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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프랑스소설
· ISBN : 9788988653272
· 쪽수 : 296쪽
책 소개
목차
진홍빛 커튼
죄악 속에 꽃핀 행복
어느 여인의 복수극
옮긴이 해제
리뷰
책속에서
여기엔 이해할 수 없는 뭔가가 감추어져 있었소. 그들의 광기나 탐닉이 너무 강해 신중함이나 조심함이 없었던 걸까? 세를롱보다 더 강한 성격의 소유자이자 둘의 불륜관계에서도 우위를 점하고 있는 오트클레르가 왜 자신이 하녀로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다 아는데, 정부라는 것마저 탄로 날지 모르는 그 성에 남아 있길 원했을까? 혹 사람들이 사실을 알아서 세상이 발칵 뒤집힌다 해도 그냥 있으면 백작과의 결혼이라는 더 기막힐 스캔들에 사람들이 곧 면역이 될 거라는 계산? 지금 내가 이렇게 말하고 있지만, 그녀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그런 생각을 한 건 아니오. 검술장을 버티던 늙은 기둥 ‘몸 찌르기의 대가’의 딸 오트클레르 스타생이 V시에서 착 달라붙는 바지 차림으로 검술 수업도 하고 상대방 깊숙이 칼을 찌르기도 한 여자란 것은 모두 아는 사실인데 난데없이 사비니 백작부인이 되다니, 설마 그럴 리가! 그 시골에서 누가 그런 역전극을 상상이나 했겠소! ―'죄악 속에 꽃핀 행복'중에서
“자! 이게 바로 제가 사랑했던 사람의 심장에서 나온 피예요. 개의 이빨에서 구해내지도 못했죠! 이렇게 더러운 생활을 하다 난 혼자구나 하게 되면, 문득 역겨움이 치밀고 진흙덩이 같은 것이 왈칵 솟구쳐 목이 메기도 하지요. 혹은 복수의 정령이 약해져 공작부인으로 되돌아가고 싶어하는지 창녀 노릇이 두려워질 때가 종종 있답니다. 그럴 때마다 전 이 드레스로 몸을 감싸고 더렵혀진 몸을 이 붉은 치마폭에 감싸 바닥을 뒹굴곤 한답니다. 그러면 옷은 늘 뜨거워지고 저의 복수심이 다시 타오르곤 했지요. 피로 얼룩진 이 누더기가 제 부적이지요! 이걸 몸에 감으면 사랑했던 이의 원수를 갚아야 한다는 분노가 뼛속까지 절 움켜쥐고, 제가 느끼는 영원한 힘이 어느새 다시 기운을 북돋아주니까!”
트레시니는 비로소 이 무서운 여인의 말을 들으며 오싹한 한기를 느꼈다. 그 몸짓, 말, 그리고 고르곤처럼 돼버린 얼굴이 그를 떨게 만들었다. 그녀의 가슴 깊이 숨겨져 있던 뱀들이 그녀의 머리를 감싸고 있는 듯이 보였다. 이제 비로소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장막이 갇히고 있었던 것이다! ‘복수’라는 말을 그렇게 여러 번 했는데 아직도 그녀의 입술은 활활 타고 있지 않은가! ―'어느 여인의 복수극'중에서
어느 날 저녁이었소. 알베르트 양이 집에 온 지 한 달포쯤 됐을까, 막 저녁식사를 하려고 자리에 앉았을 때였소. 그날 그녀는 내 옆에 있었는데, 그동안 내가 그녀에게 얼마나 무신경했던지, 알아챘더라면 깜짝 놀랐을 작은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조차, 난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소. 그게 뭐냐 하면, 평소엔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앉던 여자가 그날따라 내 옆에 앉았다는 것이었는데, 내가 냅킨을 펴서 무릎에 놓는 순간……. 내 참, 그때 그 순간, 소스라치게 경악했던 기분은 도저히 뭐라 말로 풀어낼 수가 없구먼! 꿈꾸고 있나 싶으리만큼 전혀 믿을 수가 없었지만, 대담무쌍한 어떤 손이 테이블 밑으로 해서 무릎의 천을 가로질러 쓱 들어와 내 손을 더듬고 있다는 것 말고는 아무 감각도 느끼지 못했으니까! 내게 일어나리라곤 생각도 못했을 뿐더러, 이런 일은 듣도 보도 못했으니까!
손이 잡히는 순간 온몸의 피가 자석에 끌리듯 손으로 우르르 쏠려오더니 곧이어 흡입기로 빨아낸 듯 심장으로 다시 쭉 밀려들어가는 거예요! 눈앞에 별이 번쩍거리고 귀가 윙윙거리더군. 내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을 거야. 현기증이 나 쓰러지는 것만 같았지요. 남자아이처럼 힘 있게 손을 덮쳐서 누르던 큼직한 그 손의 감촉이 형언할 수 없는 황홀경 속에서 모든 걸 녹여버리는 것 같았소. 당신도 알다시피 풋내기에겐 이런 관능적 쾌락이 좀 무섭기도 한 법 아니오. 순간, 미친 듯한 그 손으로부터 내 손을 빼내려 안간힘을 썼소. 그러자 그 손은 자기가 황홀한 쾌락을 불어넣고 있다는 걸 잘 안다는 듯 더 힘차게 더 위압적으로 꽉 조여오더군요. ―'진홍빛 커튼'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