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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외국에세이
· ISBN : 9788994054209
· 쪽수 : 328쪽
· 출판일 : 2011-10-10
책 소개
목차
옮긴이의 말
눈물
1부 온힘을 다해 달렸으나
라일락 필 무렵
폭풍 전야
전격전
어머니 러시아
병원
스베틀라나
문턱에서
내 마음, 올가미에 걸린 새처럼
2부 날개를 찾아
짧은 행복
뤼게머 소령
바다의 물 한 방울
하지만 그것은 새가 아니었다
나이도 어린 아가씨가
로키타
내 손을 빠져나간
야노프카 숲
도끼질
경주
작전
저택
오두막
다가오는 어둠
대가를 치르고
숲속으로
3부 내 쉴 곳은 어디인가?
저항
도주
독일 땅에서
보석
후기
역사적 배경
리뷰
책속에서
밀밭에서 새 한 마리가 푸드덕 날아오르더니 태양을 향해 희미한 점 하나로 사라지는 듯했다. 그때 총소리가 들렸고 새는 털썩 땅바닥에 떨어졌다. 그런데 그것은 새가 아니었다. 그것은 새가 아니었으며, 그곳은 밀밭이 아니었다. 지금도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그곳이 어디였는지 알 수 없다.
그 전쟁에 대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이 모든 일들을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단숨에 모든 이야기들을 털어놓는다면?제일 먼저 이런 일이 있었고 그 다음엔 이런 일이,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죽었고 저런 사람들은 살아남았으며 그렇게 모든 일이 끝났다. 아무도 내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가끔은 그런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이 가능했을까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그게 나였던가? 그 소녀가 나였던가? 내가 그곳에 정말 있었나? 그 일이 벌어지는 광경을 내가 직접 본 게 확실한가? 전쟁 중에는 모든 것이 기괴하고 비현실적이었다. 우리는 가면을 쓴 채 우리의 언어가 아닌 대사를 웅얼거려야 했다. 그 모든 것이 내게 일어난 일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런 일들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아무래도 천천히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천천히, 그리고 분명하고 생생하게. 맨 처음부터 시작해보자. 그것은 아주 오래 전의 일이니까.
우리는 상처 입은 동물을 돌보는 일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고양이, 개, 토끼, 새 등 작은 환자들을 품에 안고 돌아와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게 했고, 다행히 생기를 되찾은 동물들을 놓아주거나 집을 마련해 주었다. 우리는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생명을 다한 동물들에게는 성 바바라 성당의 그림자가 드리운 우리 집 뒷마당에서 엄숙한 장례를 치러 주었다. 둥지에서 떨어진 새 한 마리를 우리가 집에 가져왔을 때 어머니는 그 새를 키우기도 하셨다. 그 새는 우리 집 주변을 맴돌다 어머니가 휘파람을 불면 열린 창문을 통해 집 안으로 날아 들어오기도 했다. 어느 해 가을에는 황새들이 이동을 시작할 무렵 날개를 다쳐 날지 못하고 있는 어린 황새 한 마리를 발견한 일이 있었다. 우리는 땅바닥에서 파드득대고 있는 녀석을 코트에 조심스럽게 감싸서 부리에 쪼이지 않도록 주의를 하며 집으로 들고 왔다.
상상의 세계에서 나는 영웅적인 투쟁의 주인공이 되어 다른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나를 희생했다. 나는 단순한 로맨스보다 훨씬 높은 뜻을 품었다. 어느 해 성탄절, 나는 이러한 상상이 현실이 될 수 있음을 믿게 되었다. 할머니께서 우리에게 오래된 풍습 한 가지를 가르쳐 주셨다. 우리는 양초를 녹인 다음 그것을 차가운 물이 담긴 그릇에 부었다. 촛농은 찬 물에 떨어지는 순간 제각기 다른 모양으로 굳어 버렸고, 우리는 굳은 촛농을 꺼내 그것을 전등 앞에 비춰서 벽에 비치는 그림자의 모양으로 우리의 미래를 읽었다. 내 차례가 되어 내가 떨어뜨린 굳은 촛농을 전등 앞에 가져다댔고 우리는 벽에 비치는 그림자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우리는 그림자의 모양이 큰 배의 모양을 닮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뱃머리에 십자가가 있는 배였다. 동생들은 모두 입을 다물었지만 나는 짜릿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모험의 운명을 타고난 것이었다. 정의로운 모험이 내 앞에 놓여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