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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외국에세이
· ISBN : 9788992525619
· 쪽수 : 216쪽
· 출판일 : 2009-07-22
책 소개
목차
올리버 색스의 추천글 | 작가와의 대화 | 프롤로그 | 책, 못 읽는 남자 | 에필로그 | 감사의 말 | 더 읽을거리 | 옮긴이의 말
리뷰
책속에서
내가 겪은 혼란을 엿보자면 이렇다. 마운트시나이의 입원실에는 샤워 시설이 갖춰진 화장실이 있었다. 나중에 샤워 시설이 없는 재활원에서 화장실에 갈 때마다 나는 샤워 시설이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내 기억은 뒤섞어놓은 한 벌의 카드처럼 순서가 어긋났다. 이런 착란 증상을 겪다보면 등장인물의 입 모양이 대사와 맞지 않는 영화를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또 다른 혼란도 있었다. 사물을 혼동한 것이다. 예컨대 더 이상 방문자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심지어 가족들의 이름조차도 생각하려고만 하면 숭어처럼 내 머릿속에서 미끄러져버렸다. 가끔은 머릿속 주소록에 적힌 모든 고유명사들이 내 혀끝에서 웅얼대며 맴도는 것 같았지만 아무것도 낚아챌 수 없었다. - 본문 75쪽 중에서
실독증은 실어증의 사악한 쌍둥이다. 언어 장애인 실어증은 내 증상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지금도 그렇듯 대화는 장황하게 할 수 있다. 내 증상은 전적으로 시각적인 문제였다. 훨씬 뒤에야 한 사실이지만 글을 쓰지 못한다는 것은 내 머리로는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구조적으로 복잡한 문제였다. 게다가 지금 그런 설명은 너무 성급하게 비약하는 일인 것 같다. 실독증이야말로 내 고통의 핵심이었다. ‘실서증 없는’이란 말은 내 비위를 달래려고 만들어진 사은품과도 같았다. 마치 수술대에 올랐는데 ‘오른쪽 다리를 절단해야 하지만 신발과 양말은 간직해도 좋다’고 위로받은 기분이었다. - 본문 78쪽 중에서
신문이나 병문안 카드를 읽으려 애쓰지 않을 때라면 실독증은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하늘도 푸르게 보였고 태양도 병원 창문에서 빛났으며 갑자기 세상이 낯설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실독증은 오직 내가 책에 고개를 처박을 때만 존재했다. 내게 실독증을 데려와 ‘그래, 문제가 있지’라고 상기시키는 주범은 인쇄물이었다. (…) 뇌에 들이닥친 돌풍도 나를 바꿔놓지는 못했다. 나는 열혈 독서광이다. 심장을 멈출 수는 있을지언정 독서를 멈출 수는 없다. 독서는 내게 뼈이자 골수, 림프액이자 피다. - 본문 80~81쪽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