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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노년을 위한 에세이
· ISBN : 9788992114455
· 쪽수 : 344쪽
· 출판일 : 2009-06-25
책 소개
목차
책 머리에
하나. 이해보다는 교감으로
그 푸르렀던 날들은 어디로 가고 | 가훈(家訓), 그거 시류에 역행하는 거 아닙니까 | 65세, 노인복지법이 정한 어르신은 | 추억을 먹고 사는 사람들, 실버악단 | 비망록에서 떠나가는 사람들 | 인생은 일대(一代), 사진은 만대(萬代)라지만 | 강남 따라갈 친구 하나 두었으면 | 가슴속으로 떠난 추억여행 | 숭례문은 우리가 태웠다 | 서인(西人), 남인(南人)이 아직도 살아있구나 | 오늘 또 하나를 배운다
둘. 우리 모두 등신(等神)으로 살자
나물 캐러 바구니 옆에 끼고서 | 다문화(多文化), 세상은 그렇게 흐르는 것 | 고스톱, 우리시대가 낳은 필요악(必要惡) | 70,000시간의 공포 속에서 사는 사람들 | 이래도 한평생, 저래도 한평생 | 바보는 자기가 바보인 줄 모른다 | 희수연(喜壽宴), 아무나 하나 | 여보, 김미숙한테는 그냥 팬일 뿐이야 | 오래 살려면 나이를 많이 먹어라 | 등기우편으로 날아온 청첩장 | 선배님, 무조건 죄송합니다
셋. 내일은 내일의 바람이
양반, 그리고 노블리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 예절인가, 폭력인가 | 아가야, 불초(不肖)의 뜻을 아느냐? | 손자 그 녀석, 그냥 같은 동포일 뿐이야 | 학술대회, 개발의 편자인가 | 일흔이 영상(榮喪)이면 여든은 소상(笑喪)인가 | 고무신 한번 신어보셨습니까 | 늙는 것도 서러운데 | 자식은 더 이상 보험이 아니다 | 아버지 연세에도 노래방에 가십니까? | 그 양반은 영도(影島) 이씨 시조공(始祖公)
넷. 식물도감에도 잡초는 없다
전직 장관은 이제 장관이 아닙니다 | 내리사랑과 치사랑 | 만날까, 말까, 그것이 문제로다 | 누구나 할 수는 있지만 누구나 못 하는 일 | 신랑감의 비호감 1위가 효자라니 | 이제 길어 10년, 짧으면 5년이야 | 배우는 것도 노는 것입니다 | 우리는 모두 디지털 치매환자 | 늙어 대접받는 건 호박뿐이랍니다 | 정말 나는 불우한가
다섯. 지는 태양이 더 아름다운 것은
언젠가는 우리도 저 두견총으로 남아 | 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 이별연습, 종착역이 가까워지고 있다 | 다 살았는데 생긴 대로 두지 뭐 | 또 하나의 자식, 야생화 | 이순(耳順), 종심(從心), 다음에 관조(觀照)를 두었으면 | 앞으로는 병(病)과 동거하십시오 | 만수무강 너무 찾지 마, 그것도 욕이야 | 칠십생남(七十生男), 그게 안 되면 그땐 죽어야지 | 자꾸 걸으세요, 그게 보약입니다 | 익은 감도 떨어지고, 생감도 떨어지고 | 아직도 우리는 꿈을 그리고 있습니다
쓰고 나서
저자소개
책속에서
한때는 꿈나무들이고 유망주들이었는데, 어쩌다가 신세대란 말은 한번 들어보지도 못한 채 X세대, 386세대에 밀려 문화적 샌드위치맨으로 허둥대다가 어느 날 하루아침에 구세대로 몰려 왕따를 당한 사람들, 떨어지는 인생 곡선의 포물선 벼랑에서 한두 가지 지병(持病)을 친구해, 말로(末路)가 안겨다 주는 포기와 패배 속에 숨어 있는 작은 안식(安息)을 찾아 좌고우면(左顧右眄)하면서 황혼 길을 걷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우리들 세대, 지금 나의 현주소다. - 본문 5쪽 중에서
40년 가까운 결혼생활을 돌아보노라면, 그 가운데는 웃는 날이 한 번도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늘진 얼굴로 산 날이 훨씬 많은 우리네 살림살이. 아닌 게 아니라 생각해보면 푸지게도 아옹다옹했고 거기서 벗어나려 몸부림을 쳤다.
고부의 갈등으로, 형제간 부조화로, 자식들에 대한 불만으로, 그 끝은 하나에서 열까지 우리 부부의 불협화음 난조(亂調)로 나타났다. 마치 이혼이란 말을 주머니 속 물건 꺼내듯 내뱉으며 지낸 일이 있었는가 하면, 한집에 살면서 열흘이 넘도록 아이들 통역(?)으로 지내온 날도 있었다. - 본문 81쪽 중에서
크게 잘한 것도 없지만 크게 못한 것도 없이 평범한 직장생활을 해왔다. 물론 그건 내 생각이다. 30년이 넘도록 한 직장에 있으면서 나름대로는 원만한 교우관계를 유지했고, 모나지 않는 처신에다 크게 욕 얻어먹을 짓은 안 했다고 자부한다. 하긴 그것도 어디까지나 혼자 생각일 뿐이지 남들이 어떻게 보는지 알 수가 없다.
직장동료들과 어울려 술자리도 많이 만들었고,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놀기도 많이 놀았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의협심을 내세워 조직을 위해서라면 못할 게 없다는 식의 호방(豪放)을 내세우기도 했다. 당시에는 모두 네 것, 내 것 없이 평생 동료라며 두터운 인간관계를 유지하며 지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만나자는 후배가 한 사람도 없다. - 본문 229쪽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