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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판타지/환상문학 > 외국판타지/환상소설
· ISBN : 9788996125266
· 쪽수 : 304쪽
책 소개
목차
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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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
주해
리뷰
책속에서
바로 그 순간, 침대 커튼이 찢어지면서 무어인 복장을 한 거인이 나타났다. 그는 한 손에 코란을, 다른 손에 긴 칼을 들고 있었다. 그를 보자 사촌들은 발아래 몸을 던지며 울부짖었다. 「전지전능하신 고멜레즈 교주님. 우리를 용서해 주소서.」
그들의 간청에 교주라는 자가 음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대체 정조대를 어찌하였느냐?」 그리고 그는 내게 말했다.
「이 천하에 몹쓸 기독교도야! 너는 우리 고멜레즈 가문의 명예에 먹칠을 했다. 이제 모슬렘이 되든지 죽든지 양자택일하라.」
그때, 소름이 끼치는 울부짖음이 들리더니 악령에게 홀린 파체코가 한쪽 구석에서 내게 손짓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를 본 사촌들은 몹시 화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를 잡아채서 밖으로 끌어냈다.
「불쌍한 나사렛 신자여!」 교주라는 자가 계속했다.
「이 잔을 단숨에 마셔라. 그러지 않으면 불명예스런 죽음을 맞아 조토의 아우들과 함께 교수대에 매달려 독수리 밥이 되고 지옥 악귀들의 노리개가 되고 말 것이다.」
그 상황에서 내 명예를 지키는 길은 오직 자살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고통스럽게 외쳤다.
「아버님! 이런 상황이라면 아버님도 저처럼 처신하셨으리라 믿습니다.」
나는 교주라는 자가 내민 잔을 받아 단숨에 들이켰고, 뼈마디를 관통하는 심한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정신을 잃고 말았다. - 142쪽 중에서
바로 그때 두 사내 가운데 하나가 내 왼쪽 발목을 잡아끌었습니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그의 손아귀를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또 다른 사내가 내 앞에서 길을 가로막았습니다. 그는 내 앞에 버티고 서서 화로에서 갓 끄집어낸 쇳덩이처럼 붉은 혀를 날름거리며 소름 끼치는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습니다.
나는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한 손으로 내 목을 움켜잡더니 다른 한 손으로는 내 눈을 후벼 팠습니다. 그래서 지금 보시는 것처럼 한쪽 눈이 없는 겁니다. 그러더니 그 사내는 붉게 타오르는 긴 혀를 눈알이 빠진 구멍 속으로 깊숙이 처넣어 뇌를 핥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고통에 못 이겨 비명을 지르며 울부짖었죠.
그러자 이번에는 내 왼쪽 다리를 잡고 있던 사내가 손톱으로 내 발바닥을 간질이는가 싶더니, 곧바로 살갗을 벗겨 내고 근육을 뜯어내어 악기를 연주하는 시늉을 했습니다. 그러나 기대했던 소리가 나지 않자, 이번에는 손톱을 장딴지에 집어넣어 힘줄을 뽑아서 하프 줄을 조율하듯 마구 비틀어댔습니다. 그렇게 해서 내 다리를 마치 살터리처럼 만들더니 힘줄을 뜯으며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악마 같은 소리를 내며 웃었고, 나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렇게 둘이 지르는 끔찍한 소리는 합창이 되어 허공에 울려 퍼졌습니다. 악마의 연주를 들으면서 나는 그들이 내 몸의 조직 하나하나를 자근자근 물어뜯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결국, 고통을 견디지 못한 나는 그만 기절하고 말았습니다. - 47-48쪽 중에서
내가 열여섯 살이 되던 해, 부친께서는 우리 남매를 신비로운 세피로트63의 세계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첫 단계로 우리에게 ‘광명의 서(書)’라고 불리는 『세페르 하 조하르』를 읽게 하셨습니다. 그 책은 펴는 순간 눈부신 광채가 솟아나서 읽는 이는 마음의 눈을 뜰 수 없어서 내용을 전혀 이해할 수 없기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그다음에 우리가 공부한 책은 ‘은폐의 서(書)’라고 불리는 『시프라 데 제니우타』였는데
그 책은 가장 명백한 대목조차도 수수께끼처럼 난해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공부한 책은 ‘대소(大小) 산헤드린’이라고 도 알려진 『이드라 랍바』와 『이드라 수타』66였습니다. 이 책은 앞서 언급한 두 권의 책을 저술한 랍비 시메온 벤 요하이가 지인들에게 가장 기초적인 지식을 전파하려고 아주 쉬운 대화체로 썼지만, 거기에는 예언자 엘리야께서 우리에게 몸소 내려주신 가장 놀라운 신비와 모든 계시가 담겨 있습니다. 예언자 엘리야께서는 비밀리에 천계를 떠나 ‘랍비 압바’라는 이름으로 이땅에 오신 분입니다. 여러분처럼 카발라 학자가 아닌 사람들은 독일의 소읍 프랑크푸르트에서 1684년에 칼데아어 원작과 함께 출간된 라틴어 판 성경을 읽고 성서의 내용을 모두 이해한 것처럼 착각하기 쉽지만, 독서가 단지 눈으로만 이루어진다고 믿는 그 한심한 발상에 우리 카발라 학자들은 그저 웃음이 나올 뿐입니다. - 159쪽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