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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93241839
· 쪽수 : 160쪽
· 출판일 : 2024-01-29
책 소개
목차
소설
어떤 죽음 - 이지명 -7-
하얀 별똥별 - 김유경 -35-
가위손 - 김정애 -71-
함흥역에서 - 도명학 -89-
시
어버버 외 9편 - 위영금 -117
작품해설
탈북문학에 비친 북한과 한국 - 방민호 -131-
저자소개
책속에서
-이 글을 누가 읽을 때면 나는 이미 죽었을 것이다. 나는 곧 사람을 죽일 것 같다. 왜냐면 나는 내가 왜 체포될 수밖에 없는가를 잘 알기 때문이다. 군대에서 제대될 때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잡혀가는 것도 아니다. 나는 이 세상에 설 자리도 살아갈 자격도 상실한 참으로 재수 빠진 놈이다. 형처럼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끌려가 짐승처럼 살기는 싫다. 내 앞을 막는 자는 무조건 죽인다. 그렇게 사람까지 죽이고 나면 나는 죽어서도 저주받을 살인마로 낙인찍힐지도 모른다. 하지만 괜찮다. 후회도 없다. 내 소중한 삶을 농락당하고 더는 내 생을 연장할 필요가 없는 시점에서 나는 나를 이렇게 만든 이 세상을 저주할 뿐이다. 다만 내가 왜 이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냐는 물음에 답을 줘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 글을 남길 결심을 했다.
나는 대체 누군가부터 쓰고 싶다. (이지명 – 어떤 죽음)
그해, 우리는 새집으로 이사했다. 정부에서 보장해 준 임대아파트에서 25평 분양 아파트로, 아버지 명의로 된 집으로 이사 갔다. 삼 분의 일은 은행 돈이라고 했다. 어찌 됐든 서울에 아버지 명의의 아파트가 생긴 것은 기분이 좋았다. 임대아파트보다 훨씬 넓고 쾌적한 내 방도 퍽 마음에 들었다.
아버지는 나를 가구점으로 데리고 가셔서 마음에 드는 침대와 책걸상을 고르라고 하셨다. 내가 선택한 침대가 들어오던 날, 푹신한 매트리스에 몸을 던지며 나는 오랜만에 아버지에게 한껏 웃음을 보냈다.
“너무 좋아요, 아빠!”
한 달 후, 엄마의 제삿날이 다가왔다. 그동안 아버지는 한국에 와서 매해 엄마 제사를 지냈다. 제삿날마다 나는 돌볼 사람 없어 잡초가 무성할 엄마의 무덤을 떠올렸다. 아버지는 매번 묵묵히 제상을 차리셨다. 제상은 전문 가게에 주문하신 것 같았다. 엄마가 생전에 구경 못 해본 음식이 가득 차려진 제상을 보면서 나는 허무함을 느꼈다. 아버지는 기계적으로 절을 하시고, 제상을 물리고 음식을 조금 드신 다음 조용히 밖으로 나가시곤 하셨다. 그때도 불만스러웠다. 제상 앞에서나마 엄마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왜 못한단 말인가. 아버지는 얼음처럼 냉랭한 심장을 지녔다고 생각했다. (김유경-하얀 별똥별)
“남조선 사람이야.”
그는 미화에게 못 본 척 하라며 눈짓했다.
“뭐? 남조선 사람?”
달래의 말에 경실은 슬그머니 뒤를 돌아보았다. 헐거운 차림에도 남자의 앙상하고 구부정한 어깨가 그대로 드러났다. 남한사람이 달래네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니…….
“의거 입북자래. 제 발로 왔다나?”
달래의 목소리가 서글프게 들렸다. 미화가 다시 돌아보았으나 노인은 보이지 않았다. 스스로 자유의 땅을 버린 이유가 궁금했다.
“어떻게 왔대? 가족은?”
“언젠가 조난당한 남조선 어선을 구조했다는 보도가 있었지? 그 배에 탄 사람인데 자진해서 남았대. 일부는 공화국의 귀순공작에 맞서 싸우다가 끝내 집으로 돌아갔는데 저 사람은 남았지. 선전에 넘어갔지. 그런데 남은 사람들을 다 따로 배치해서 서로의 안부도 모르고 살고 있대. 후회할 거야.”(김정애-가위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