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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정치학/외교학/행정학 > 정치인
· ISBN : 9788997871131
· 쪽수 : 496쪽
· 출판일 : 2014-06-20
책 소개
목차
간행사-이승만 대통령의 건국(建國)과 호국(護國)
서문-우리가 이승만을 알아야 하는 이유
제1장 난세의 혁명가
족보에 관심 없는 아이|‘정치적 자유’에 눈을 뜨다|쿠데타 모의 발각돼 체포|5년 7개월의 혹독한 수감생활|감옥에서 『독립정신』집필|을사늑약으로 외교권 강탈 당해|고종의 밀사로 미국행|우드로 윌슨과의 인연|조국을 등지고 미국으로|3.1운동 직후 필라델피아에서 건국 헌법 구상|노선 문제로 분열한 상하이 임정|미국의 힘을 빌려 일본을 물리치자|일본은 조만간 미국 침략|미국 주류사회를 움직이다|로버트 올리버와의 만남|재미 한인 교포들 대일전 참전|‘미국의 소리’ 방송 출연|OSS 특수작전에 재미 한인 참전
제2장-분단의 주범(主犯)은 스탈린
카이로의 선언 함정|‘신탁통치 구상’ 결정되다|스탈린을 대일전(對日戰)에 참전시켜라|38선이 태어난 이유|소련군, 남북을 강제 단절시켜|미군, 9월 8일 남한에 진주|1945년 9월 20일, 스탈린의 비밀 지령|남한은 공산주의자들의 천국|71%가 사회주의 선호|우익세력의 출범|남한은 불만 당기면 폭발할 화약통
제3장-이승만을 남한 정치권에서 퇴출시켜라
이젠 돌아가자, 돌아가자|맥아더 장군과의 인연|신탁통치 둘러싼 소용돌이|좌익 진영, 찬탁으로 돌아서|북한, 단독정부 수립|북한식 토지개혁의 비극|미국과 소련의 동상이몽(同床異夢)|이승만과 하지의 대립|이승만, 정읍 발언으로 승부수|미군정의 이승만 퇴출 공작|미국의 ‘관망정책’|좌우합작의 본질은 공산화|미군정, 좌우합작 공작 돌입|소련 지시로 남한에서 극렬 폭력운동 전개|이승만, 암살 위기 수차례 넘겨|‘트루먼 독트린’으로 세계전략 변경|“남한 정권 수립 후 유엔 가입” 주장|한국 문제 유엔으로 이관|김구, 평양에 남북회담 제안|김구.김규식, 단독선거 반대|총선 방해 위해 좌익들 대공세|소련에 농락 당한 김구와 김규식|건국사에 큰 상처 남겨|들러리 서기 싫어서…|5.10 총선은 압축 민주화의 모범
제4장-공산주의는 호열자(콜레라) 같아서…
공산주의는 국민국가 건설의 적(敵)|공산당, 포악한 1인 독재체제로 변해|이승만, 1923년부터 공산주의 비판|모든 나라의 공산당은 소련의 조종을 받는 도구|악(惡)의 퇴치 위해 거악(巨惡)과 손잡은 루스벨트|앨저 히스와의 악연(惡緣)|조국 버리고 소련을 위해 일한 반역자들|베노나 프로젝트가 밝힌 진실|미국 지도부에 침투한 소련 간첩들|우리 형편으로 공산당 원치 않아|공산당 무찔러야 민주주의 발전|공산주의 대항 위해 일민주의 제창|공산주의자는 전염병자들과 같이 격리시켜야
제5장-국군에게 무기를 달라
일 할 수 있는 기관을 만들자|국민이 주인 되는 건국 혁명|유엔 승인 외교전 전개|한국은 유엔의 자손|1948년에 건국이 되지 않았다면…|반민족 행위자 청산|북한의 친일파 청산, 현실은?|건국 두 달 후 여수에서 반란사건 터져|여순 반란사건은 ‘축복으로 바뀐 비극’|‘태평양 동맹’ 결성 실패|우리에게 무기를 달라|남한 내 빨치산들과 사투|미군 철수하면 900만 명 굶어죽을 것|스스로 무장해제 한 미국|미국은 냉전에서 지는 싸움만 하고 있다|이승만이 북진통일 주장한 이유|애치슨 선언의 파장| 6.25는 피할 수 있었던 전쟁|스탈린의 동북아 구상|소련 군사고문단이 남침작전계획 수립|대전차 방벽 건설, 예산 사정으로 무산돼
제6장-이 총으로 내 처를 쏘고…
어서 한국을 구하시오!|긴박했던 대통령의 피난|대통령의 전화 방송|트루먼 대통령의 참전 결단|한국전과 매카시 의원|유엔, 북한을 침략자로 규정|한반도에서 미군과 중공군 싸우게 하라|국군은 영웅적으로 싸웠다|자유인은 항복하지 않는다|수원비행장 상공에서의 공중전|무기와 탄약을 주십시오|또 다시 피난길에 올라|국군의 작전지휘권 유엔에 넘긴 이유|지금이야말로 통일의 시기|다시는 망명정부 만들지 않겠다|지키느냐, 죽느냐|낙동강 방어선에서의 혈투|대한민국 정부 제주도 이전 계획|인민군은 싸울 힘이 없었다
제7장-대한민국 국군은 북진하라
인천 상륙은 5000대 1의 도박|두만강, 압록강까지 밀고 간다|국군은 38선을 넘어 즉시 북진하라|맥아더와 트루먼의 동상이몽|수복지역 통치문제로 유엔군과 마찰|미국과 중공의 예고된 대결|스탈린의 배신 알고도 한국전 개입|중공군 300만 명 한국전에 투입|맥아더의 치명적인 실수 ‘새로운 전쟁’시작되다|이승만과 맥아더는 알고 있었다|화력 부족을 인력으로 때운 중공군|또 다시 서울 빼앗겨|한계 드러낸 미국의 전쟁 의지 비기기 위해 죽어야 하나?|6.25와 소련 간첩들의 역할
제8장-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하다
대통령 직선제|개헌으로 국회와 격돌|이승만 제거 위한 쿠데타 계획|부산 정치파동의 본질은?|반공포로 석방|에버레디 계획 수립|미국을 붙들고 늘어지다| 청년들의 피로 봉인된 방위조약|값을 따지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혜택|한미상호방위조약과 베트남 평화조약
에필로그-이승만의 국가건설
스탈린과 맞서 싸운 대전략가|많은 것을 잃고, 많은 것을 얻은 전쟁|국민이 주인이 되는 국가 건설|이승만 시대 한국의 변화|박정희의 성공은 이승만 덕분
주)
참고문헌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인민군의 전면 남침으로 국군의 방어선이 무너졌을 때 이승만은 “자유인은 결코 항복하지 않는다”면서 항복 대신 결사항전을 택했다. 공산주의와는 어떤 타협도 거절한 ‘불후의 고집불통’ 이승만이 존재했기에 대한민국이 붕괴되지 않았고, 공산주의의 격렬한 팽창정책을 한반도에서 막아낼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일본과 한국과 타이완에서 자유시장경제의 꽃을 활짝 피워 태평양시대의 도래를 가능케 했다. 공산주의에 대한 막연한 환상에 젖어 있던 해방공간에서 이승만이 등장하지 않았더라면 남한 사회는 필연적으로 공산화되었을 것이다.
이승만 시대는 이른바 국가건설(nation building) 시기에 해당한다. 국가건설이란 ‘근대 국민국가의 기본 인프라를 구축하는 과정’으로 정의된다. 김충남 박사는 현대 국가가 국가로서 기능하기 위해서는 국내외의 적들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안보(security), 일반 국민이 세금을 부담하여 국가를 영위할 수 있는 경제적 기반(economy), 그리고 통치 질서를 명문화한 헌법 등 근대적 정치질서(democracy) 등 세 가지가 반드시 구비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토지개혁이 실시된 후 김일성은 농토를 무상으로 받은 농민들로부터 3만 통이 넘는 감사 편지를 받았는데, 그 중 수십 통은 피로 쓴 편지였다고 한다. 그런데 무상몰수 무상분배 방식의 토지개혁의 결과는 무엇이었을까.
이지수(명지대 북한학과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소련에서 실시한 무상몰수 무상분배 방식의 토지개혁은 농가 호당 가구원의 숫자가 모두 다르고, 설사 가구원의 숫자가 같더라도 실질적인 가용 노동력의 숫자 또한 제각각인 상황에서 세세한 사항에 대한 기준도 없고, 토지의 비옥도와 위치의 차이를 무시한 채 거의 획일적으로 농가 호당 토지가 분배되었다고 한다. 그 결과 토지분배의 시행착오를 견디지 못하고 몇 년 후 기존의 토지개혁을 포기한 채 농업 집단화를 통해 모든 토지를 국유화하고 모든 농민을 집단화했다.
북한의 토지개혁도 소련과 소련이 점령한 동구권의 사례와 거의 똑같은 길을 걷게 된다. 북한은 1958년 전면적인 농업협동화를 단행했다. 차이라면 동구권 국가에서는 토지개혁 조치 이후 3~4년 만에 농업 집단화를 다시 단행한 데 비해, 북한에서는 이 과정이 매우 더디게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결국 애초에 토지개혁은 토지 국유화, 즉 무상몰수를 은폐하기 위한 일종의 기만정책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1948년 7월 11일, 자유중국의 류위완(劉馭萬) 총영사는 김구와 비밀리에 만나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지지하기 바란다는 장제스 총통의 뜻을 전했다. 이날 류위완 총영사는 김구에게 왜 건국을 반대하는지를 물었다. 김구는 자신의 속마음을 다음과 같이 털어놓았다.
“내가 평양에서 열린 남북한 지도자 회의에 참석한 한 가지 동기는 북한에서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알아보려는 것이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이 앞으로 3년간 조선인 붉은 군대의 확장을 중지하고, 그 사이에 남한이 전력을 다한다고 해도 공산군의 현재 병력만한 군대를 만들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러시아인들이 손쉽게 남쪽을 기습할 것이며, 당장 남한에 인민공화국이 선포될 것입니다.”
이 대화록을 보면 김구는 소련의 지원을 받은 북한이 조만간 남침하여 공산정권을 세울 것이 분명하니 굳이 대한민국을 건국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구의 통일정부 수립 주장은 군사력이 우월한 북한의 인민공화국에 남한이 편입되는 길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국민을 기만한 것이다.