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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세계의 소설 > 기타 국가 소설
· ISBN : 9788997296361
· 쪽수 : 288쪽
· 출판일 : 2014-04-10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누가 일러주지 않아도 나뭇가지들은 땅을 향한다. 땅속에 잎을 묻고 또 눈을 가린다.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온다는 것도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일까?
임페리 주민들도 전쟁이 벌어졌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마을로부터 수백 마일 멀리서 벌어진 일이 이곳까지 닥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물며 그들의 삶을 처참하게 망가뜨릴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러나 그날 오후 그 일이 일어났다.
하지만 이들은 달랐다. 깊은 침묵 탓에 칼이 살과 뼈를 가르고 다시 살을 베고 나가 마침내 통나무에 부딪는 소리를 고스란히 들을 수 있었다. 그날부터 그 소리는 소년 병장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계속 울렸다.
“모두가 환영받아야 해요.”
“전쟁이 우리의 모습을 바꾸어 놓은 것도 있지만, 돌아갈 길 을 찾지 못할 정도는 아니기를 바라요. 아이의 존재에 기쁨이 아닌 다른 감정이 깃든 세상을 상상한 적도 없는데.”
임페리에도 그런 날이 있었다. 하루가 더 길었던 날. 흥미진진한 대화와 이야기, 친구나 가족의 방문, 나무그늘 아래 만들어 둔 해먹에 누워 낯선 손님이 오면 찬물 한 바가지를 대접하거나 아예 수영하러 강으로 나서던 날, 물에 발을 담그며 아이들이 잠수하는 것을 구경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던 시절 말이다.
“이야기, 이야기라, 무엇이 좋을까?” 마마 케이디가 말했다. 이것은 이제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뜻이다.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그러면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 줄 수 있어요.” 모두가 이야기를 청할 때까지 그녀는 몇 번이고 질문을 되풀이했다.
“좋은 지적이다. 망고나무를 심는다고 생각하자. 과일이 열리려면 몇 년은 걸리는 법이다. 카사바나 감자처럼 더 빨리 자라는 것을 심을 수도 있지만 망고도 먹고 싶단 말이다. 너도 농업을 공부하고 있으니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거다.” 보카리는 교실을 천천히 오가며 학생들과 눈을 맞추었다.
그들은 금홍석을 캐러 온 것이었다. 금홍석이 발견된 곳에서는 다른 광물도 나왔다. 다이아몬드가 발견되기도 했다. 하지만 탄광 회사는 이 모든 광물들을 모조리 파면서도 이 사실을 숨겼다.
마을에는 술집이 생겼다. 밤이면 귀를 찢을 듯 큰 음악이 쾅쾅 울리고 술 취한 남자들은 지나가던 젊은 처자들을 희롱했다. 소음 탓에 노인들도 더 이상 마을 공터에서 이야기할 수 없었다.
소년이 어둠 속에서 길을 걷다 그만 피복이 벗겨진 전선을 밟았던 것이다. 소년의 몸은 지글지글 피가 끓었고 마치 죽은 노인처럼 보였다. 전선은 아직도 불꽃을 튀기며 살점을 태우고 있었다.
“식수를 얻을 수 있는 곳은 이 강뿐이야. 어째서 물을 다른 데로 돌리지 않았을까?”
다음 철에 씨를 뿌리려고 땅을 다 갈아 두었는데 말 한마디 없이 물을 범람시킨 것이다. “우리 논도 오염되었겠구먼.” 한 농부가 물을 손으로 떠서 냄새를 맡아 보고 덧붙였다. 사람들 중에는 물을 흘려보내는 파이프를 설치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 일을 한 것이 부끄러웠지만 어쨌든 일자리가 필요했다.
그녀는 몸을 질질 끌면서 조금씩 움직였지만 도저히 집까지 갈 수 없었다. 여자들이 옷을 들고 나와 피투성이가 된 처녀의 벌거벗은 몸을 덮어 주었다. 그리고 그녀를 집으로 데려가 간호했지만 그녀에겐 살고 싶은 의지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렇게 작은 영혼 하나가 세상을 떠났다.
“어떤 사람들은 위험한 작업 지역에 들어가기 전에 기도를 해요. 여기는 너무 위험해서 한 신에게만 기도하면 안 된다고 두세 신에게 기도하는 거예요. 그러면 적어도 하나는 관심을 가질지도 모르니까요!”
마을은 이주했다. 새 집들은 원래 집보다 작았고 토대도 약했다. 시멘트나 점토가 아닌 진흙 벽돌로 지어진 집이어서 종종 무너지는 일이 벌어졌다. 때문에 몰살당하는 일도 간간이 생겼다. 경찰 보고서에는 ‘주민들이 탄광 회사에서 마련해 준 집을 제대로 유지하지 못했다’고 기록되었다.
그렇게 조심했지만 분두와 루지아투가 부지불식간 모두의 눈에 눈물이 고이게 만들었다. 어른들은 슬픔에 턱이 떨릴까 입을 꽉 다물었다. “어제 아빠가 해 주신 이야기를 하나 할게요.” 분두는 이렇게 말하고는 아빠의 목소리를 흉내 냈다.
마을에는 벽과 지붕이 날아갔거나 총탄 자국으로 얼룩진 집들도 흔했다. 사람들이 그런 환경에 익숙해질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지만 누구도 고치거나 적어도 총탄 흔적이라도 없애려 하지 않는 듯했다.
“여기는 내 땅이고 무슨 일이 일어나건 똑똑히 지켜봐야 한다. 누군가는 여기 남아서 우리 역사를 살펴야 해. 그리고 그것을 전하는 방법은 누군가의 입뿐이다. 이야기가 의미 있고 효과가 있으려면 결국 그것을 오롯이 겪는 수밖에 없어. 케이디와 나는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다.”
“젊은이들에게 참 멋진 모범 아닙니까?” 의문의 남자가 말했다.
“모든 소년들이 권력이 있으면 저런 식으로 써도 되겠구나 생각하겠지요. 그들은 저런 행동에 감탄해요. 백주대낮에, 더군다나 장관이라는 사람이 그런 짓을 한다면 이 행동이 정당하다는 게 틀림없다는 식이죠.”
하늘은 더없이 맑아 상상으로 떠올릴 수 있는 무엇이건 넓게 그릴 수 있었다. 하지만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이들에겐 하루만도 충분히 힘겨웠으므로 그것을 볼 여유가 없었다. 대개는 절망의 바람에 휩쓸리지 않게 안간힘을 쓰느라 땅에서 눈을 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닥치는 대로 일해서 어느 정도 돈을 모은 다음 고향에 다니러 와서는 외국에서 아주 잘 나가는 척을 하죠. 그런 이들 중에는 겨우 몇 주를 오가면서 방금 호텔에서 본 녀석처럼 배로 차까지 실어오는 사람들도 있답니다. 결국 돌아갈 여비를 마련하려고 그 차를 팔겠지만요.”
오무는 그게 무슨 소용이 있을지 알지도 못하면서 어쩌면 그가 뭔가 기운을 북돋아 줄 말을 알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또 힘겨운 하루를 끝내려 애쓰고 있는 이들을 방해하는 바깥세상에 대고 노래 부르는 대신 속으로 조용히 노랫가락을 흥얼거렸다. 그리고 활기 넘치는 거리 끝까지 와서 발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콜로넬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