 지역 출신의 사람에게 경전을 가르치거나 하게 되면 여러 설명이 첨가되는데, 이러한 설명문들이 암기과정에서 삽입되는 경우도 발생하게 된다.
당시 승려들은 깨달음을 목적으로 암기를 했지, 경전의 암기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이해 용이를 위해서 경전의 일부가 수정되는 것과 같은 일을 묵인했을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문제들은 결국 경전량의 증대를 가져오게 되고,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암기에서 기록으로의 전환을 초래할 수밖에 없게 한다.
-212쪽
석굴암 본존상이나 봉선사 노사나불은 거대하기 때문에 어떤 각도에서도 올려다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르나트의 초전법륜상은 보통 우리네 모습보다도 작은 불상이다. 그렇다보니 불상을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게 되고, 보는 각도에 따라서 보이는 상의 모습이 달라지게 된다. 즉 얼짱 각도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다.
불상에 무슨 얼짱 각도냐고 할지 모르지만, 사실 인물상에는 회화에도 얼짱 각도가 있다. 더구나 불상과 같이 입체나 고부조인 경우는 더욱 그렇다. 즉 불상을 잘 보는 각도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 각도에 맞춰야 불상의 정확한 아우라를 느낄 수 있다. 즉 원작자가 의도 한 뽀샵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관찰자는 더 깊은 종교심에 휩싸이게 된다.
-236쪽
당시 인도의 젊은이들은 청년기에 주변머리를 모두 밀어 버리고 가운데 머리만 상투를 트는 특이한 헤어스타일을 했다. 마치 황비홍의 머리처럼 그 문화권만의 특수한 형태를 생각하면 되겠다. 그런데 주변머리를 밀어버리고 가운데만 섬처럼 남긴, 즉 속알머리와 반대되는 상황에서 상투를 틀게 되니 자연스럽게 똥머리가 만들어지게 된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똥머리 유물을 초기의 마투라불상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즉 파마머리와 더불어 똥머리의 기원도 불상에서 살펴지는 것이다.
-242쪽
유목문화는 건강하면서도 군살 없는 체형을 선호하는데, 농경문화는 살집이 있는 후덕한 모습을 좋아한다. 그 결과 동아시아의 불상은 비만으로 변화하게 된다. 즉 성인병이 발생하기 좋은 비만의 나이든 불상의 신체구조는 동아시아의 선호에 의해서 완성된 모습인 것이다. 그럼에도 인도의 젊은 불상이라는 전통이 있기 때문에, 동아시아의 불상은 보톡스를 맞은 듯 주름 없는 후덕한 모습을 견지하고 있다. 즉 나이는 있어도 주름은 없는 것이다. 이는 인도문화의 동아시아적인 변형에 따른, 고뇌에 찬 불상 조성의 아이러니한 행보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고 하겠다.
-258쪽
인도를 다니는 소들은 대다수가 흰소이다. 흰소란 아무래도 동아시아의 백호나 백사와 같이 신령한 의미를 상징한다. 실제로 인도에도 흰 코끼리가 코끼리의 왕이라는 인식이 있고, ‘흰소는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믿음이 있다. 소가 어찌 흰색뿐이겠는가마는, 흰소는 특별히 더 보호받다 보니까 흰소의 개체수가 급증하게 된 것으로 이해된다. 이는 마치 당근은 본래 보라색이었으나 인간이 소수였던 주황색 당근을 선호하게 되면서, 오늘날 보라색 당근은 거의 자취를 감춘 것과 유사하고 하겠다.
흰소는 힌두교에서 시바 신과 결합한다. 거의 모든 시바 신전 앞에 위치하고 있는, 등에 큰 혹이 있고 뿔이 큰 물소계열의 난디상이 그것이다. 난디는 출생부터 매우 존귀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모든 소원을 이루어주는 전설의 암소 스라비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소에게도 족보가 있다는 것이 우리로서는 보통 생소하지 않다.
-290쪽
적의 기습공격을 받고 있는데, 부인의 가슴을 주물럭거리면서 태연한 시바. 뭐 이런 웃기는 설정이 있나 싶은데, 이런 게 바로 힌두교이다. 이 신화는 악마 라바나는 상대조차 되지 않는, 시바 신의 위대한 권능을 능청스럽게 잘 말해주고 있다. ‘종교라면 이럴 것이다’라는 생각을 벗어던지게 하는 것이 힌두교이며, 이 점이 바로 힌두교의 참 당혹스러운 매력이 아닐 수 없다.
-312쪽
시바가 밟고 있는 대상은 무지와 악에 대한 상징이다. 즉 춤을 통해서 시바는 모든 어리석음과 삿된 가치를 물리치는 것이다. 그래서 시바가 밟고 있는 대상은 어린아이 모습의 악마이다. 기독교권에서 어린아이는 신이 갓 만들어낸 순수한 영혼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윤회론이 지배적인 인도에서의 어린아이는 계몽되어야 할 미숙한 미망의 존재일 뿐이다.
-31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