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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서양사 > 로마사
· ISBN : 9788990024862
· 쪽수 : 784쪽
책 소개
목차
감사의 말/ 서문/ 지도 목록
Ⅰ 팍스 로마나
1. 로마인
로마제국의 부상/ ‘상류층 인간’/ 제관/ 마음의 고향, 로마/ 삼급 코메스
2. 만족
게르마니아와 로마 영토확장의 한계/ 페르시아와 3세기 로마의 위기/ 만족과 로마적 질서/ 최후의 국경지대, 트라키아/ 새끼 늑대, 울필라스/ 로마의 예속왕국들/ 게르만족 유럽의 변화/ 봉건제의 시작?/ 로마, 페르시아, 게르만족
3. 제국의 한계
제국 정부의 한계/ 생존의 대가/ 기독교와 동의의 원리/ 로마의 정치형태/ 총정리
Ⅱ 로마제국의 위기
4. 도나우강 유역의 전쟁
‘얼음으로 뒤덮인’ 바다/ 금빛 활/ 탄원하는 고트족/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 ‘우리 시대의 평화’/ ‘그것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5. 신국
서부전선의 대혼란/ 때가 왔노라, 훈족이 왔노라/ 게르만족의 약탈과 제위 찬탈/ 알라리크와 고트족/ 스틸리코와 알라리크/ 스틸리코의 실각과 그 이후/ 로마 유린/ 귀향/ 플라비우스 콘스탄티우스/ 아타울프의 고트족/ 불사조 일어서다/ 콘스탄티우스 재건의 평가
6. 아웃 오브 아프리카
권력자의 삶과 죽음/ 콘스탄티우스 이후의 권력투쟁/ 모로코로 가는 길/ 제국의 심장부/ ‘서로마 최후의 진정한 로마인’/ 인과관계
7. 훈족의 왕 아틸라
아프리카 상실/ 포르피로게니투스/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려졌도다/ 아틸라의 흔적을 찾아/ 다채색의 제국/ ‘갈리아 총공세’/ 훈족과 로마
Ⅲ 제국들의 몰락
8. 훈족 제국의 멸망
훈족 제국의 분열/ 무모한 정복자/ 새로운 힘의 균형/ 아이티우스의 몰락/ 멋진 신세계
9. 서로마제국의 종말
콘스탄티노플과 서로마 정부/ 정권교체, 안테미우스, 북아프리카/ 비잔티움 함대/ 서로마제국의 해체 468-476: 변경지역/ 서로마제국의 해체: 핵심지역인 갈리아와 에스파냐/ 제국의 중심지
10. 로마제국의 멸망
중앙 로마성의 파괴/ 속주의 로마성/ 서로마제국 붕괴의 요인/ 외생적 충격
주요 인물 및 종족/ 연표/ 옮긴이의 말/ 원주/ 참고문헌/ 찾아보기
리뷰
책속에서
로마의 그런 회유적 외교가 어디에서나 잘 통했던 것은 아니다. 그런 외교는 잘 통제되고 냉혹함이 수반된 경우에만 성공을 거두었다. 로마는 제3차 포에니 전쟁이 끝나고 카르타고가 멸망하자 지도상에서 그 도시를 완전히 지워버리기로 작정하고, 파괴된 곳의 땅을 갈고 소금을 뿌려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하게 했다. 카르타고가 두 번 다시 일어서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저 먼 동쪽 흑해 연안의 아나톨리아 지방에도 로마의 숙적인 폰투스의 왕 미트라다테스 에우파토르 6세(재위 BC 120-63. 그의 치세에 폰투스의 세력이 절정에 이르렀다?옮긴이)가 위세를 부리고 있었다. 그의 지배범위는 한때 지금의 터키 대부분의 지역과 흑해연안에 미칠 만큼 강대했다. 미트라다테스는 소아시아의 이탈리아인과 로마인 수천 명을 살해한 이른바 아시아의 만종 학살사건Asian Vespers의 장본인이기도 하다. 로마는 몇 해 뒤 미트라다테스와 세 차례 전쟁?‘미트라다테스 전쟁’?을 벌여 기원전 63년 마침내 한때나마 기세등등했던 그를 크림 반도의 마지막 성채로 내모는 데 성공했다. 미트라다테스는 그곳에서 자결하려 했으나 여러 해 동안 해독제를 써온 탓에 독약이 듣지 않아 경비병에게 대신 죽여달라고 하여 생을 마감했다. (32~33쪽)
그런데 알 수 없는 것은 만일 4세기 로마인들에게 제국의 안전에 가장 큰 위협요소가 무엇이겠냐고 물어보면 두 말 없이 동방의 페르시아를 지목했을 거라는 점이다. 그것은 충분히 납득이 가는 일이다. 300년경 페르시아는 게르마니아와 비교조차 할 수 없이 강력한 적이었고, 유럽의 다른 국경지역에도 이렇다 할 위협세력이 존재하지 않았다. 특히 펠릭스 단이 접하지 못했던 고고학적 증거의 관점에서 사료를 분석해보면, 1세기에 로마 군단이 라인강과 도나우강 앞에서 걸음을 멈춘 것은 요란스런 독일 민족주의가 아닌 다른 요인 때문이었을 가능성을 짐작케 한다. 그것은 또 제정 후기 로마가 게르만족보다 페르시아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 이유이기도 하다. (81쪽)
라인강이 로마의 북방경계선으로 굳어지게 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로마의 영토확장에 담긴 동기뿐만 아니라 로마에 정복되기 이전 유럽의 사회적, 경제적 발전수준과 관계가 있다. 로마의 영토확장은 공화정 시대에 벌어진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같은 과두의 권력투쟁과 제정 초기 황제들의 명예욕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다 보니 영토확장에 대한 열기는 지중해 일대에 비옥한 땅이 아직 많이 남아 있을 때 가장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런 지역은 일단 병합이 되면 로마의 세수원이 되고 그와 더불어 정복한 장군의 명예도 덩달아 올라갔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비옥한 토지가 바닥을 드러내자 제정 초기에는 급기야 정복비용도 뽑지 못하는 부실한 토지를 마구잡이로 병합하는 상태가 되었다. 브리튼이 그 대표적인 예다. 고대 사료에도 나와 있듯이, 로마가 브리튼을 정복한 이유는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개인적 영예 때문이었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서 로마에 정복되지 않은 유럽의 경제발전 수준을 가늠해보면 로마가 왜 굳이 제국의 북방경계선을 라인강으로 정했는지 이해가 될 것이다.
(9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