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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역사소설 > 한국 역사소설
· ISBN : 9788994175232
· 쪽수 : 436쪽
책 소개
목차
작가의 말
주요 인물
여섯 번째 봄
농사를 짓다
정부인 이윤선
봉림대군
무역으로 돈을 벌다
번답과 수거
조선 처자 김수진
말을 휘몰아 달릴 수 있다면
청 태종은 죽고
어린 황제와 섭정왕
비익연리
7년 만의 일시 귀국
경진년의 악몽
무인 신무룡
의주상단
갈 수 없다
은밀한 사병
심양관
성리학과 사대부
다시 심양으로
괴소문
역관 정명수
팔기군
새로운 인식
조 소용
북경으로 가는 길
개구리와 바다거북
아담 샬 신부
환천희지
세자의 구상
환향녀
소무처럼 살았느냐
갈등
허망한 죽음
감춰진 진실
술렁이는 민심
양화당
음모의 끝
별궁
마지막 몸부림
나는 조선의 세자빈이다
그 후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관소 신료들은 농사짓는 일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한사코 반대했다. 청 황실에 맞설 힘도, 대안도 없으면서 모두가 흥분하고 목에 핏대를 세웠다.
하지만 빈궁은 농사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어떤 방법으로도 피할 수 없는 것임을 알았다. 이미 저들은 지난봄에 채소를 갈아 먹으라며 남문 밖에 30일 갈이의 남새밭을 떼어주었다. 그때도 관소 사람들은 한사코 마다했지만 저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관소는 할 수 없이 남새밭을 가꿨다. 저들은 이미 지난봄부터 관소로 하여금 농사를 짓게 하려고 치밀하게 준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날이 지나도록 대다수 신료들은 농사 이야기만 나오면 연신 앞 짧은 소리로 구두덜거렸다. 하지만 이것을 좋은 기회라고 여기는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빈궁이었다. 빈궁은 그렇잖아도 세자를 도울 길이 없을까 궁리하던 참이었다. 청국에 잡혀 와서 조정을 대신해 양국 간의 현안을 해결하느라 노심초사하는 세자를 위해 빈궁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현재 관소 살림을 챙기고 무역으로 돈을 버는 것이 다였다. 마침 그때 청국이 농사를 지으라고 강권한 것이다. 그 순간 빈궁은 ‘이거야말로 물 본 기러기요, 꽃 본 나비 아닌가’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 빈궁! 그…… 그게 도대체 무슨 말씀이오? 빈궁이 장사를 해보겠다, 그런 말씀이오?”
“그렇습니다, 저하. 볼모로 잡혀와 사는 마당에 세자빈입네 하고 거처에 들어앉아 책이나 읽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하께선 무도한 저들의 겁박을 온몸으로 막아내고 계신데, 소첩이 여자라고 해서 아무 짓도 안하고 구경만 할 수는 없습니다. 범부의 아낙들도 남편을 위해 힘껏 내조하는 법인데, 이루 다 표현하기 어려운 만난의 고생을 하고 계시는 저하를 어찌 제가 두 손을 묶어둔 채 멀거니 지켜보고만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빈궁! 어떻게 빈궁이 장사를…….”
“저하! 장사, 장사 하지 마십시오. 그저 단순히 이문이나 챙기자는 게 아닙니다. 각 지역간에 필요한 물건을 고루 나눠 먼 곳의 특산물도 언제든 쉽게 살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민생에 도움을 주는 꼭 필요한 일이라는 걸 저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우리가 심양성에 처음 들어오던 날, 점포들이 즐비한 것을 보고 모두 놀랐습니다. 어디 성 안팎뿐입니까? 청나라 방방곡곡에는 밥과 술, 말과 꼴 등 나그네에게 필요한 물품을 갖춘 점포들이 널렸잖습니까! 우리나라에도 그 편리한 점포 제도를 정착시켜나가려면 먼저 경험을 통해 효율적인 운영방안도 찾아보고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세상에는 조선과 중국, 왜국 그리고 몇몇 오랑캐 나라와 색목인들만 사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빈궁도 알고 있었다. 저 넓은 바다 건너엔 생김새도 다르고 말도 다르고 먹는 것과 입는 것도 다른 나라들이 많이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런데 수진이 손가락으로 지도를 짚어가며 설명해준 세상은 그동안 빈궁이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더 넓었다. 그 널따란 세상 곳곳에 다양한 인종들이 여러 모습으로 살고 있다니 놀랍기만 했다. 버선을 거꾸로 세워놓은 것 같은 조선이 너무나 작아 보인 것도 충격이었다.
“조선의 위정자들은 이런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빈궁은 아득한 눈으로 세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세상이 이처럼 넓고 많은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 말입니까? 아마 조야를 막론하고 잘 모를 것입니다. 설사 알더라도 ‘그깟 오랑캐들에 대해 알아서 뭘 하겠느냐, 어버이나라 명나라만 잘 모시면 된다’고 하지 않을까요?”
세자는 희미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