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중국사 > 중국사 일반
· ISBN : 9788993119664
· 쪽수 : 724쪽
· 출판일 : 2014-03-30
책 소개
목차
수정판 역자 서문 _ 11
한국어판 서문 _ 17
저자 서문 _ 20
초판 역자 서문 _ 32
제1장│역사무대
1. 하늘, 그리고 말 위에서 _ 49
2. 하천과 호수 _ 60
3. 산 _ 78
4. 사막과 만리장성 _ 98
5. 성시城市 _ 108
6. 지리구역 _ 130
7. 배우들 _ 147
제2장│신화시대
1. 천지개벽 _ 160
2. 오씨五氏 _ 165
제3장│전설시대
1. 황제黃帝 왕조 _ 178
2. 희헌원姬軒轅 _ 183
3. 이기방훈伊祁放勛과 요중화姚重華 _ 191
제4장│반역사시대半歷史時代
1. 기원전 23세기 _ 204
2. 기원전 22세기 _ 208
3. 기원전 21세기 _ 212
4. 기원전 19세기 _ 213
5. 기원전 18세기 _ 214
6. 상商 왕조의 사회형태 _ 219
7. 기원전 17세기 _ 222
8. 기원전 13세기 _ 223
9. 기원전 12세기 _ 223
10. 주周 왕조의 봉건제도 _ 231
11. 병목 위기 _ 238
12. 기원전 11세기 _ 243
13. 기원전 10세기 _ 244
제5장│역사시대의 시작
1. 기원전 9세기 _ 249
제6장│기원전 8세기 - 무너지는 주周 왕조
1. 주周 정부의 동천 _ 256
2. 춘추시대 _ 263
3. 주周 정부와 정국鄭國의 교전 _ 268
4. 초楚 왕국 _ 272
5. 위국衛國의 신대추문新臺醜聞 _ 277
제7장│기원전 7세기 - 춘추오패의 활약
1. 봉국封國의 병합과 축군살군逐君殺君 ① _ 284
2. 오패五覇 _ 292
3. 제국齊國 패권의 부침 _ 297
4. 진국晉國의 장기 패권 _ 303
5. 진국秦國의 짧은 패권 _ 309
6. 초 왕국의 ‘문정사건問鼎事件’ _ 313
제8장│기원전 6세기 - 초楚·진晉 양국의 장기 패권
1. 봉국의 병합과 축군살군 ② _ 320
2. 초 왕국 패권의 남모르는 근심 _ 324
3. 언릉.陵 전투 _ 330
4. 국제 평화회의 _ 333
5. 오자서伍子胥의 굴묘편시掘墓鞭尸 사건 _ 336
6. 노국魯國의 삼환정치三桓政治 _ 343
제9장│기원전 5세기 - 중국 최초의 황금시대
1. 봉국의 병합과 축군살군 ③ _ 356
2. 중국 최초의 황금시대-대황금시대 _ 360
3. 유가儒家 _ 364
4. 도가道家·묵가墨家·법가法家 _ 374
5. 제자백가諸子百家 _ 382
6. 전국시대 _ 386
7. 진국晉國의 분열 _ 392
제10장│기원전 4세기 - 전쟁의 시대, 거대한 변화의 시대
1. 봉국의 소멸과 변화 _ 402
2. 오기吳起와 초 왕국 _ 408
3. 역사상 최대의 마술-진국秦國의 변법變法 _ 412
4. 합종合縱과 연횡連橫-대항과 화해 _ 418
5. 제齊·송宋 양국의 침략 전쟁 _ 427
6. 세 사람의 거목 430
제11장│기원전 3세기 - 진秦 왕조, 중국을 통일하다
1. 동방 각국의 상호투쟁 _ 448
2. 참신한 외교정책-원교근공遠交近攻 _ 453
3. 여불위呂不韋와 한비韓非 _ 463
4. 6국의 멸망 _ 467
5. 찬란한 80년대(기원전 220년~기원전 211년) _ 474
6. 영정 대제.政大帝 _ 483
7. 분서갱유焚書坑儒 _ 488
8. 진秦 왕조의 갑작스러운 와해 _ 497
9. 우담화 같았던 서초西楚 왕국 _ 511
10. 서한西漢 왕조의 대통일 _ 517
제12장│기원전 2세기 - 북방의 위협 흉노匈奴
1. 사막에서 일어난 흉노 _ 527
2. 도가사상의 실천-황로정치黃老政治 _ 531
3. 7국의 난 _ 536
4. 뿌리를 내린 유가사상 _ 541
5. 흉노에 대한 반격 _ 546
6. 서역西域을 소통시킨 장건張騫 _ 552
7. 중국 강토의 재확장 _ 560
8. 한부漢賦 _ 568
제13장│기원전 1세기 - 서한西漢 왕조의 몰락을 이끈 외척정치
1. 중국과 흉노의 화해와 교전 _ 578
2. 사마천司馬遷과 노온서路溫舒 _ 583
3. 계속 확장되는 중국 강토 _ 590
4. 흉노의 분열 _ 597
5. 외척정치 _ 601
제14장│1세기 - 서한西漢ㆍ신新ㆍ동한東漢, 왕조 교체의 대혼란
1. 신新 왕조와 사회정책 _ 613
2. 21년 왕조 교체의 혼란 _ 616
3. 동한東漢 왕조의 건립 _ 621
4. 흉노의 재분열 _ 625
5. 서역 재개통에 나선 반초班超 _ 628
6. 강전羌戰 _ 635
제15장│2세기 - 중국 최초의 환관시대
1. 서역 상실 _ 644
2. 강족과 동한의 전쟁 확대와 참극 _ 647
3. 외척정치의 재연 _ 651
4. 사대부와 문벌의 형성 _ 657
5. 환관제도 _ 663
6. 중국 최초의 환관시대 _ 668
7. 불교와 도교 그리고 황건黃巾 _ 676
8. 31년 왕조 교체의 혼란 _ 681
중국 역대 왕조 강역도 _ 691
중국 역대 왕조 기년표 _ 692
표·지도·세계도·사진 목록 _ 694
찾아보기 _ 699
책속에서
중국인은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에 살고 있다고 여겨 자칭 ‘중국中國’이라 했다. 전 세계의 중심에 자리한 나라라는 뜻이다. 또 살고 있는 땅이 아름답고 사랑스럽기 때문에 ‘중화中華’라고 했다. ‘화華’는 아름답고 사랑스럽다는 뜻이다. 자칭, 타칭으로 한漢 민족이나 한인漢人이란 이름을 쓰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2세기 서한西漢 왕조가 선 다음의 일이다. 기원전 3세기와 기원전 22세기에는 또 자칭, 타칭으로 진인秦人 또는 하인夏人이라는 이름을 썼다. 전자는 진 왕조 사람을, 후자는 하 왕조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중국은 다른 고대 문명국과 마찬가지로 자그마한 원시부락과 작은 땅에서 시작하여 끊임없이 연합하고 융화하고 확장하여 마침내 장대한 제국을 이루었다. 20세기 초 중국 강역의 면적은 1,140만km2에 이르렀다. 가장 서쪽은 파미르 고원(동경 74도), 가장 동쪽은 우수리 강(오소리강烏蘇里江, 동경 135도), 가장 북쪽은 흑룡강성의 막하현漠河縣 막하진漠河鎭(북위 53도), 가장 남쪽은 남중국해 남사군도의 증모암사曾母暗沙(북위 4도)에 이르는 넓디넓은 땅덩이다.
-1권 「제1장 역사무대」
기원전 841년, 곧 공화정치 첫해는 중국 역사의 문자기록이 보존되기 시작하는 해다. 이때부터 20세기까지 기록은 끊어지지 않았다. 중국인이 인류 문명에 남긴 위대한 공헌 중 하나다. 동시대 다른 문명 고국들은 근본적으로 기록이 없거나 기록이 있었다 해도 벌써 없어져 오로지 고고학자의 힘든 발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공화정치는 기원전 828년까지 14년 동안 유지되었다. 그 해에 체읍으로 피신한 희호가 세상을 떠났고 희정이 그 틈에 즉위하여 군주정치를 회복했다.
반半역사시대의 사적은 사학가의 기억과 소급이라는 한계로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전문가의 고증이 필요하다. 역사시대에 들어선 다음의 사적은 당시 기록에 나오기 때문에 신뢰도가 매우 높다. 그러나 기록이 꼭 충실하다고는 할 수 없으며 또 반드시 완전하다고 할 수 없다. 때로는 그와는 반대로 고의적인 왜곡과 수식이 흔히 발생한다. 게다가 하나의 사적을 놓고 서로 다른, 심지어는 완전히 상반되는 견해까지 등장한다. 우리의 분석과 판단 그리고 선택이 필요한 부분들이다.
역사시대는 기원전 9세기부터 20세기까지 2,900년이 전부지만 이 책의 90퍼센트를 차지한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전 사적에 대해 너무 적게 알고 있는 필자를 나무랄 수밖에. 역사시대를 서술하다 보면 근대로 올수록 사료가 많아진다. 하지만 각 세기마다 서술 양이 너무 많이 차이나지 않도록 애썼다. 이를 통해 사적과 시간의 좌표가 잘 드러나기를 바란다.
-1권 「제5장 역사시대의 시작」
영정은 독서를 굉장히 좋아하여 이런저런 책들을 두루 읽었는데, 특히 「고분孤憤」과 「오두五蠹」라는 글을 발견하고는 반복해서 읽고 외운 다음 온몸을 땅바닥에 엎드리며 이렇게 탄식했다. “이 책을 쓴 사람과 만나 교류할 수만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 이사는 그 글을 쓴 사람이 한韓 왕국의 귀족인 한비韓非(한비자韓非子)인데 말을 더듬는 병을 앓았기 때문에 말재주는 없지만 모든 지혜가 그의 책에 들어 있다고 알려주었다. 영정은 매우 기뻐하며 한 왕국에 알려 한비가 진 왕국을 방문하도록 요청했다.
기원전 232년, 한비가 함양으로 와서 국왕의 귀빈으로 성대한 환영과 존경을 받았다. 하지만 세상일이 늘 바른 방향으로만 진행되지는 않는 모양이다. 방연이나 손빈이 겪은 일이 진 왕국에서도 재현될 줄이야! (중략)
영정은 한비를 귀빈의 지위에서 끌어내려 감옥에 가두었다. 그 뒤 영정이 마음을 바꾸어 한비를 석방하라고 명령을 내렸지만 벌써 때는 늦었다. 이사가 영정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감옥에서 한비를 독살했기 때문이다.
한비, 영광과 비극을 한 몸에 지닌 이 학자는 법가학파의 종합판이었다. 그의 중심사상은 이런 것이다. 군주는 막강한 권력을 지녀야 하며 백성에게 감사 인사를 바랄 필요가 없다. 또한 백성의 원망에도 아랑곳할 필요가 없다. 그저 상벌이 엄격하고 분명하면 정부를 만능으로 만들 수 있다.
한비가 죽은 뒤 그를 숭배하는 학자들이 그의 작품을 책으로 정리하여 <한비자韓非子>를 엮었다. 영정과 이사는 한비를 죽였지만 그의 사상은 고스란히 흡수하여 날로 커가는 자신들의 제국을 통치하는 데 반영했다.
-1권 「제11장 기원전 3세기-진秦 왕조, 중국을 통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