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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이슬람/중동/이스라엘 > 근현대사
· ISBN : 9788984458741
· 쪽수 : 376쪽
· 출판일 : 2017-05-15
책 소개
목차
추천의 말
머리말
제1장 이상의 확립
쿠란
쿠란 및 다른 성서들
쿠란의 주제들
이슬람의 선지자 무함마드의 삶을 본보기로
초기 무슬림 사회와 이슬람의 기둥들
계승자 칼리프
공동체에 관한 초기 논쟁
결론
제2장 이슬람의 황금기
제도
법
정치구조
문화적 성취
영성과 신비주의적 전통: 수피즘
결론
제3장 분파와 재편
아바스의 몰락과 오스만의 성장
페르시아: 사파비 제국
인도와 무굴 제국의 성장
이슬람사 발전에 대한 이해
결론
제4장 식민지주의와 개혁
식민지주의
제1차 세계대전의 결과
식민지주의의 영향과 이슬람 개혁운동의 주제
근대 이슬람의 재개혁과 새로운 과제들
개혁에 대한 이슬람교도의 접근
결론
제5장 현대의 이슬람
터키
이란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알 카에다
인도네시아
튀니지와 아랍의 봄
테러리즘: IS, 보코하람, 이슬람 지하드, 하마스 그리고 헤즈볼라
결론
참고문헌
리뷰
책속에서
예언자 무함마드가 이끌었던 7세기의 무슬림 공동체는 정의와 평화, 그리고 조화로 대표되는 사회를 만드는 데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알려져 있다. 메디나를 뒤덮었던 수십 년간의 내전 또한 막을 내렸다. 무함마드는 메디나에 처음 당도하면서 그가 이끌었던 메카인들과 그곳의 여러 부족들 간에 조약을 하나 체결시켰는데, 이것이 바로 역사 속에서 ‘메디나 헌법’으로 불리는 조약이다. 이 헌법의 조문들에 따르자면 메디나의 모든 종교적인 공동체들은 ‘다른 이들로부터 분리된’ 하나의 사회공동체를 형성한다. 이들은 상호 지원의 의무가 있는데, 특히 어느 한쪽이 공격받았을 경우 그러하다. 쿠란의 가르침을 되새기자면 유대인들과 무슬림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종교의례를 행하며 분란이 생길 경우 예언자 무함마드와 하나님에게 물어 해결해야 한다. 메디나에는 (수 명의 개종자를 제외한다면) 기독교인 집단이 없었으나 이후 종교적인 이유상의 박해를 금하는 쿠란의 가르침(2:256) 및 메디나 헌법에 판시된 선례를 따라 기독교인 및 다른 종교적 집단들도 인정하였다. 메디나에 이슬람 공동체가 형성되기 이전까지 그곳의 사람들은 주로 부족의 형태를 이루고 살았다. 부족은 가족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수장격인 남성의 지도에 의해 통솔되었으며 각 부족마다 자치 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 이따금씩 결혼에 의한 동맹이 형성되기도 하였으나, 다양한 종교적 전통을 지닌 가지각색의 가문들을 하나의 공유된 이상 아래에 묶었던 성공적인 선례는 이전에 없었다.
- <제1장: 이상의 확립> 중에서
무슬림 세계에 있어 20세기는 재앙의 시대나 다름없었다. 무슬림 세계로 밀려들어온 유럽 세력은 오스만 제국과 무굴 제국의 옛 영토들 을 포함한 광대한 영역을 점령했으며 이란에도 깊이 개입했다. 제1차 세계대전은 칼리프 왕조를 없애버렸으며 무슬림의 영토에 유럽 세력이 더욱 공고히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다. 이에 따라 전 지역의 무슬림들은 수차례 공격받았으며 그들을 억압하는 불의와 맞서 싸워야만 했다. 무슬림 사회의 생명력이 스러져가자 주요 무슬림 국가들에서 개혁운동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 개혁운동은 한층 더 높은 외침 세력의 위협과 함께 복잡한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여러 종류의 개혁운동이 벌어졌는데 여기에는 쇠락하는 이슬람 제국의 재건을 위한 운동, 성장하는 유럽의 영향력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운동, 현대사회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종교적 교리들을 개혁하고 이슬람 사회를 근대화시키자는 운동 등이 있었다.
- <제4장: 식민지주의와 개혁> 중에서
21세기의 첫 번째 십 년 동안 튀니지는 계속해서 경제성장을 이루었으나, 높은 실업률과 더불어 엄청나게 부유한 엘리트층과 저소득층 노동자 계급 간의 간극은 해결될 줄 몰랐다. 벤 알리와 그의 대가족은 국가경제의 노른자위를 손 안에 넣은 채 엄청나게 화려한 생활을 즐겼던 반면, 1인당 국민평균소득은 연간 4,000달러 이하로 추락하는 한편 실업률은 대졸 경제인구를 포함하여 30퍼센트를 웃돌았다. 국가의 엄청난 경찰병력 역시 시민 자유를 악랄하게 탄압했다. 개가 짖으려면 알제리 국경을 넘어야 한다는 농담이 유행할 정도였다. 벤 알리 정권에 대한 저항은 마침내 공공연한 반란으로 이어졌는데, 이는 매우 상징적인 사건 하나로 촉발되었다. 당시 26살이던 모하메드 부아지지는 그의 어머니와 형제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학업을 그만둬야만 했다. 그는 이후 시디 부지드에서 길거리에 수레를 세워놓고 과일을 팔았다. 2010년 12월 17일, 한 경찰관이 노점상 허가를 받을 수도, 뇌물을 줄 수도 없다는 그와 입씨름을 벌인 끝에 그를 폭행하고 노점을 몰수해가는 사건이 벌어졌다. 부아지지는 정부에 도움을 요청 했지만 묵살되었다. 극도의 절망에 빠진 부아지지는 차도 한가운데에 서서 온몸에 가솔린을 붓고 불을 붙였다. 부아지지의 분신자살 소식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퍼져나갔으며 곧이어 대규모의 반란이 일어났다. 처음 시디 부지드에서 촉발된 반란은 이후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안전보장군이 그 특유의 잔혹한 방식으로 군중을 해산시키려 했으나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수백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으나 시위는 계속되었다. 결국 2011년 1월 14일 벤 알리의 사임을 이끌어낸 이 혁명은 이후 ‘아랍의 봄’의 단초가 되었다.
- <제5장: 현대의 이슬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