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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중국소설
· ISBN : 9788992055406
· 쪽수 : 416쪽
· 출판일 : 2013-08-07
책 소개
목차
저자 서문
1부
2부
3부
옮긴이 후기
리뷰
책속에서
“울지 마십시오. 그대는 섭왕입니다. 제왕은 신하들 앞에서 울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각공은 가사 자락을 말아쥐고 내 눈물을 훔쳐주었다. 그는 고요하고도 성스럽게 느껴지는 미소를 띤 채, 여전히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나는 그가 소맷자락 사이에서 『논어』라고 씌어 있는 책을 꺼내는 것을 보았다. 그가 말했다.
“그대는 아직까지 이 책을 다 읽지 않으셨지요. 그것이 제가 궁을 떠나면서 느끼는 유일한 아쉬움입니다.”
“난 책을 읽지 않을 거야! 난 스승님이 계속 궁 안에 있게 할 거야!”
“그러니 결국 그대는 아직 어린아이인 것이지요.”
각공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눈빛은 화톳불처럼 이글거리며 한참이나 내 이마 위에 머물러 있었다. 그는 검은 표범과 용이 새겨진 내 왕관을 가볍게 쓸어주더니, 왠지 서글픈 목소리로 말했다.
“아가, 어린아이의 몸으로 제왕이 된 것이 너의 운명이고, 또한 너의 불행이구나.”
금의위 무사는 겨우 울음을 삼키고, 생사의 기로에 서서 내장을 누르고 있는 장수를 가리켰다.
“폐하, 저 사람은 참군 양송이옵니다. 부디 은덕을 베푸시어 회궁하는 길에 양참군을 데리고 가도록 윤허해주옵소서.”
나는 창에다 눈을 갖다대고 다시 한 번 그 사람을 보았다. 과연 봉황관으로 나아가 장수들의 힘을 북돋우라 재촉하던 참군 양송이었다. 이제 그는 휘청거리며 눈밭 위에 서 있었다. 찢어진 창자는 어느새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와 땅 쪽으로 늘어져서는, 핏자국으로 얼룩진 군화 밑의 흰눈을 더더욱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나는 만신창이가 되어 죽어가는 양송의 두 눈을 보았다. 슬프고도 아프게 나의 가슴을 찌르는 절망의 눈동자였다. 나는 내가 놀란 나머지 넋을 읽은 것인지 아니면 두려움 때문에 겁에 질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어쨌거나 나는 몸을 움츠리며 뒤로 물러나 금의위 무사를 향해 나조차 이해할 수 없는 외마디 소리를 내질렀다.
“죽여라!”
“장현령은 메뚜기 떼에 물려 죽은 것이 아니옵고 메뚜기를 너무 많이 먹어서 죽은 것이옵니다. 장현령은 그날 현의 모든 아전들에게 명하여 밭에 있는 메뚜기를 모두 잡게 하였으나, 아무리 잡아도 효과가 없자 미치기 일보직전이 되어 잡은 메뚜기를 모두 집어삼켰다 하옵니다. 현의 백성들이 모두 이 일에 감동을 받아 눈물바다를 이루었다는 후문이옵니다.”
나는 안자경의 말을 듣고 차마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다. 내가 말했다.
“메뚜기는 곡식을 삼키고, 현령은 메뚜기를 삼키다니. 세상에 신기한 일도 다 있구나. 하지만 난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난 정말 알 수가 없었다. 배현의 현령이 메뚜기를 잔뜩 먹고 죽은 것은 황당하고도 비장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그걸 미덕과 절개로서 표창함이 마땅한 것인가? 나는 조례 때 정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가 자주 난감한 상황에 빠졌고, 그럴 때마다 엉뚱한 질문을 던지곤 했다.
“그대들 가운데 광대의 줄타기를 본 사람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