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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전 일본소설
· ISBN : 9788997831067
· 쪽수 : 536쪽
· 출판일 : 2014-03-10
책 소개
책속에서
‘그런데 저 나이 든 토착민 농부는 내가 잘못해서 이런 곳으로 들어온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그리고 저 정성껏 기른 모종을 유린한 것을 내가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또 가슴속으로 그에게 사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물론 그가 그런 사실을 알 리 없겠지. ……자신의 땀과 노력으로 정성껏 기른 농작물을 여기에 갑자기 나타난 이민족이 아무렇지도 않게 밟아댄 것을 그는 얼마나 증오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을까! 그가 지닌 잠재의식이 거기에 얼마나 강하고 날카롭게 기름을 들이부었을까! 그 격정적인 민족이 잘도 내게 달려들어 쥐고 있던 커다란 낫을 휘두르지 않았군!’하는 생각이 들자 그는 전율을 금할 길이 없었다. ……순간 그는 앞서 본 아름다운 여인에게서 느꼈던 것과 같은 마음의 쓸쓸함을 그 농부에게서도 느꼈다.
“이 녀석 말입니까? 이 녀석은 약간 이상한 녀석이에요. 언제나 저러고만 있어요. ……그리고 기분 나쁘게 우리를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는 듯합니다. 섬뜩한 녀석입니다.”라고 물을 한껏 들이켜고 난 뒤 오다가 말했다. 그는 그렇게 말하는 오다가 밉살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사람들 입장에서 보자면 우리는 역시 민족적 ○○자로 보이겠지? 거기에 저 사람들의 응어리가 있는 거야.’라고 그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도 당신들과 마찬가지로 이렇게 억압받아 괴로워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묘한 눈빛으로 노려볼 필요는 없지 않은가? 형제…….’라고, 그는 토착민들의 말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면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하며 말없이 그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 토착민의 누군가를 저주하는 듯한 눈빛이, 그의 근질근질한 부분을 날카로운 칼로 긁어내는 듯한 기분 좋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러자 그는 신기하게도 그 눈에 마음이 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눈이 더욱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을 노려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런 생각이 들자 그를 처음 봤을 때와 같은 불안은 그의 마음에서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그는 그 토착민에게 무슨 말인가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