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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동양철학 > 한국철학 > 실학
· ISBN : 9788994606330
· 쪽수 : 512쪽
· 출판일 : 2015-01-12
책 소개
목차
한국어판 머리말
추천의 글
1장 문제와 방법
1. 사서학의 방법 개념
2. 시대의 전환과 주희 사서학의 변화
3. 동아시아 학술에서 정약용의 의미
2장 주희와 정약용, 사서 해석의 차이
1. 주해의 내용과 해석의 방향
2. 『논어』의 관중에 대한 평가
3. 의리 지향과 의의 지향의 해석 체계
4. 사서의 텍스트 구조 내에 포함된 두 가지 해석 체계
3장 정약용의 인성론과 수사학, 주자학 및 서학의 차이
1. 정약용의 입장에 대한 두 가지 견해
2. 정약용 성기호설의 연원과 특색
3. 정약용의 심성론과 상제에 대한 이해
4. 정약용 사서학 중 성삼품설의 이론적 위치
5. 맹자의 심성론으로 회귀하는 정약용의 인성론
4장 정약용의 사서 해석 중 ‘인, 심, 성, 천’의 이론적 의미
1. 공자의 인학설에 들어 있는 중요한 개념들
2. 정약용의 인학설 중 ‘상호 주체’의 동태적?정태적 측면
3. 주체성에서 상호 주체성으로, 기호의 ‘성’과 인을 할 수 있는 ‘이’
4. ‘성, 도, 교’의 해석 구조하의 ‘천인’ 관계와 정약용 사상 중 ‘천’의 이론적 지위
5. 인학설과 사천철의 주체성, 상호 주체성 그리고 초월성에 대한 탐구
5장 주체성과 상호 주체성의 전개, 정약용의 문질론
1. ‘예악형정’을 중심으로 하는 유학 해석과 정약용의 논술 경향
2. ‘문질’ 문제에 대한 조선 학자의 세 가지 해석 경향
3. 성호 이익의 ‘충, 질, 문’에 대한 고찰과 그 영향
4. 정약용의 문질론
5. 정약용의 문질론의 가치
6장 정약용 『중용』 해석의 특색, 일본 고학파와의 비교
1. 『중용』에 대한 질의와 위치 설정
2. 일본 고학파의 『중용』에 대한 해석
3. 이토 진사이와 오규 소라이의 『중용』 해석의 사상사적 의미
4. 비교의 관점에서 본 정약용의 『중용』 해석
5. 정약용과 일본 고학파의 해석상의 차이
6. 정약용의 일본 고학파에 대한 태도
7장 정약용의 『대학』 해석과 사서학 구조
1. 『대학』의 가치와 일본 고학파의 견해
2. 정약용의 『대학』 해석
3. 정약용의 『대학』 해석으로 본 『사서』 해석 구조
4. 정약용ㅇ의 사서학에 대한 전체적 구상
8장 결론
1. 정약용 사서학의 출현이 지닌 의미
2. 정약용의 사서학은 ‘포스트 주자학’이다
3. 정약용의 사서학의 조선 중화주의와 근대 의식
옮긴이 후기
참고 문헌
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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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책속에서
정약용은 주희가 ‘친민’을 ‘신민’으로 고치는 데 반대하는 입장이며 이것은 이미 앞에서 서술한 바 있다. 특별한 점은 정약용이 얘기하는 ‘친민’은 ‘소민(小民, 백성)’을 ‘친(親)’하는 뜻 외에도 백성들끼리 서로 친애하도록 하는 의미도 담겨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용문 생략) 위 인용문을 보면, 정약용이 주장하는 ‘친민’은 단순히 백성을 보살피는 친소민뿐만이 아니다. 그것은 군주가 교화의 노력으로 맹자가 이야기한 “모든 사람이 부모와 어른을 공경한다”의 경지에 이르는 것을 의미한다. ‘친민’은 군주의 행동뿐만이 아니라 군주가 추진하는 교화이기 때문에, 정약용은 ‘친’과 ‘신’ 모두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즉 군민(君民)의 관계로 볼 때는 ‘친민’이고, 교화의 축면으로 볼 때는 ‘신민’이다. 친민을 함으로써 백성을 교화할 수 있고 백성으로 하여금 ‘흥효제(興孝弟)’하게 하여 ‘친민’은 ‘신민’의 근본이다. ‘친’을 ‘신’으로 안 고쳐도 ‘신’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퇴계와 율곡 학파의 논쟁은 수백 년 지속되었고 학술적인 토론은 정치 투쟁의 구실로 전락했다. 이런 상황을 바꾸려면 유학을 ‘이기론’과 분리시켜야 가능하다. 정약용은 23세 때 아직 ‘사단칠정’의 토론에 관심이 있었고 율곡의 ‘기발설’을 주장하며 이벽이 주장하는 퇴계의 ‘이기호발’설을 반대했다. 하지만 34세 때 서암강학회에서는 이미 생각이 바뀌었고, 퇴계와 율곡의 ‘이’와 ‘기’에 대한 정의가 다르기 때문에 양자 간에는 “하나로 통일될 수 있는 시비 득실이 없을 것 같다”고 결론 내렸다. 표면적으로 볼 때 정약용은 퇴계와 율곡의 사상을 절충하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가 원하는 것은 ‘이기’의 논쟁을 종격시키는 일이었다. 그의 이런 생각은 「답이여홍」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기’설은 동이 될 수도 있고 서가 될 수도 있다. 백이 될 수도 있고 흑이 될 수도 있다. 왼쪽으로 이끌면 왼쪽으로 치우치고, 오른쪽으로 이끌면 오른쪽으로 치우친다. 여러 세대가 논쟁하고 자손까지 가도 결국 결론은 없다. 인생은 할 일이 많은데 형과 나는 한가롭게 이를 논쟁할 수 없다.”
정약용의 생각에 ‘이기’ 문제 혹은 ‘사단칠정’에 관한 토론은 정의와 입장 차이에 따라 견해가 다르기 때문에 시간을 허송하며 “언담에 빠져, 실천에 소홀”하는 상황에 빠지면 안 된다. 그러나 정약용은 ‘이기론’으로 유학을 논하는 것은 반대하지만 퇴계와 율곡의 유학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발기발변이」에서 그는 퇴계 학문의 핵심은 ‘이기의 변’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중략) 진정한 퇴계의 문인이라면 마음의 일념이 천리 혹은 인욕에 부합하는지, 인심 혹은 도심에 부합하는지를 관찰해야지 그 일념의 근원이 ‘이’ 혹은 ‘기’인가를 따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